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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7일. 여행 / 유신 본문

시간을 읽다/[오늘] 월화수목금토일 (終)

2015년 12월 27일. 여행 / 유신

Widerstand365 2015. 12. 27. 09:00

2015년 12월 27일.



[오늘의 음악] 여행


 어린 시절, 소풍 가는 전날 밤 잠을 설치던 기억까지는 꼭 되짚어 돌아가지 않아도 좋다. 언제나 여행의 전날 밤은 설레기 마련이다. 아주 짧은 여행이라도 그렇고, 돌아오지 않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라도 그렇다. 잠을 설치는 정도를 넘어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 결국 해 뜨는 것까지 보고야 마는 사람도 있고, 마음 편히 일찍 잠들었다가 일찌감치 일어나 해 뜨는 것을 보는 사람도 있다. 여행의 종류도, 그리고 설렘의 종류도 사람마다 가지각색이다.


 나는 여행 가는 일을 즐긴다. 뭐 사실 아침에 일어나 그 귀찮음을 떨쳐버리는 게 어렵긴 하지만, 그래도 서울에 올라온 뒤엔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일을 즐기게 됐다. 궁궐대모험을 떠나기도 하고, 참배대모험을 기획하기도 한다.


 아까 잠을 설치는 사람도 있고, 일찍 잠들었다 일찍 일어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나는 어떤 종류냐면, 반반이다. 늦게 잠들고선 일찍 일어난다. 밤에는 글을 써야 하니 늦게 자게 되고, 아침에는 일찍 나가야 하니 일찍 일어나게 된다. 피곤함만 더해간다.


 하지만 그 피곤함 속에서도 묻어나오는 무언가가 있다. 해도 뜨지 않은 새벽, 붉게 타오르기 시작한 하늘과 푸르게 요동치는 하늘 사이를 가로지르는 황금빛 경계, 그리고 그 사이를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저 해 뜨고 해 지는 매일의 일상이라는 듯 가로지르고 있는 한 무리의 구름. 아무 것도 아닌데 경이롭다.


 설렘까지 느껴지지는 않는다. 뻔하디 뻔한 사람들과 가는 뻔하고 뻔한 여행, 기대할 거리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오늘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낸 것은 그 ‘뻔하디 뻔한 사람’이 내겐 너무도 소중한 사람인 이유일까.


 당신은 어느 누구와 어떤 여행을 떠나는가.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어느 유명한 광고 카피도 있다지만, 뭐 또 딱히 열심히 일하지 않았으면 어떤가. 세상 전체가 여행이고 살아있는 모두가 여행 중인데.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저기 직선으로 반듯이 그어진 구름은 비행기가 지나간 흔적인가.


 오늘의 음악, 김동률의 ‘출발’이다.





[오늘의 역사] 유신


 1972년 12월 27일, 유신 헌법이 최종적으로 제정되어 효력이 발생되기 시작하였다.


 유신 헌법을 발표하는 청와대 당시 김성진 대변인


 유신 헌법의 배경부터 살펴보자. 1960년 박정희가 5.16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이후, 그는 1963년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1967년에는 대통령에 재선되었다. 당시 헌법은 대통령의 3선 출마를 제한하고 있었는데, 박정희는 1969년 3선 출마 가능으로 바꾸는 ‘3선 개헌’을 강행했다. 장기집권을 막기 위한 대통령제의 관례인 3선 제한을 파괴한 것이다. 결국 헌법은 개정되었고, 박정희는 1971년 세 번째 대통령 선거에 돌입한다.


 그렇게 치러진 제 7대 대통령 선거. 민주공화당의 박정희 후보와 맞붙은 이는 신민당의 김대중 후보였다. 당시 43세의 김대중은 ‘40대 기수론’을 이끌고 나와 경선에서 김영삼에 역전승을 거두고 돌풍을 일으키고 있던 인물이었다. 국민의 여론은 더 이상 박정희에게 우호적이지만은 않았다.


 박정희는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선거전을 펼쳤고, 현직 대통령으로서 이용할 수 있는 권력을 최대한 이용했다. 물론, 이 표현에는 ‘부정선거’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언론에 대한 통제는 독재 정권의 당연한 수순이었으니 말할 것도 없다.


 박정희 후보는 “여러분께 다시는 나를 찍어달라고 하지 않겠다.”는 말로 호소했다. 3선 개헌은 있었지만 4선에 출마하지는 않을 거라는 의도였다. 이에 김대중 후보는 “박정희 후보가 헌법을 고쳐 총통이 되려 한다.”고 맞붙었다.


 선거 결과는 박빙이었다. 박정희 후보가 53.2%, 김대중 후보가 45.2%. 표차는 백만 표도 나지 않았다. 백만 표, 박정희 입장에서는 등골이 서늘했을 것이다. 만약 공정한 언론기반 위에서, 공작과 지역감정 조장 없이 정치를 했다면 대한민국의 7대 대통령은 김대중으로 기록되었을지 모른다.


 다음 선거는, 이라는 생각까지 이르렀을 때 박정희 대통령은 아찔했을지 모르겠다. 잠깐만, 다음 선거? 박정희 대통령은 스스로 4선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약속 이행 뭐 그러거 없었다. 결국 선거에서는 질 것 같고, 정권은 잡아야 하겠고. 그러다보니 당연히 민주주의를 무시하며 만들어진,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헌법, 유신 헌법이 탄생하게 된다. 사람들은 “다시는 나를 찍어달라고 하지 않겠다”는 박정희의 예언과 “총통이 되려 한다”는 김대중의 예언이 모두 맞았다며 자조했다.


 유신 헌법은 한태연, 갈봉근과 같은 헌법학자들이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들은 당시 이 헌법을 자신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안에 자신이 만들었다고 서명을 강요당한 방식이었다고 변명한다. 이들의 변명을 모두 믿을 수는 없겠지만, 아마 당시 유신 헌법을 만든 주역은 당시 공안검사로 박정희의 총애를 받던 김기춘일 것으로 추정한다. 스스로도 별 부정은 하지 않고 있고.


 유신 헌법을 만든 것으로 알려진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결국 10월 17일, 박정희는 대통령 특별선언을 발표하고 국회를 해산시켰다. 동시에 모든 정당과 정치인의 정치 활동을 중단시켰고,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계엄 선포와 동시에 계엄사령부가 설치되었고, 계엄사령부는 정치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집회를 모두 금지하고, 언론ㆍ출판ㆍ방송ㆍ보도가 사전 검열을 받도록 했다. 전국의 대학교에는 모두 휴교령이 떨어졌다.


 국회가 해산되었으니, 대통령 특별선언에 따라 국회의 권한을 대행하게 된 비상국무회의에서 유신 헌법은 열흘 뒤인 10월 27일 의결되었다. 11월 21일 국민 투표에 부쳐져 투표율 91.9%에 찬성 91.5%의 압도적인 지지율로 통과되었고, 12월 27일 최종적으로 헌법이 공표되고 시행되었다.


 물론 유신 헌법이 그렇다고 절차적 정당성을 가진 것은 아니다. 애초에 ‘대통령 특별선언’이라는 것이 헌법적 근거가 없는데다가, 일단 국민의 지지를 받아 개헌 저지선을 확보한 야당이 있는 국회를 해산했다는 것은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11월 21일 국민 투표가 있었고, 논란이 지속되자 다음 해 재신임 투표를 벌였지만 결과는 모두 찬성이었다. 하지만 이것을 진정 국민의 의견이라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비상계엄으로 당장 군인들이 경찰을 대신해 치안을 담당하고 있고, 국민의 기본권마저 제한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언론은 검열된 보도만을 내보냈고, 애초에 정치활동 자체가 금지돼서 유신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었다.


 내용 측면에서도 그 정당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통령 직선제를 폐지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를 설치해 대통령에 대한 간접 선거를 실시했다. 간접 선거가 민주적인 체제 하에서 잘 운용되어도 부작용이 많은데, 독재 체제에서는 어땠겠는가. 국민 하나하나는 포섭할 수 없어도,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몇 백 정도는 손쉽게 포섭할 수 있다. 그리고 일단 통일주체국민회의의 의장은 대통령 박정희가 맡았다.


 국회의원 3분의 1은 대통령의 추천으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했다. 통일주체국민회의가 대통령의 추천을 거부하면? 찬성할 때까지 다시 투표한다. 대통령에게 헌법의 효력을 정지시킬 수 있는 긴급조치권을 부여해, 초헌법적 권력이 대통령에게 부여됐다. 실제 이 긴급조치를 박정희는 9호까지 발령했다. 국회 해산권과 법관 전부에 대한 임명권과 파면권을 대통령에게 주어 3권 위에 대통령이 군림하게 되었다.


 유신 헌법 치하에서 박정희 정권에 저항하던 수많은 사람들은 ‘합법적으로’ 혹은 ‘합헌적으로’ 탄압당했다. 대표적인 사건인 ‘김대중 납치 사건’의 피해자였던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었고, 유신의 최루탄 속을 거닐던 이들은 여전히 정치계에서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유신의 뒤뜰을 거닐던 이는 대통령이 되었고, 유신 헌법을 만들었던 김기춘은 청와대 비서실장이 되었다. 시대는 과연 어디까지 퇴보할 수 있는가. 유신 헌법이 발효되었던 날, 우리가 역사 앞에 참회하는 마음으로 던져야 하는 질문이다. 우리는 어디까지 막아낼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어디까지 밀려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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