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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20일. 뉴캐슬&에든버러: 타인머스, 북방의 천사 본문

공간을 읽다/[여행] 2016 영국&아일랜드

2016년 2월 20일. 뉴캐슬&에든버러: 타인머스, 북방의 천사

Widerstand365 2019.06.16 12:24

 다음 날에는 일찍 숙소를 나와 뉴캐슬 역까지 걸어가는 것으로 일정을 시작했다. 지난 밤에는 버스를 타고 온 길이었지만, 걸어갈만 한 거리인 것 같아 걸어 보기로 했다.

 영국적이지만 그래도 꽤 널찍한 집이 이어진 거리를 걷게 된다. 지난 시간에 짧게 이야기를 했지만, 뉴캐슬과 이 주변 지역은 산업혁명 당시 크게 융성했던 도시였다. 물론 산업혁명의 기반이 '석탄'이라는 자원이었던 만큼, 뉴캐슬은 산업혁명 이전부터 석탄 산지로 성장한 도시기이도 했다. 북동부 잉글랜드의 석탄 무역은 뉴캐슬이 한동안 독점적으로 처리하기도 했었다.

 산업 혁명 이후, 19세기부터 뉴캐슬은 석탄이라는 풍부한 동력을 기반으로 본격적인 중공업 도시로 변모하게 된다. 조선소, 철도 회사, 무기 회사들이 뉴캐슬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부유해진 도시는 인프라를 건설하기 시작했고, 뉴캐슬은 전구를 이용해 가로등을 설치한 세계 최초의 도시이기도 했다. 조지프 스완이 전구를 만들었던 것도, 찰스 파슨스가 증기 터빈을 만든 것도 모두 뉴캐슬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뉴캐슬이 전구로 가로등을 세울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배경 위에서 값싼 전기 공급이 가능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문화적인 면에서도, 뉴캐슬은 세계 최대의 도자기 산지 중 하나가 되었고, 런던, 옥스퍼드, 케임브릿지를 이어 영국에서 네 번째로 많은 출판물이 나오는 도시이기도 했다. 그 덕분일지, 뉴캐슬은 산업혁명의 버프가 끝난 지금도 대학 도시나 문화 도시로서 나름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산업혁명은 어째서 유럽에서, 그것도 영국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었는가"라는 질문은 이제까지 꽤 많은 다양한, 또 설득력 있는 답변들을 이끌어 냈다. 특히,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더 발달해 있던 중국이 아니라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발생한 것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논의되고 있는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그 가운데 가장 설득력 있는 답을 찾아보라면, 현재까지는 '석탄'의 존재를 놓칠 수 없다. 영국에는 동력원인 석탄의 생산이 풍부했다는 것이다. 물론 석탄은 중국에서도 아주 풍부하게 생산되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의 석탄 산지는 실제 선진적인 기술이 개발되고, 산업이 이루어지는 공간과는 지리적인 차이가 있었고, 영국은 석탄의 산지와 선진적인 산업의 발상지가 가까웠다는 점에서 힌트를 찾곤 한다. 이제까지 다른 여러 주장들이 통용되곤 했지만, 최근에는 결국 다시 석탄과, 그 지리적 인접성의 문제로 돌아오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석탄의 산지였고 곧 산업의 중심이었던 뉴캐슬이야말로 산업혁명 그 자체를 상징하고 있는 도시는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걷다보면 이렇게 뉴캐슬 역에 도착한다. 뉴캐슬 역은 1850년에 지어진 건축물로, 우리로 따지면 등록문화재 같은 것에 올라 있는 건물이다.

Photo by Ben Brooksbank

 한 때는 이렇게 복잡한 철도망을 호령하던 거대한 역이었다. 지금은 4-5개 정도의 철로만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건 뉴캐슬 주변 지역 교통을 지하철이 담당하게 되면서 많이 줄어든 것도 있다.

 나도 지하철을 타고 이동한다. 뉴캐슬 역 앞에 있는 센트럴Central 역에서 지하철을 탄다. 뉴캐슬을 포함한 주변 지역을 크게 도는 순환선 하나, 직선 노선 하나로 총 두 개의 노선이 존재한다. 센트럴에서 지하철을 타고, 순환선의 가장 반대편에 있는 타인머스Tynemouth가 목적지다.

 타인머스는 뉴캐슬로부터 10km 정도 떨어져 있는 동네다. 영국의 동부 해안, 그러니까 북해에 접해 있는 도시다. 그냥 여행을 갔으니 바다를 한 번은 봐야 할 것 같은데, 마침 지하철이 연결되어 있다길래 가 본 것 뿐이었다. 한적한 동네였다.

 그리고 바다를 향해 걷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오래된 성을 마주하게 된다. 타인머스 성과 수도원Tynemouth Castle and Priory이다. 딱 봐도 지금은 조금의 흔적만 남아 있는 이 성은, 꽤 깊은 역사가 켜켜히 쌓여 있는 동네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최소한 7세기 초반에는 이 곳에 수도원이 만들어졌다.

 7세기면 로마의 브리튼 섬 지배가 끝나고, 곧 현재의 독일이나 덴마크 부근에 살던, '앵글로색슨'이라는 이름을 나중에 부여받게 되는 사람들이 브리튼 섬에 올라왔던 때다. 이들은 영국에 총 일곱 개의 왕국, 소위 '칠왕국Heptarchy'을 세운다. <왕좌의 게임>이 생각난다면, 딱히 틀린 건 아닌 것 같다. 조지 R.R. 마틴 선생께서 영국사에 깊히 감명을 받으셨구나, 생각하면 된다.

 아무튼 이 칠왕국 시절 때, '노섬브리아Northumbria'라는 왕국의 에드윈Edwin 왕이 이 수도원을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다가 이 지역은 9세기 즈음에 데인Dane 족의 침입을 받게 된다. 지금의 덴마크 지역에서 온 이 데인 족은, 브리튼 섬을 침공해 동부 해안 일대를 광범위하게 점령했었다. 그 때 당연히 타인머스 역시 침략을 받았고, 당시 수도원을 지키기 위해 처음으로 주변에 성벽을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방어는 실패했고, 9세기부터 이 수도원은 파괴된 상태로 남게 된다. 작은 본당 하나만 남게 되었다고 한다.

 수도원은 지금 이렇게 남아 있다. 대단히 오래된 건물인데, 이렇게까지 남아 있는 것도 사실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해변을 따라 성벽이 둘러쳐져 있다. 처음 데인 족의 침입 때 쌓았던 성벽은 물론 이렇게 튼튼한 형태는 아니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흙이나 나무를 이용해 성벽을 쌓았었고, 13세기 이후에 돌을 이용한 성벽을 다시 쌓았다고 한다. 하지만 성벽 역시 파괴된 부분이 많다. 사진에 나오는 쪽은 나름 잘 보존되어 있었던 곳이다.

 폐허가 된 수도원 뒤에는, 저 멀리 보이는 것처럼 묘지가 마련되어 있다. 날씨는 흐리고, 폐허가 된 중세의 수도원 앞에서 공동묘지를 보고 있으면 약간 저주에 걸릴 것 같은 스산함이 몰려 온다. 이 묘지에는 여러 역사적인 인물들이 묻혀 있는데, 생전 왕이었던 분도 세 분이나 계신다. 두 명은 노섬버리아 왕국의 왕이었고, 한 명은 스코틀랜드의 왕이었다. 다들 묻힌 지 최소 천 년 정도는 되신 분들이지만, 한 명도 멀쩡하게 돌아가신 분 없이 살해당하셨던 지라 알면 알수록 스산함은 더해진다. 심지어 이 때 여기 입장해 있는 사람이 나 혼자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 쪽에는 이런 건물이 서 있다. 유적지로서 말고도, 한 때는 중요한 등대가 있던 곳이기도 했고, 군사 기지가 있던 곳이기도 했으니 뭔가 다른 기능이 있는 건물이지 싶었다. 수상한 송신탑은 왠지 접근하기 어려운 오오라를 뿜긴다. 폐허와 공동묘지 옆에 이런 게 있으면, 왠지 접근했다가 공동묘지에 함께 묻히게 될 것 같아 멀리서 지켜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이렇게 해안포를 전시해 두기도 했다. 이 곳에는 19세기 말부터 해안 방어 기지가 만들어져 임무를 수행했고, 2차대전까지도 작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군사적인 기능은 없고, 그냥 복원해 전시해 둔 것 뿐이다. 지하에는 벙커도 재현해 두었는데, 역시 그 음산함은 가시지 않는다. 지하 벙커로 들어가는 길은 좀 무서울 정도다.

 아무튼 이렇게, 나름 산책하기 좋은 곳이었다. 경치도 좋았고.

 그리고 옆에는 좁은 해변이 있다. 바다 보러 왔는데, 정작 바다는 별로 안 보고 중세 폐허나 열심히 보고 왔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돌아와서,

 뉴캐슬의 중심가로 돌아왔다. 뉴캐슬 역에서 조금만 나오면, 뉴캐슬 대학과 노섬버리아 대학, 그리고 그 사이의 뉴캐슬 시의회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중심가에 닿을 수 있다. 역시 이번에도 열차 시간이 많이 남았던 덕분에, 이번에는 아예 예정에 없었던 곳을 한 번 가 보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교외의 도로를 조금 달리면, 이런 휑한 도로 한 복판에서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한다. 저 멀리 보이는 요상한 예술품을 보기 위해서인데,

 이렇게 거대한 작품이다. 북방의 천사Angel of the North라는 작품이다. 1994년에 만들기 시작해서 1998년에 완성된 철제 구조물이다. 무려 당시 돈으로 80만 파운드를 사용한, 지금 이 낮아진 환율로 계산해도 10억이 넘는 돈을 투입한 작품이다. 복권기금에서 돈을 대서 만들었다고 한다.

 당연히 건설에 대해서 반대가 많았다. 접근하기 힘든 위치에 있고, 버스에서 내려 길을 건너 가기가 매우 힘든 곳이다. 디자인이나 건설 자체에 대한 반대도 있었다. 10억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다른 일들도 많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당시 몰락해가고 있던, 지금처럼 예술이나 대학을 중심으로 한 도시로 탈바꿈하지 못한 영국 중부의 도시들에게는 무엇이든지 필요하다는 절박함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나름 상징이 되기도 했고. 솔직히 열심히 교통비를 사용해 가면서 이 곳에 와서 사진을 찍고 간 사람으로서 실패작이라고 말하기에는 민망한 감이 있다. 10억으로 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이 있었겠지만, 그것 중 어떤 일이, 멀리 극동의 여행자가 와서 돈을 쓰게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오직 예술만이 할 수 있는 일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돌아오면 뉴캐슬은 서서히 밤에 잠기고 있다.

 나는 기차를 타고 에든버러로 간다. 사실 북방의 천사를 보고 온 뒤에도 역에서 꽤 오래 기다렸는데, 역사가 완전히 오픈되어있는 구조라서 추위에 떨고 있었다. 덕분에 남은 영국 여행에서는 감기에 걸릴 듯 말듯한 몸 상태를 이어가게 되었다.

 그렇게 에든버러에 도착하고, 숙소에 돌아가 한적했던 하루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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