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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읽다/[외신] 상자 밖의 시선

홍콩의 청년들은 왜 우산 대신 쇠파이프를 들었는가?

Widerstand365 2019.09.04 20:38

※ 다음은 <아사히 신문朝日新聞 Globe+>의 홍콩 시위에 관한 기사를 번역한 것입니다. "비하인드 뉴스" 코너로, 기자들의 취재 비하인드를 적는 공간입니다. 원문 "若者はなぜ雨傘を鉄パイプに持ち替えたのか: 香港を覆う深刻な絶望"는 이곳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홍콩의 청년들은 왜 우산 대신 쇠파이프를 들었는가?

~ 홍콩을 뒤덮는 심각한 절망 ~

최루탄을 사용해 강제 진압에 나선 경찰과 대치하는 청년들 = 2019.7.2. 홍콩, 타카하나 테츠로 촬영.

 

홍콩에서는 중국과 홍콩 정부에 반대하는 집회가 계속되고 있다. 중국식 일당독재제체와 서구 사회의 자유가 갈등하는 거리 위에서, 청년들을 움직이는 것은 자유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다. (마스미츠 유이치로)

 

 찌는 듯한 더위로 온 몸에 땀이 맺히던 8월 초순 주말의 밤. 홍콩 유수의 번화가인 침사추이의 대로변 경찰서가 수천 명의 시위대에 의해 포위되었다. 쇠파이프를 든 청년이 등장했다. 첨예한 집회를 상징하는 밤이었다.

 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모인 청년들이었다. 경찰서에 벽돌을 던지는 사람도 있었고, 벽에 스프레이로 낙서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집회에는 주최측이 없었고, 파괴 행위를 막을 수 있는 사람도 전혀 없었다.

홍콩 침사추이의 경찰서 부근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시위대. 쇠파이프를 든 모습이 보인다. = 2019.8.3. 마스미츠 유이치로 촬영.

 경찰 부지 안에 주차된 차에서 불이 났다. 누군가가 막대기로 차의 창문을 깨고, 불이 붙은 물건을 차 안에 넣은 것 같았다. 황급히 사진을 찍으러 가까이 다가갔다. 차의 휘발유에 불이 붙으면 폭발할 수도 있었다. 사진을 찍은 후, 겨우 깨달은 나는 섬뜩해졌다.

 시위대의 한 사람이 취재에 응해 주었다. 19세의 무직 남성이었다. "매번 집회에 나올 때마다 경찰에게 폭행을 당하고, 최루판을 맞고 있다. 우리가 내놓은 요구에 정부는 전혀 응하지 않고 있다. 솔직히 허망하다. 그러나 투쟁은 계속되어야 한다."

 6월에 집회가 시작되면서 많은 현장에 나섰지만, 시위대가 불을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번 집회는, 범죄 용의자의 중국 본토 송환을 가능하게 하는 "송환법" 개정안의 철회를 요구하는 평화적 집회 행진이었다.

홍콩 반환 기념일을 맞아, 일을 메우고 있는 시위 참가자들 = 2019.7.1. 홍콩, 타카하나 테츠로 촬영.

 그러나 홍콩 정부가 법안을 철회하지 않는 사이에 혼란은 길어졌다. 시위대는 과격화되었다. 경찰도 대량의 최루탄으로 응전했고, 시위대는 이에 맞서 더욱 과격해졌다. 악순환이었다. 2개월여만에 700명 넘는 사람이 구속되었다.

 시민들은 구속된 이들을 "의사(義士)"라 칭한다. 한 16세 남성은 "용감한 사람이 지켜주는 덕에, 평화로운 시위가 있을 수 있다. 그들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2014년 민주화운동의 상징이었던 우산을, 이번에는 쇠파이프로 바꾼 청년들. 과연 무엇이 이들을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

입법원에 진입하기 위해 입구를 부수고 있는 시위 참가자 = 2019.7.1. 홍콩, 타카하나 테츠로 촬영.

 

■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홍콩 반환 기념일인 7월 1일. 홍콩 섬 중심부에 있는 입법원에서는 다른 분위기가 흘렀다. 수백 명의 청년들이 몇 시간 동안 유리를 부수고 청사 안으로 진입했다. 이들은 한때 회의장을 점거하고 영국 통치 시대의 홍콩 깃발을 걸기도 했다.

 SNS를 통해 당시 현장에 있었던 인물에게 연락을 취했다. 입법원에 들어가기 전, 누군가가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왜 홍콩의 청년들은 앞길을 걸고, 목숨을 걸고 투쟁할 수밖에 없는가"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고 한다.

 어떤 사람이 집회에 참가하고 있을까. 홍콩 중문대의 보고서에 따르면, 시위대의 대다수는 20-30대다. 현역 대학생이나,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주력이 되어, 학력은 비교적 높다. 가계에는 일정한 소득이 있는, "중산층"에 속한다는 응답이 많다.

 사회운동을 전공한 홍콩 침례 대학교의 에드먼드 첸 교수는, 이번 집회에서 청년들의 동력은 "홍콩이 가진 고도의 자치권이 무력화될 것이라는 위기감과, 홍콩 사회를 뒤덮고 있는 심각한 절망감"이라고 지적한다.

입법원에 진입하기 위해 입구를 부수고 있는 시위 참가자 = 2019.7.1. 홍콩, 타카하나 테츠로 촬영.

 특히 진전되지 않는 민주화가 이러한 감정을 낳는 최대의 이유가 되고 있다. 1997년 홍콩 반환을 기해 시행된 홍콩 기본법은, 점차 민주화를 추진하고 최종적으로는 행정장관과 입법회 의원을 직선제로 선출하겠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측은 2014년 직선제안을 내놓았지만, 중국에 비판적인 후보자의 행정장관 선거 출마를 막는 구조를 도입했다. 청년들은 강력히 반발하고 수용을 거부했다. 홍콩 중심부의 도로를 점거한 "우산 혁명"이 발발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강제 진압되었다. 청년들은 크게 실망했다.

 최근의 여론 조사에서, 청년(18-29세)의 75%가 스스로를 홍콩인이라고 대답했다.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최고치였다. 스스로를 중국인이라고 답한 청년은 2.7%에 그쳤다.

 중국의 영향력이 강해지는 홍콩을 포기하고, 이주를 생각하는 청년들도 눈에 띄게 늘었다.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아르바이트 노동자 라우 중잔(25)도 그렇다. 그는 우산 혁명의 좌절 이후 정치에 대한 실망감을 억누르며 살아 왔지만, 이제는 한계라고 말한다. 그는 "이 거리에서 사는 의미나 미래를 찾을 수 없다"고 밝혔다.

홍콩의 야경 = 2019.7.3. 홍콩, 타카하나 테츠로 촬영.

 송환법 문제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계기일 뿐이다. 오랜 세월 쌓여온 중국과 홍콩 정부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것은 아닐까. 나는 그런 생각을 강하게 품고 있다.

 

■ 한계에 이른 통치, 직시하지 않는 중국

 첨예화되는 홍콩 시위에 대해서, 중국 정부 홍콩 출장소가 시위대에 포위된 7월 하순 이후, 중국은 미국이 배후에서 시위대를 조종하고 있다며 "미국 배후론"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홍콩에서 "테러리즘의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강한 표현을 사용하는 등 비난의 열기를 높이고 있다.

 중국은 8월 들어, 홍콩에 인접한 광둥성 선전에 100대 이상의 무장 경찰 차량을 집결시켰다. 무력 진압을 계획하는 모습을 보이며, 위협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끝날 줄 모르는 긴박한 전개가 계속되고 있다.

 물론 홍콩 청년들의 과격한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홍콩의 청년들 사이에는, 고도의 자치를 제한하고자 하는 중국에 대한 분명한 반발이 있다. 그것을 직시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일방적으로 비난하고, 협박한다고 해도, 청년들의 가슴을 울릴 수는 없을 것이다. "홍콩은 중국의 식민지가 아니다." 과거 집회에 참가한 젊은이의 말이 가슴에 남는다.

홍콩 침사추이 경찰서 부지 안에는, 시위대가 던진 벽돌이 흩어졌다 = 2019.8.3. 마스미치 유이치로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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