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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읽다/[칼럼] 먼지에서 세상 찾기

<4월은 온다>

Widerstand365 2012.07.10 20:24

<4월은 온다>

 

T.S. 엘리어트의 <황무지>라는 시를 들어본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구를 들어본 이는 많을 것이다. 4월은 잔인한 달. 엘리어트라는 시인이나 <황무지>라는 제목보다는 이 시구로 더 유명한 <황무지>를 통해, 엘리어트는 꽃피는 봄인 4월을 잔인한 달이라 명명했을까?

4월은 봄의 절정이다. 3월처럼 꽃샘추위가 찾아와 겨울을 연상케 하지도 않으며, 5월처럼 갑작스레 찾아오는 더위에 여름을 연상케 하지도 않는 완연한 봄이다. 봄은 어떤 계절인가. 봄은 겨울의 추위를 떨쳐버리고 따뜻함을 가져오는 계절이며, 겨우내 움츠러든 모든 것들이 움트는 시기이다. 4계절의 시작인만큼 모든 생명이 새로운 약동을 준비하는 시기이며, 출발하는 생명들에게 따뜻한 기운을 불어넣는 계절이다.

그런데 4월은 왜 잔인한 달일까. 4월은 무엇보다도 새로운 노력을 해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황무지> 에는 겨울은 오히려 // 우리를 따뜻하게 우리를 감싸 주었었다. / 망각의 눈이 대지를 덮고 / 마른 구근으로 가냘픈 생명을 키웠다. 라는 시구가 등장한다. 망각의 눈이 대지를 덮어 우리에게는 노력 없이도 가냘프게나마 생명을 키울 수 있었고, 오히려 눈은 우리를 따뜻하게 감싸주듯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왜 차가운 망각의 눈이 우리에게 따뜻한 감싸줌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이 시구에서의 망각은 자아에 대한 망각이며, 사회에 대한 망각이고, 곧 세상에 대한 총체적인 망각이다. 망각 속에서 우리는 편하게 살 수 있다. 지금의 나 이외에는 어떤 것도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진정한 삶이라고 할 수 없다. 진정한 삶은 지금의 나 뿐 아니라 과거의 나, 미래의 나, 그리고 사회 전반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아픔을 인식하는 것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우리는 이 고통을 겪어야지만 하나의 인간이 될 수 있고, 진정한 삶을 살 수 있다. 4월, 더 이상 우리는 눈을 내려서는 안 된다. 망각의 눈을, 우리는 내리게 해서는 안 된다. 마음속에서 망각의 눈을 치워야 한다. 우리가 망각의 눈 아래에 심어두었던 씨앗이 태동하며 자라나기 위해서는, 망각의 눈을 치우고 우리 자신과 사회 전체를 돌아봐야 한다. 아픔과 상처를 바라보는 이 고통의 과정이 있어야지만 3월 31일에서 4월 1일로 하루가 흐를 수 있고, 완연한 봄 안에서 씨앗은 발아하고, 자라서 푸르른 녹음을 만들어내고, 아름다운 한 송이의 꽃으로 다시 태어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대한민국 청소년과 청년들의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는 경쟁주의적 교육에서 기인하는 자아 성찰과 사회적 관심의 부족이다. 망각의 눈을 치우고 사회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되새김질하는 과정 없이 행복하고 인격적으로 완성된 삶을 살기란 불가능하다. 잔인한 4월을 겪어야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을 대한민국의 미래인 그들이 깨달아야 한다.

봄이 다가온다. 3월이 지나고 나면 4월이 오는 것은 자연의 순리이다. 하지만 망각의 겨울눈이 자신을 영원히 감싸줄 수 있다고 착각하며 영원히 3월 31일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3월 31일에 자신을 속박시키며 새로운 나날이, 새로운 달이, 새로운 해가 다가올 수 없게 한다. 새 날을 맞지 못하는 이에게 성장이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3월 31일에 영원히 살겠다는 이들이 이것만을 알아두었으면 한다. 4월이 오지 않아도 3월은 봄의 태동이다. 눈은 이미 녹고 있으며, 3월 31일의 해가 지면 언제나 4월 1일의 해는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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