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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읽다/[역사] 뒤돌아서 오늘을 보다

기독교, 세 번째 위기: 소멸과 변화의 갈림길에서

Widerstand365 2016. 5. 28.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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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세 번째 위기

소멸과 변화의 갈림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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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에서 기독교 탈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주 영국 <가디언> 지는 세인트 메리 대학교의 연구 결과를 인용, 영국 내 무교도가 기독교도의 수를 앞질렀다고 전했다. 전통적인 기독교 국가였던 영국에서, 종교를 버리는 인구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조사에 따르면, 잉글랜드와 웨일즈 지역에서 집계된 무교 인구는 전체의 48.5%였다. 개신교와 가톨릭 신자를 모두 합한 기독교 인구는 43.8%였다. 근소한 차이로 무교 인구가 앞선 것이다.


 특히 무교 비율은 급격하게 증가했다. 2011년에 집계된 무교 비율을 보면, 25% 정도에 그친다. 몇 년 사이에 두 배 가까이 성장한 것이다. 기독교도는 그만큼 줄어들었다. 특히 성공회의 경우 신도 유출이 심각한 수준이어서, 새로 1명의 신도가 유입될 때마다 12명의 신도 유출이 벌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기독교의 몰락은 최근에 와서야 벌어진 일은 아니다.




 기독교의 첫 번째 위기는 18세기 후반에 있었다.


 18세기는 흔히 ‘계몽의 세기’라고 불리지만, 사실 18세기 전반은 기독교의 영향력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다. 가톨릭과 개신교 모두에서 그랬다.


 가톨릭의 사례를 보자. 전체 인구 대비 성직자의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헝가리에선 수도원의 수가 50년 만에 거의 두 배로 성장했고, 폴란드에선 3분의 2가 늘었다. 1750년대에 프랑스에만 8천 개가 넘는 수도원이 있었다.


 거대한 순례객의 행렬도 줄지 않았다. 1600년대에 매년 평균 12만 명 정도가 찾던 오스트리아의 성소 ‘마리아첼’을, 1753년에는 37만 명이 찾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언장에, 수도원에의 기부와 본인을 위한 미사 봉헌을 부탁했다. 출판되는 도서도 대부분 종교서적이었다.


 신교도 다를 바 없었다. 종교개혁의 열정이 쇠퇴하며 신도들의 열성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독일에서는 ‘경건주의(Pietism)’가, 영국에서는 ‘감리교(Methodism)’가 성장하며 신교를 다시 한 번 부흥시켰다.


 특히 영국 감리교의 역할은 대단했다. 평민들을 대상으로 종교 운동을 펼친 감리교는 얼마 지나지 않아 10만 명 넘는 추종자를 끌어들였다. 경건, 노동, 자기수양 등 신교의 교리는 대중에게 깊숙이 스며들어 있었다.


 문제는 18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부터 나타났다. 종교적 회의주의가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예수회의 몰락’은 주목할 만하다. 가톨릭 종교개혁을 주도하며 종교적 경건성의 최전방에 섰던 예수회는, 가장 강력한 가톨릭 국가라는 포르투갈을 시작으로 각국에서 쫓겨나기 시작했다.


 종교가 관장하던 수많은 부분을 이제 국가가 관리하기 시작했다. 문화적으로도 바로크 양식의 쇠퇴가 시작됐다. 종교적 강력함을 표현하던 바로크 양식은, 장식적이고 화려한 로코코 양식으로 대체되었다. 교육도 이젠 교회가 아니라 학교의 몫이 되었다. 유언장에서도 이젠 종교가 아니라, 유산 상속권 문제가 가장 중요해진다. 거대한 계몽주의의 물결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계몽주의. 그것은 기독교가 맞은 첫 번째 위기였다.





 하지만 그것이 곧바로 기독교의 몰락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여전히 민중들은 기독교적 문화를 내면까지 흡수하고 있었으며, 시민 사회에서는 오히려 종교적 신심이 강화되고 있었다. 특히 종교가 국가와 분리되면서 각국이 신앙의 자유를 부여한 것이 중요했다. 자유로운 종교 활동이 더 활발해졌다.


 여전히 신학교의 영향력은 강력했고, 작은 마을에서 성직자가 가진 영향력은 거대했다. 기독교의 문화적 전통은 무너지지 않았고ㅡ 오히려 확장되고 있었다. 무신론과 이신론이 확대되었지만 어쨌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주 습관처럼 교회에 나갔다.


 기독교의 국가적 영향력은 줄어들었지만, 기독교도의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기독교도의 수가 직접적으로 줄어든 것은 양차 세계대전 이후였다. 인류 사상 가장 끔찍한 재앙이었다는 세계대전은 말 그대로의 전면전이었다. 온 국민이 하나 빠짐없이 전쟁에 참여해야 했다. 많은 이들이 총을 들고 전장에 나갔고, 그만큼이나 많은 이들이 후방에서 전쟁을 위해 일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1차 세계대전에서 사망한 병사만 1천만에 달했고, 2차 세계대전에서 사망한 병사는 2천 5백만에 달했다. 특히 2차 세계대전에선 민간인 피해도 극심해서, 5천만 명 가까운 민간인이 전쟁 중에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다.


 종교적 회의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전쟁 중에 사망한 사람들은 제대로 미사도 받지 못하고 숨졌다. 전쟁터에 죽음을 위로할 수 있는 신부가 얼마나 있었겠는가. 교리에 따르면, 그들은 지옥에 가야 했다. 최소한 연옥에 가야 했다.


 국가를 위해 충성하다 전쟁터에서 학살당한 군인들이 지옥에 가야 한다니. 사람들은 고민에 빠졌다. 대체 하나님이 있다면 우리는 왜 이런 끔찍한 고통을 겪고 살아가는가. 그 고통 속에서 죽어간 이들을, 성사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영원한 불구덩이에 넣는 신은 대체 어떤 신인가. 그는 진정으로 우리를 사랑하는가. 사회 전체에 회의주의가 짙게 배어들었다.


 유럽에서 기독교도의 수가 직접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때로 완전히 종교를 버렸고, 때로는 새로운 종교를 찾아갔다. 유럽에서 불교도가 생겨났고, 신흥 종교가 힘을 얻어갔다. 전통적인 기독교의 힘은 약화됐다. 유럽의 탈기독교화가 가속되기 시작했다.


 기독교의 두 번째 위기는 양차 세계대전이었다.






 그리고 지금, 기독교는 세 번째 위기를 맞고 있다.


 세 번째 위기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는 ‘리버럴의 확장’이다. 자신에게 가해지는 권위를 부정하고, 최소한의 억압만을 원하고, 구시대적 윤리관념을 떨쳐버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자유로움을 원하는 세대가 등장했다.


 그동안 종교가 세력을 유지하는 방법은 단순했다. 종교는 이제까지, 새로운 신자를 끌어들일 필요가 없었다. 기독교도인 부모를 따라 자식 세대도 자연스럽게 예배에 참석했다. 기독교는 세습됐다. 그 세습만으로도 크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위에 언급한 세인트 메리 대학교의 연구 결과를 다시 끌어와 보자. 부모가 성공회 교도일 경우, 자녀가 종교를 이어받은 경우는 52%에 불과했다. 41%는 무교를 택했다. 가톨릭 신도의 자녀 역시 38%가 무교를 택했다.


 새로 등장하는 세대는 종교의 권위를 원하지 않는다. 자신이 습득한 윤리관에 의해 모든 일을 스스로 판단한다. 만약 종교가 자신의 윤리관을 고치라고 강요한다면, 그들은 윤리관이 아니라 종교를 버린다. 종교가 새로운 세대의 사상을 따라가지 못하는데, 종교의 영향력마저 줄어들다 보니 사람들이 얼마든지 종교를 떠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동성 결혼 허용 논란, 낙태 허용 논란, 이혼 허용 논란, 안락사 허용 논란에서 종교가 보수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 문제가 됐다. 젊은 세대는 이런 윤리적 잣대를 원하지 않는데, 기독교 입장에서는 결코 물러설 수 없는 문제가 이것들이다. 젊은 세대와 교회 사이의 결별에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이유다.


 엄격한 윤리적 잣대를 원하지 않는 자유주의의 확산이, 기독교의 세 번째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기독교는 그렇게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종교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얼마든지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 마음에 위안을 주기도 하고, 실천해야 할 구체적인 윤리 강령을 제시해 사회가 유지되는 데 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사람들이라고 종교의 그런 역할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종교는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고 있다. 기독교의 근거지였던 유럽에서부터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사람들은 종교가 어떤 역할을 해 주는지 알면서도, 자유주의를 택하고 있다. 영국에서 기독교 인구를 무교 인구가 앞질렀다는 것은 어떻게 봐도 놀라운 신호다.


 기독교의 보수성이 젊은 세대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기독교의 미래가 점점 더 어두워질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시간이 갈수록 기독교도는 줄어들 것이며, 이 세 번째 위기가 끝날 때 즈음에 얼마나 많은 기독교도가 남아있을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제 기독교에게도,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소멸과 변화의 사이에서 선택해야 할 시간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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