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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24-25일. 더블린&런던&서울: 크라이스트 처치 성당, 성 패트릭 성당 본문

공간을 읽다/[여행] 2016 영국&아일랜드

2016년 2월 24-25일. 더블린&런던&서울: 크라이스트 처치 성당, 성 패트릭 성당

Widerstand365 2019.06.20 13:59

 드디어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숙소를 나와 조금 걸었다. 길거리에는 선거 포스터가 붙어 있다. 당시 아일랜드는 한창 선거철이었다. 2월 24일에 아일랜드를 떠났는데, 2월 26일이 총선이었다고 한다. 아일랜드는 자유주의 정당인 아일랜드 통일당Fine Gael과 보수주의 정당인 아일랜드 공화당Fianna Fáil이 정계를 양분하고 있다. 아일랜드 통일당은 과거 아일랜드 내전 당시 영국과의 조약을 인정해야 한다는 정규군 측에 뿌리를 두고 있고, 아일랜드 공화당은 내전 당시 영국과의 조약을 거부하는 반군 측에 뿌리를 두고 있다.

 물론 현재로서 이 두 당의 정치적 색깔 차이는 크지 않은 편이다. 그리고 아일랜드의 정치는 주로 이 두 당의 양당체제 아래에서 진행되어 왔다. 물론 이외에도 늦게까지 무장투쟁 노선을 주장하다 나중에 의회에 들어온 신 페인Sinn Fein이나, 아일랜드 노동당과 같은 정당도 존재한다. 2016년 당시 선거에서는 아일랜드 통일당이 1당은 차지해 소수정부를 꾸렸고, 이 정부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무튼 가로등 한 켠에 묶여 있는 선거 포스터를 본 덕에, 그 정당의 이름들을 읽을 수 있었던 덕에, 아일랜드의 현대사에 대한 생각은 더블린에 있는 내내 가시지 않았던 것 같다.

 더블린 중앙으로는 리피 강이라는 강이 흐른다. 유달리 푸른 강물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는 크라이스트 처치 성당Christ Church Cathedral에 도착했다. 참 일반적인 이름을 가진 성당이다. '그리스도 성당' 같은 이름을 가진 건데, 이런 이름 가진 성당 세계에 수백 개는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공식적인 명칭은 '성삼위일체 성당The Cathedral of the Holy Trinity'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너무 일반적인 명칭이라 특정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일반적인 이름에 비해 성당의 권위는 특별하다. 무려 11세기에 지어진 성당인데, 더블린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물론 종교 개혁이라는 것이 있기 전에 만들어진 성당이니 가톨릭 성당이었다. 그러다가 헨리 8세가 성공회를 만들면서 이 성당을 성공회 성당으로 바꾸어 버렸다. 그래서 현재로서는 성공회 성당으로서의 역할만을 하고 있다.

 더블린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인 만큼, 잉글랜드의 지배기간 동안에는 의회와 대법원이 이 성당 옆에 있었다고 한다. 어쩌면 성공회의 특권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성공회 성당 옆의 의회와 법원이라니. 오직 성공회 신자만 갈 수 있는 의회와, 가톨릭 신자를 처벌하는 법원. 물론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없다. 현재 아일랜드 의회는 트리니티 칼리지 앞에 있고, 법원은 리퍼 강변에 있다. 위 리퍼 강 사진에 오른쪽으로 보이는 고전주의적인 건물이 대법원 청사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성 패트릭 성당St. Patrick's Cathedral이 있다. 아일랜드의 수호성인인 성 패트릭을 수호성인으로 모신 성당이다. 에든버러의 수호성인인 성 자일스가 에든버러와 별 관련이 없었던 것과 달리, 성 패트릭은 아일랜드와 큰 관련이 있다. 그는 아일랜드에 처음으로 기독교를 전파한 인물이고, 아일랜드 가톨릭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아일랜드의 국화(國花)가 클로버인 것도, 그가 삼위일체를 설명하며 세잎 클로버를 사용한 데서 기인한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성 패트릭의 축일인 3월 17일은, 전 세계의 아일랜드계가 함께 즐기는 명절이 되어 있다.

 아무튼 이 성당은, 크라이스트 처치 성당보다 150년 정도 늦게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그래도 충분히 오래된 성당이다. 양식에서도 시점의 차이가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하다. 크라이스트 처치 성당은 창문의 크기가 작고 두꺼운 벽이 특징적으로 드러난다. 부벽도 잘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 패트릭 성당은 부벽과 첨탑의 사용이 적극적으로 나타나고, 창문의 크기도 눈에 띄게 커진 감이 있다. 로마네스크에서 고딕으로 이행하는 과도기의 모습을 두 성당이 보여주고 있다. 물론 모두 후대에 복원된 부분이 있어,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성 패트릭 성당 안으로 들어왔다. 이 성당 역시 처음 지어질 때는 가톨릭 성당이었지만, 헨리 8세 시절에 성공회 교회로 바뀌었다. 더블린에서는 중세에 지어진 교회가 이렇게 딱 두 개 있는데, 둘 모두 성공회 성당이 되어 있는 것이다. 영국의 식민지배 기간 동안,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변변한 집회와 신앙의 공간조차 마련되지 못했다.

 사실 이 두 성당은 대단히 이례적인 성당이기도 하다. 두 성당 모두 '대성당Cathedral'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데, '대성당'의 칭호는 해당 지역의 주교나 대주교가 머무는 한 곳의 성당에만 붙여질 수 있는 칭호다. 더블린에 대성당이 둘씩이나 있는 것은 상당히 이상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크라이스트 처치 성당이 먼저 대성당이 되었는데, 성 패트릭 성당이 정확히 언제, 왜 또 대성당으로 지정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어쨌든 두 성당 모두 공인받은 대성당이었고, 이 문제 때문에 약간의 갈등과 조정 과정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역사가 무색하게 현재로서 이 두 성당은 모두 성공회 성당이 되어 있다. 더블린의 가톨릭 주교는 갈 곳을 잃었다. 종교개혁 당시의 가톨릭 주교는 살해되었고, 이후 가톨릭 주교가 임명되기는 했지만 변변한 활동을 할 수는 없었다. 나중에 가톨릭 차별이 폐지되면서 중앙우체국 광장 근처에 성 마리아 임시 대성당이 들어섰고, 가톨릭 주교는 그 성당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과거의 자리로는 돌아가지 못했고, 더블린의 가톨릭 신자들은 여전히 그 "임시" 대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다.

 그리고 이후 성공회는, 크라이스트 처치 성당에게는 더블린의 성당을 총괄하는 주교 자리를, 성 패트릭 성당에는 아일랜드 전체의 성당을 총괄하는 주교 자리를 주어 둘 모두를 "대성당"으로 인정하고 있다.

 성 패트릭 성당 앞에는, 성 패트릭이 아일랜드에 와 여러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다는 우물의 터가 있다. 그가 이 땅에 기독교라는 종교를 들고 올 때에는, 어떤 미래까지 예상해 보았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현실은, 과거인이 생각했던 최악의 미래와 최선의 미래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

 아무튼 이런저런 생각을 안고 성당을 떠난다. 성 패트릭 성당의 성공회 주임신부 중에는 <걸리버 여행기>를 쓴 조나단 스위프트Jonathan Swift도 있었다고 한다. 조나단 스위프트는 잉글랜드계 부모 밑에서 성공회 신자로 자랐지만, 더블린에서 출생해 트리니티 칼리지를 졸업했다.

 이후 그는 잉글랜드로 건너가 <걸리버 여행기> 등을 쓰며 정치평론가, 풍자 소설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여러 정치인의 견제에 밀려 결국 다시 더블린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고, 그 때 성 패트릭 성당의 주임신부를 맡았다. 썩 성직자에 적합해 보이지 않는 이 인물은 곧 아일랜드 식민지배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을 여럿 발표했다. 덕분에 현재까지도 아일랜드에서는 꽤 존경받는 인물 가운데 하나이며, 지금도 성 패트릭 성당에 묻혀 있다.

 이제 여행을 마칠 때다. 더블린 공항으로 돌아와 런던으로 향한다. 아일랜드의 웬만한 공공시설에는 영어와 함게 게일어가 병기되어 있다. 게일어는 아일랜드에서 광범위하게 생활 언어로 쓰이지는 않지만, 영어와 함께 아일랜드의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다. 국가기관의 공식 명칭 역시 영어 표기보다는 게일어 표기를 선호하기도 한다. 아일랜드 총리를 영어로 '프라임 미니스터Prime Minister'로 부르기도 하지만, '티셔Taoiseach'라고 부르는 식이다.

 한때 아일랜드 독립운동의 중요한 주제는 게일어의 복원과 연구였고, 당시 아일랜드 민족주의 문인들은 아직 게일어가 남아 있는 아일랜드 서부를 여행하며 언어를 수집하곤 했다. 그리고 그 성과를, 이제는 이렇게 아일랜드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시 에어 링구스를 타고, 이번엔 런던으로 향한다. 아일랜드의 항공사인 에어 링구스. 상징색은 녹색, 로고는 세잎 클로버. 항공사의 이름은 게일어. 이제는 그것이 가벼이 보이지 않는다.

 런던 개트윅 공항에 닿아, 시내로 이동해 하룻밤을 묵었다. 그리고는 아침 일찍 히드로 공항으로 향한다.

 체크인이 시작되었다. 이제 서울로 갈 시간이다.

 한참을 날아 다시 돌아온 땅. 한글이 적혀 있는 땅에 돌아왔다. 역시 이 곳에서도, 그것은 그리 가볍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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