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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갈등을 만든 미국의 더러운 비밀 본문

우리를 읽다/[외신] 상자 밖의 시선

동아시아 갈등을 만든 미국의 더러운 비밀

Widerstand365 2019. 10. 30. 15:50

※ 다음 기사는 한일 갈등에 관련된 <뉴욕 타임즈> 칼럼입니다. 한일 갈등의 근본적 원인이 미국에 있다고 꼬집는 내용입니다. 이미 한 달 정도 된 기사이지만, 한일 관계의 근본적인 해결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참고할 만한 글입니다. 이 기사의 원문은 이곳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 갈등을 만든 미국의 더러운 비밀

한일 갈등의 원인은, 수십년 동안 이어진 미국의 불평등한 정책이다.

한국 광주 나눔의 집에 세워진 2차대전 ‘위안부’ 기림상.

 미국의 동아시아 주요 우방국인 한국과 일본은, 최근 몇 달 동안 갈등을 빚고 있다. 일본은 한국의 무역 특혜를 박탈했고, 한국은 일본을 무역 우호 국가에서 제외했다. 8월 말, 한국 정부는 일본과의 군사 정보 교환 협정을 취소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협정은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 등, 민감한 군사적 정보를 교환하는 협정이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분쟁이 1965년 양국이 국교를 정상화한 이후 최악을 갈등이라고 말한다. 이 협정 전까지, 양국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했던 기록의 해석을 두고 갈등을 빚었다. 강제 노역, 영토 분쟁, ‘위안부’ 등이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분쟁은 해소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이 문제는 양국의 민족주의에 불을 붙이고 있다. 지금, 역사는 단순히 배경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 두 동맹국에게,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불러 달라”고 말했다.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과,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 사이 협상이 필요하다면 중재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UN총회를 계기로 양국 지도자와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어떠한 종류의 진일보라도 이루고 싶다면, 미국 정부가 오랫동안 부정해 왔던 일을 해야만 한다. 한국과 일본이 현재까지도 역사를 두고 갈등을 빚는 것은, 부분적으로나마 미국이 이제까지 취했던 입장 때문이라는 점을 직시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양국 사이에서 분명히 불평등한 태도를 보여 왔다.

 지금의 갈등은 미국 정부가 중재한 1965년 한일협정에서 기인한다. 이 협정을 통해 한일 간의 국교가 정상화되었고, 이를 위해 일본의 전쟁 중 강제 징용 문제에 대한 합의도 이루어졌다. 역사학자들은 전쟁 중 70만-80만명의 한국인들이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로 징용되었다고 추산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한일협정에 따라 강제노역에 관련된 배상이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이루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일협정에 따라 일본은 한국과 외교적∙경제적 관계를 수립했고, 이와 함께 양도와 차관 형태로 5백만 달러 규모의 자금을 제공했다.) 한국은 이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갈등은 2018년 말 한국 대법원의 판결이 계기가 되었다. 당시 대법원은 강제징용 피해자 11명에게, 일본의 미쓰비시 중공업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한국과 일본 모두, 미국을 갈등의 원인으로 짚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런 위축은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은 이들의 안보를 보장하고 있는 국가다. 하지만 한일 양국이 분쟁하고 있는 반세기 전의 역사적 순간은, 분명 본질적으로 미국의 개입에 의해 만들어졌다. 한국과 일본의 해묵을 갈등을 해소하겠다며 도움을 주겠다던 1965년 당시, 미국 정부는 자국의 편의에 따라 양국을 불평등하게 대우했고, 이를 통해 이익을 챙겼다.

 오늘날 한일 간의 역사 분쟁에는 깊은 역사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히, 미국의 외교관과 연관되어 있다. 윌리엄 J. 시볼드가 그 중요한 배후 중 하나였다. 그는 1946년에서 1952년까지 중요한 직위를 여럿 거쳤고, 연합군 지배 시기 일본에서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의 선임 정책보좌관을 맡기도 했었다. 1965년 5월, 역사적인 한일협정이 체결되기 전날, 시볼드는 <맥아더와의 일본: 점령기의 개인적 역사>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발표했다. 시볼드는 이후 은퇴했지만, 영향력은 계속되었다. 그의 자서전은 1965년 당시 미국 정부가 동아시아 문제를 바라보았던 관점을 보여주는 중요한 저서였다.

 시볼드는 일본의 주요 정치권 인사들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었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로 인해, 시볼드는 이들이 “한국(Korea, 그는 이 시점부터 분단 이후까지도 Korea라는 용어를 사용했다.)”에 대해 가진 관점을 내면화하게 된다. 시볼드는 이런 관점을 미국의 이익이라는 자신의 이해관계와 결합해 받아들였다. 미국의 이익이란 곧 “일본을 공산주의 세력권에 들지 않도록 하기 위한 미국의 뚜렷한 목적”을 말하는 것이다. 분명히, 그의 자서전은 한국인에 대한 경멸을 당당히 드러내고 있다.

 시볼드는 한국인이 폭력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본인에 대해서는 결코 이런 생각을 품지 않았다. 또한 시볼드는 한국이 과거에 갖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한국을 “슬프고, 억압받고, 불행하고, 빈곤하고, 조용하고, 음침한 사람들의 나라”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전쟁을 “미국과 소련의 갈등을 다룰 수 없는 불행한 반도에서 벌어진” 성가신 일이라고 표현했다. 시볼드는 20세기 초반 한반도를 지배한 일본과, 그 지배의 잔혹성에 대해 언급하지 못했다. 일본 치하의 한국인들이 강제 노역에 시달렸다는 점도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는 일본 식민지 지배가 독립운동과 반일 항쟁을 통해 한국 사회 내부를 갈라놨다는 점과, 1945년과 1953년 한국전쟁 휴전 당시 미국이 임의로 한반도를 분할해 이 갈등을 강화시켰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했다.

 시볼드의 관점은, 주요 인물들과 함께 일하던 미국 외교관들의 관점과 정확히 일치한다. 1965년 한일협정 당시, 미국 정부는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을 지원할 자금을 필요로 했다. 한국이 베트남 전쟁에 대한 개입을 확대하면서, 한국에 자금을 보내야 했던 것이다. 1964년 5월, 국가안전보장회의 실무자인 로버트 코머는 맥조지 번디 국가안보보좌관에게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서한을 보냈다. 그는 경멸적으로 말했다. “우리에게는 장기적인 짐을 나눌 수 있는 대상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건 일본일 수밖에 없죠.” 주일 미 대사 에드윈 라이샤워는 이에 동의했다. 라이샤워 대사는 이 조약이 한국과 일본의 역사에 대해 부족하게, 또 때로 인종차별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눈감고 넘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인 동료들에게 신호를 보내도록 했다. 1964년 11월, 전보를 통해 라이샤워 대사는 직접적인 사과는 “극도로 민감한 행동”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는 “과거의 불운한 역사와 우호적 협력의 새 시대에 대한 전향적인 언급이, 한국의 감정을 누그러뜨리면서 일본 대중을 자극하지 않을 것인지 의문을 가졌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국 정부는 1965년 한일협정을 중재했다. 다시 말해, 이 협정이 발단부터 문제가 있었다면, 그것은 부분적으로나마 미국 정부의 의도와 결정 때문이라는 것이다. 빠른 체결에 집착한 미국은, 한국인들이 강제노역에 대한 배상을 받을 수 있는지와 같은 가장 첨예한 문제들은 회피했던 것이다.

 1965년 한일협정은 한일 간의 갈등을 해소하지 못했고, 단지 동결했을 뿐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당시 미국의 이익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언제든 한국과 일본 정부가 서로를 향한 비난을 시작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이 갈등을 지금까지 끌어온 자국의 역할에 대한 비판은 여전히 피해가고 있다.

 

/ 알렉시스 더든(코네티컷 대학교 역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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