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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8일. 새로운 것 / 류샤오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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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8일. 새로운 것 / 류샤오보

Widerstand365 2015. 12. 28. 09:00

2015년 12월 28일.



[오늘의 음악] 새로운 것


 어제는 갑자기 메일로 ‘다급한 일’이라여 메일이 왔다. 놀라서 열어보니 어떤 사이트의 운영자가 내 글을 표절하고 있었다고 한다. 대체 이 작은 블로그에까지 들어와서 표절을 하는 사람이 있다니, 놀라웠다. 이야기를 찬찬히 들어보니 완전히 가져다 베낀 것은 아니고, 내 글을 주로 참고해 글을 썼는데 출처 명기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비공개 카페라고 하니 들어가서 확인해볼 수는 없었지만, 안에서 적당히 처리가 된 모양이었다. 나는 다만 다음부터는 출처 표기를 잘 해주었으면 좋겠다고만 의사를 전달했다. 놀랍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에 참 양질의 정보가 많은데 왜 하필이면 이 블로그였을지, 그게 놀라웠다. 거기에 완전히 똑같지도 않은 글을 어떻게 찾아서 나에게 알려 줬는지, 그런 일에 수고해 주시는 분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리고 과연 내 글을 가져가는 게 잘못된 일인지, 문득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을 나는 대체적인 진리로 받아들이는 편이다. 나의 글도 에세이 부분이나 구성은 내가 직접 하지만, 주된 내용은 다른 사람이 연구한 내용을 참조해서 가져오는 게 대부분이다. 물론 참조문헌 표시는 하지만, 그렇다고 내용이 온전히 ‘나의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것은 없다. 누군가가 나의 글을 참조해 글을 썼다는 이야기에 별로 놀라거나 불쾌하지 않았던 것은, 그게 사람들이 글을 쓰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참조문헌을 기입하는 것도,  인터넷 글쓰기에서는 일일이 기입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한다.


 물론 그것은 잘못된 관례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고 있다는 사실 전달을 하는 것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글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베껴온 것도 아닌데 ‘참조문헌을 표시하지 않았다’며 일일이 비판할 수 없다는 현실도 존재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하지만 그런 만큼,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글이 ‘새롭지 않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그렇다면 자신의 글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최대한 밝히려고 노력하는 것이 글쓴이가 가진 책무이리라, 하는 결론에 다다른다.


 나는 ‘나의 글’을 쓰지만, 그것이 온전히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남의 것’을 어디서 어떻게 빌려왔는지 밝히려고 하고, ‘나의 것’과 ‘남의 것’을 구분해내려고 노력한다.


 다만 사람들이, 그런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노력은 해 주었으면 하는 단순한 바람이다.


 오늘의 음악, 유니크의 ‘Born to Fight’로 골랐다.





[오늘의 역사] 류샤오보


 1955년 12월 28일, 류샤오보가 탄생했다.


 류샤오보는 중국 지린 성 창춘에서 태어났다. 지린 대학교 중문학과를 졸업했고, 이후 베이징 사범대학에서 중문학으로 석사 학위를, 문예창작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학자가 되기 위한 길을 충실하게 밟고 있었다.


 당시 그는 상당히 촉망받는 학자였다고 알려져 있다. 작가로서도 또 학자로서도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스위스와 미국으로 넘어가 중국 철학과 중국 문화에 대해 교수 자격으로 강의를 할 정도였다. 그는 학자로서 상당히 괜찮은 길을 가고 있었다.


 류샤오보는 1989년에도 미국 하와이 대학에서 연구원 자격으로 체류하고 있었다. 문제는 당시 중국에서 민주주의와 자유를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지면서부터였다. 그리고 중국의 정권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들의 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천안문 사태’라고 불리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었다.


▲ 중국 천안문 항쟁.



 류샤오보는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저항이 벌어지고, 이들이 천안문 광장을 점령했다는 사실을 전해 듣자마자 중국으로 급거 귀국했다. 류샤오보는 천안문 광장에서 적극적으로 활약했고, 시위대 대표로 중국 정부와의 협상에 임하기도 했다.


 하지만 알려져 있다시피 중국 정부는 천안문 광장에 모인 시위대를 무력으로 유혈 진압했다. 수백에서 수천에 이르는 사망자가 나왔고, 류샤오보는 학살의 피해자가 되지는 않았지만 학살의 목격자가 되었다.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중국 인권 운동에 투신하게 됐다.


 류샤오보는 단식 투쟁을 벌이며 천안문 사태의 진상 조사를 요구했고, 전공을 살려 각종 집필 활동을 개시했다. 주로 중국의 민주화와 인권 신장을 위한 내용이었다. 그는 가장 투쟁적인 활동가로 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이 그런 그를 그대로 놔둘 리가 없었다. 천안문 사태 직후 구속되었다가 풀려났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 감옥 생활을 맞는다. 20개월 동안의 구속 생활이었다.


 구속에서 풀려난 뒤에도 그는 반체제 인권운동을 계속했고, 1996년에는 천안문 사태 희생자의 명예 회복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다 노동 개조형 3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다시 세 번째 감옥 생활에 들어갔다.


▲ 류샤오보 (刘晓波, 1955.12.28 ~ )



 그는 출소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인권 운동에 투신했다. 2008년에는 중국의 반체제 학자, 법률가, 기자 등 303명을 규합해 ‘08 헌장’이라는 것을 발표하기도 했다. 중국의 민주와 개혁을 요구하고, 새로운 정당을 창당해 중국 공산당에 대항하자는 의미로 발표된 헌장이었다. 물론 중국 당국은 이를 내란 선동으로 규정했고, 그는 국가 권력 전복 선동 혐의로 징역 11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네 번째 수감 생활에 들어갔다. 2009년부터 수감되었던 그는 현재까지도 중국 랴오닝 성 진저우 시의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 류샤오보는 이미 중국 민주화의 상징이 되어버렸기에 중국 당국은 그를 죽이지도, 석방하지도 못하고 그저 가둬두고만 있는 상황이다.


 다만 그가 감옥에 있던 사이 대단히 의미 있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2010년, 노벨 평화상의 수상자로 류샤오보가 선정된 것이다. 중국 정부는 노벨 위원회에 적극적으로 항의했지만, 중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에서 이 수상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중국 정부는 결국 감옥에 있는 류샤오보 본인은 물론, 류샤오보의 모든 가족과 친적, 측근 인권운동가 수백 명을 무더기로 출국 금지 조치했다. 류샤오보의 노벨 평화상 대리수상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노벨 위원회 측에서는 타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국 인권운동가를 통해 대리 수상을 할 수도 있었지만, 상징적 의미를 부여해 빈 의자에 노벨 평화상 메달을 수여했다. 이는 나치 독일 시대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중국 정부는 이에 항의해 ‘공자 평화상’이라는 상을 만들어 노벨 평화상에 대항하겠다는 의지를 표했다. 2010년에 초대 공자 평화상 수상자로는 대만의 롄전 전 부총통이 선정되었지만, 롄잔은 이를 거부했다. 2011년에는 2대 공자 평화상 수상자로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을 선정했지만, 푸틴은 이를 무시했다. 중국은 중국에 유학 온 러시아 유학생 한 명을 섭외해 대리 수상을 시켰다. 결국 2회 만에 이 상은 초라하게 폐지되었다.


 이후 중국은 2012년에 모옌이 노벨 문학상을 받자, 류샤오보에 대한 언급은 한 마디도 없이 모옌이 중국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라고 발표했다. 사실 ‘가오싱젠’이라는 중국인 작가가 앞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었지만, 그는 반체제적인 소설을 썼다가 프랑스로 망명을 떠나 시민권을 획득한 상황이었기에 중국인으로 보지 않았다. 모옌이 반체제 인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중국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다.


 중국에서의 인권 투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중국은 그를 은폐하려고 시도하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살아 중국 인권 운동의 심장으로 남아 있다. 오늘의 마지막 부분은, 류샤오보가 참석하지 못한 노벨 평화상 시상식에서 노벨상 위원회장이 했던 연설의 일부로 갈음하겠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는 국가도, 국가 내부의 주류 집단도 무제한적인 권력을 가지지는 않습니다. 인권이야말로 그들이 가진 권력의 범위를 제한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국제연합의 모든 회원국이 따라야 할 것이고, 더 나아가 전 세계적인 선언으로 확장되어야 할 것입니다. (...) 중국의 헌법조차도 기본적인 인권을 인정합니다. 중국 헌법 35조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시민들은 연설, 언론, 집회, 결사, 시위의 자유를 보장받는다'라고 규정합니다. 41조는 시민들에게 국가기관을 비판하거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구절로 시작합니다. 류는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했을 뿐이고,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습니다. 류는 석방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이작 뉴턴은 생전에 '내가 더 멀리 볼 수 있다면, 그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 있기 때문이다'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것은, 긴 세월동안 때로는 위험을 무릅쓰고서도 신념을 지키기 위해 일어서서 우리에게 자유를 이끌어낸 수많은 이들의 어깨 위에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다른 많은 이들이 돈을 세면서 눈앞의 국익만을 좇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할 때,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다시금 우리 모두를 위해 싸워준 이를 지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류샤오보의 2010년 노벨평화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류의 시각이야말로 결국에는 중국을 굳건하게 다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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