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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21일. 에든버러: 에든버러 성, 칼튼 힐, 스코틀랜드 의회 본문

공간을 읽다/[여행] 2016 영국&아일랜드

2016년 2월 21일. 에든버러: 에든버러 성, 칼튼 힐, 스코틀랜드 의회

Widerstand365 2019.06.17 14:51

 다시 다음날 아침. 에든버러 하면 당연히 에든버러 성Edinburgh Castle이다. 에든버러의 중심지이자 대표적인 유적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길을 걷다 보면, 이렇게 스코틀랜드라는 것을 알려주는 스코틀랜드 국기, 성 안드레아 기를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영국의 국기인 유니언 잭 보다는 성 안드레아 기가 더 자주 보이는 것 같다. 물론 뒤에 있는 이탈리아 국기는 피자 파는 곳이라는 의미일 뿐이다. 사실 유니언 잭보다 더 자주 보였던 것 같기도 하다ㅎㅎ

 더 뒤에 보면 멀리 에든버러 성의 일부가 보인다. 사실 이 길은 에든버러 성으로 가는 일반적인 길은 아닌데, 높이 따위 신경쓰지 않고 거리만 냉정히 알려주시는 구글신 덕분에, 거리는 짧지만 매우 급격한 경사를 오를 수 있게 되었다.

 가까이 가면 에든버러 성이 드디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힘든 경사로와 계단을 올라오면, 이렇게 에든버러 성이 위엄있는 자태를 드러내신다.

 에든버러 성은 높은 구릉 지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아주 오래 전부터 지리적인 요충지였던 것으로 추정되기는 한다. 발굴을 해 보면 선사시대까지도 거슬러 올라가는 흔적이 나온다. 다만 이 곳이 왕이 거주하는 성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은 12세기 데이빗 1세 때로 추정하고 있다.

 이후 에든버러 성은 계속해서 스코틀랜드 왕국의 왕궁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다 1603년,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는 관계의 전환을 맞게 된다. 잉글랜드의 왕이었던 엘리자베스 1세가 자손 없이 사망하면서 튜더 왕조가 끝을 맺은 것이다. 이제 어떻게든 엘리자베스 1세와 가장 가까운 사람을 찾아서 왕위에 앉혀야 하는데, 우연히도 왕위 계승 순위가 가장 높으셨던 분이 엘리자베스 1세의 5촌 조카였던 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 6세였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제 제임스 6세는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이자,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로서 두 왕국 모두를 함께 다스리게 된다. 따지고 보면 스코틀랜드의 왕가가 잉글랜드까지 통합해서 다스리게 된 것이다. 원래 스코틀랜드의 왕으로서 에든버러 성에서 살았을 제임스 6세는, 1603년에 잉글랜드의 왕에 즉위하면서 에든버러 성을 떠나 런던으로 가게 된다.

 이후 에든버러 성에는 왕이 사는 일은 없었고, 단기간이라도 왕이 체류하는 일은 1633년 이후 없었다. 성에 방문하는 것은 나중에도 몇 차례 더 있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왕궁으로 사용되는 일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내부는 여전히 여러 건물들로 가득차 있다. 왕궁으로서의 지위를 잃은 뒤에도 여러 기능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왕이 떠난 뒤에도 군대는 계속 주둔하면서 요새로서의 기능은 계속되었다. 이후 영국의 여러 정치적 격변 사이에서 전투도 많이 치뤘지만, 유지보수가 잘 된 편이라 전쟁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지금도 일부 실제 군대가 주둔하고 있다고는 하는데, 당연히 전투를 위한 목적은 아니고 의장대에 가깝다.

 나중에는 감옥이나 포로 수용소로도 쓰이곤 했지만, 건물의 역사적인 의미를 고려해 점차 지금의 용도처럼 박물관이나 전시관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1905년부터는 아예 관리 주체가 국방부에서 내무부로 바뀌었고, 현재로서는 완전히 관광객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내부에서는 과거 사용되었던 군사 시설이나, 스코틀랜드의 왕들이 사용했다는 공간, 또 관련 유물을 전시해 둔 박물관 등을 찾아볼 수 있다. 높은 곳이다보니 에든버러 전체를 볼 수 있는 경치도 좋다.

 그리고 이번에는 제대로 된 길로 내려오게 되면, 에든버러의 중심가인 에든버러 올드 타운에 닿게 된다. 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에든버러의 중심 역인 에든버러 웨이벌리 역Edinburgh Waverley Station이 있다. 그리고 에든버러 웨이벌리 역 앞에는,

 이런 높은 기념탑 하나가 서 있다. 스콧 기념탑Scott Monument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소설가 월터 스콧Walter Scott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탑이다. 이미 눈치챈 사람들이 있겠지만, 웨이벌리 역 역시 월터 스콧의 소설 <웨이벌리>에서 이름을 따 왔다. 원래 이 중앙역은 '노스 브릿지North Bridge 역'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중에 건물을 새로 지으면서 '웨이벌리'라는 이름을 가져왔다.

 이 기념탑은 1832년 월터 스콧이 사망하자마자 건설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사람들로부터 월터 스콧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물의 디자인 공모를 받았고, 최종적으로 당선된 사람은 '존 몰보John Morvo'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존 몰보'라는 이름은 가명이었고, 실제로 작품을 낸 사람의 본명은 '조지 마이클 켐프George Meikle Kemp'였다.

 조지 마이클 켐프가 본명을 사용하지 않았던 것은, 본인의 배경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켐프는 썩 변변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우수한 교육기관에서 건축학을 배운 것도 아니었다. 도제 교육 경력 몇 년이 전부였고, 실무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그 덕분에 과거에도 몇 차례 망신을 당한 적이 있었으니, 이번에는 아예 신분을 감추고 출품을 한 것이다.

 그 덕분인지 이번에는 그의 작품이 당선되었고, 1840년부터 이 기념탑 건축이 시작된다. 기념탑은 1844년에 완공되었다. 내부에는 존 스틸John Steell이라는 다른 조각가가 만든 월터 스콧의 조각상이 들어갔다. 기념탑은 61m 높이로, 문인을 위한 기념탑으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다. 첫 번째는 쿠바에 있는 호세 마르티 기념탑이다.

 기념탑의 외부는 세밀하게 장식되어 있으며, 대부분은 월터 스콧의 작품에서 모티프를 따온 것이다. 이 거대하고 화려한 기념탑은 당시 1만 6천 파운드를 들여서 만든 작품이었다. 그러나 조지 마이클 켐프는 이 작품의 완성을 보지 못했다. 작품은 1844년 가을에 완성되는데, 켐프는 1844년 3월에 안개 속에서 강물에 빠져 실족사한다. 결국 열 한 살 나이의 아들 토마스 켐프Thomas Kemp가 기념탑의 마지막 꼭대기 장식finial을 올린다. 토마스 켐프 역시 곧 건축가가 되지만, 스무 살 나이로 사망한다. 화려한 작품에 비해, 허망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공간이다.

 그리고는 잠시 산책길에 올랐다. 스코틀랜드 지역은 산이 많은 지역인 만큼, 에든버러에도 여러 높은 구릉들이 있다. 에든버러 성 역시 자연적으로 형성된 구릉 위에 있었고, 에든버러 성에서 웨이벌리 역을 바라보면 그 뒤에 보이는 칼튼 힐Carlton Hill에 올라 보았다.

 에든버러의 전경을 볼 수 있다. 360도 모든 방향에서 에든버러를 볼 수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세계 최초의 파노라마는 1787년에 로버트 바커Robert Barker라는 뉴캐슬 출신의 예술가가 이 칼튼 힐에 올라온 뒤 아이디어를 받아 만들었다고 한다. 360도의 전경 모두를 그림 안에 담은 뒤, 건물 안에 이 그림을 전시해 실제 경치를 보는 것처럼 둘러볼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당연히 어마어마하게 큰 그림이었을 것이다.

 칼튼 힐 위에 올라오면, 이런 그리스 시대의 유물이었을 것 같은 큰 구조물이 있다. 물론 그렇게 오래된 것은 아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사망한 스코틀랜드 군인들을 기리기 위해, 무려 '스코틀랜드 국가기념관National Monument of Scotland'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고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스코틀랜드 순국선열들의 기념비를 모시고 추모하는 건물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1826년에 건축을 시작했는데, 저기까지 만들고 1829년에 돈이 없어서 그만 뒀다. 그리고 저 상태로 200년 가까이 남아 계신 것이다. 처음에는 "스코틀랜드의 불명예"라는 이름을 안고 비판을 많이 받았는데, 한 200년쯤 지나고 나니 뭐 저 나름대로 랜드마크가 되어버린 것 같다.

 뒤쪽으로는 여러 건물들이 흩어져 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칼튼 힐에는 채석장부터 병원, 군대 훈련소, 감옥까지 여러 용도로 사용되었지만,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왼쪽에 보이는 탑은 넬슨 기념탑으로, 예전에는 매 시각 종을 울려주기도 했다고 한다. 이 종은 에든버러 성에서 매일 한 시에 실제 포를 쏘는 원 어 클락 건One O'clock Gun이 만들어지며 철거했다는 슬픈 이야기가 있다. 잉글랜드 사람 넬슨 제독에 대한 스코틀랜드의 대접이란 이런 거시다.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은 콜렉티브Collective라는 작은 미술관이다. 현대미술을 주로 다루고 있는 것 같은데, 굳이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내려가는 길에는 대포 한 문이 서 있다. 뜬금없이 '포르투갈 대포'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원래 포르투갈 군의 대포였는데, 동남아시아의 포르투갈 식민지를 거쳐 미얀마가 소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대포는 영국이 미얀마를 침공하며 가져왔고, 에든버러까지 건너 와 이 곳에 전시되어 있다. 에든버러 시내를 조준하고 있는 약간 애매한 방향의 대포다.

 그리고 내려가다 보면 또 한 쪽에 공동묘지가 보인다. 저기 어디쯤 스코틀랜드 출신의 철학자인 데이비드 흄David Hume의 묘도 있을 것이다. 생전에 이곳을 자주 오가셨는지 칼튼 힐의 오르는 길의 이름도 흄의 길Hume's Road이다. 에든버러를 오가다 보면 흄의 동상은 종종 보인다.

 그리고 내려가는 길에는 스코틀랜드 의회를 만날 수 있다. 지금이야 영국에는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웨일스에 의회가 따로 있지만, 생각보다 오래된 제도는 아니다. 1998년에야 주민 투표를 통해 각 지역에 따로 의회를 도입했다. 가장 오래된 의회제 국가라는 점을 생각하면, 생각보다 최근이다. 물론 대영 제국이 만들어지기 전에 스코틀랜드 의회가 따로 있기는 했었지만, 300년쯤 전에 대영 제국 의회로 통합되면서 사라졌었다.

 스코틀랜드의 경우에는, 1998년에 의회가 생긴 뒤에는 스코틀랜드 장로회 측의 건물을 빌려 썼었다. 그래서 의회가 장로회 회의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쫓겨나셔서, 다른 도시에서 스코틀랜드 의회가 열린 적도 두 번이나 있었다. 한 번은 글래스고에서, 한 번은 애버딘에서 의회가 열렸다. 결국 2004년에 이 건물이 완성되면서 세입자의 서러움은 겪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스코틀랜드 의회 앞에는 왕립 갤러리Queen's Gallery, 그리고 함께 홀리루드 궁전Holyrood Palace이 있다. 이 궁전은 16-17세기 정도에 만들어진 건물로, 당시 스코틀랜드 왕이 에든버러 성과 함께 거주지로 삼았던 곳이다. 지금의 건물이 지어진 것은 16-17세기 정도지만, 원래 12세기 부근부터 이 자리에 수도원이 있었다고 하며, 지금의 건물을 짓기 전부터 이 수도원에서 스코틀랜드 왕이 거주하거나, 의회가 열리기도 했었다.

 이후 스코틀랜드에 방문하는 영국의 왕은 에든버러 성에는 가끔 잠깐 들리는 수준에 그치고, 실제로는 이 홀리루드 궁전에 머문다. 현재는 여름 기간에 일주일 정도 머무는 것으로 정례화되어 있다. 이 기간이 아니라면 궁전 안에도 들어가 볼 수 있으니, 실제 사용되고 있는 왕궁을 구경하고 싶다면 들어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나는 시간이 늦어져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리고 조금은 이르게 이 날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에든버러의 중심가를 몇 번이나 돌아다니며 이 도시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을 수 있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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