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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캠프, 누가 아이들을 바다로 몰았는가. 본문

우리를 읽다/[시사] 창밖으로 보이는 세상

해병대 캠프, 누가 아이들을 바다로 몰았는가.

Widerstand365 2013. 7. 19. 23:39

 

수색작업 이틀째인 19일 오전 실종 학생의 부모가 백사장에서 슬픔에 잠겨 있다. [출처: 한겨레]


학교로 돌아온 학생이 텅 빈 교실 책상 위에서 울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아이들이 죽었다. 아니, 친구들이 죽었다.

 이 글을 쓰기 위해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나는 충청남도의 작은 도시에서 살고 있고, 전주에 있는 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런데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나는 지금의 학교로 진학하기 전에 고민을 좀 했었다. 지금의 학교와, 다른 한 학교 사이에서, 어느 학교로 진학해야 할 지 말이다.

그래, 그 '다른 한 학교'가 공주사대부고였다.

그리고,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다. 그 말인 즉슨, 내가 저 학교를 선택했으면 지금쯤 이 세상에 없거나, 아니면 친구의 죽음을 눈 앞에서 목격한 상태였을 것이라는 말이다.

내친김에 전부 풀어보자. 내 친구 두 명도 저 현장에 있었다. 나는 지금 다만 그들이 저 다섯 명 안에 있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을 뿐이다.

내 친구 대부분은 바로 저 캠프에 다녀왔다. 중학교에서는 학급 반장-부반장 학생들을 데리고 저길 다녀왔고, 지역 고등학교에서는 아예 수학여행이라면 한 학년 전부를 이끌고 저기를 다녀왔다.

그리고 나는, 저기에 다녀올 '뻔' 했다. 두 번 정도 가야만 할 상황이 왔었는데, 거짓말과 팩트를 이리저리 잘 버무려 피했었다. 말하지면 '구라논픽션'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사건에 대해서 꽤나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하나하나, 풀어나가 본다.


우선, 왜 학생들에게 저런 캠프를 가게 했어야 하는 걸까.

'군대'라는 곳은 어디인가. 그 중에서 '해병대'라는 곳은 어디인가.

해병대에서 한다는 말 한 마디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은 적응하는 원숭이다."

군대가 이래야만 하는 곳인지에 대해서도 말할 것이 많지만, 딱히 여기서 논할 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 큰 문제는, 그걸 왜 '학생'한테 강요하냐는 거다.

학생은 세상을 바꿔야 할 존재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닥치고 하라는 대로 해"라는 것만을 가르치려 들다니.

이쯤에서 기성 세대들은 이미 결정을 내려버린 것 같다. 학생들에게 도전정신과 창의성을 주기보다는 시키는 대로 하는 수동성만을 주기로.

그리고 또 한 가지, '군대'라는 곳은 권위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곳이다.

바로 저 곳에 가본 적은 없지만, 비슷한 곳에 가본 적은 몇 번 있다. 거기서 교관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 순간부터 나는 여러분에게 여러분의 인권 일부를 빼앗겠다."

위험한 발언이었다. 문제를 제기하자면 제기할 수도 있는 순간이었고, '왜?'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아니 던져야 하는 순간이었다.

부끄럽게도, 나를 포함한 모두는 질문을 던지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렇다. 그때 그가 빼앗아가겠다고 한 우리의 인권은

질문 할 권리, 토론 할 권리, 문제를 제기할 권리 그리고 생각할 권리였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정확히, 지금 '군대'라는 조직이 그 구성원들에게 빼앗고 있는 그것이었다.

그러면, 여기서 한 가지 묻자. 지금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바로 그렇게 당하는 가르치고 싶은 것인가?

어떻게 힘에 복종하고, 질문하지 않아야 하는지?

아니면, 그렇게 하는 법을 가르치고 싶은 것인가?

어떻게 사람들을 겁먹게 하고, 질문하지 못하게 하는지?

"체력을 기르고 협동력을 기르고~"하는 상투적이고 진부한 이야기는 원하지 않는다. 당신들도 알잖는가. 체력을 기르려면 체육시간에 자습 대신 체육을 하면 되고, 협동력을 기르려면 해병대 캠프에서 서로가 혹사당하는 모습을 볼 때보다, 여행지에서 서로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때 더 길러진다는 것을.


두번째, 도대체 교사들은 무엇을 한 것인가.

해병대 캠프와 비슷한 곳에 갔을 때 들었던 의문 한 가지가 있었다.

"선생님들은 어디 계시지?"

왜냐면 나는, 도착한 순간부처 출발할 때까지

"즐거울 때, 슬플 때, 혼날 때, 칭찬받을 때, 뭔가를 체험할 때, 위험할 때, 안전할 때, 잘 때,  일어날 때, 밥먹을 때" 모두 포함해서 선생님들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든.

그래도 그때 나는, 선생님들이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을 꺼라고, 그래서 손을 뻗어야 할 일이 생기면 닿을 곳에 있을 껄고 생각했었다. 그 정도의 믿음은 있었다.

근데, 아니었나보다.

사고는 오후 5시 경에 발생했는데, 6시 경에 교사와 학부모 운영위원 10여 명은 횟집으로 식사를 하러 갔단다. 8시 경에야 돌아와서 사건을 확인했단다. 그러니까 학생들이 물에 빠진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200m 떨어진 숙소에서 선생님들은 사건을 확인조차 하지 못한 채 밥을 먹으러 가고 있었다는 거다.


세번째, 캠프 측의 허술한 관리다.

교관이 정식으로 인정을 받지 않았단다.

교관이 수영을 못 한단다.

학생들을 뒷걸음으로 물에 들어가게 한 후, 급류에 떠밀려 학생들이 물에 빠지자 깃발을 흔들며 도움만 요청할 뿐, 멀뚱멀뚱 보고만 있더란다.

사설 해병대 캠프는 '장사'다. 그런데 소리만 지르고 물에만 빠뜨리면서 돈을 벌려고 생각했으면 안됐다.

학생들을 죽음의 바다로 밀어넣고는 아무 것도 할 줄 몰랐던 교관.

윽박지르고, 화내고, 벌주고, 소리지를 줄은 알았지만 사고를 처리할 줄은 몰랐던 교관.

학생들이 당신에게 뛰어들면 어떻게 할 지에 대해서는 고민해 본 바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면 힘으로 눌러야 한다고 생각했겠지.

그런데 당신은 학생들이 물로 뛰어들면 어떻게 할 지에 대해서는 고민조차 해 본 적 없었던 것 같다. 물 속으로 학생들을 집어넣고서도 수영조차 못 했던 것을 보면.

이들의 잘못은 말하고 또 말해도 끝이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의 교육 현실이다.

급류가 휘몰아치는 바다로 뛰어들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왜 누구도 뛰어들 수 없다고 말하지 못했는가.

학생들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을 그렇게 만든 교육을 비판할 뿐이다.

내게는 그 학생들을 비판할 이유도, 권리도 없다.

나라도 뛰어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인권을 빼앗겠다던 그이 앞에서 어떤 질문도 하지 못했던 지난날처럼 말이다.

다만 아무도 저항하지 못하는 사회에 대해 말할 뿐이다.

왜 이 사회는 힘에 굴복하는 아이들을 키워놨는가.

물에 빠져 죽어야 했던 것은 바로 그 사회 구조였다. 아이들이 아니라.


아마 이제부터 주변 학교에서 해병대 캠프를 갈 일은 없을 것이다.

교육 현장은 생각보다 민감하다.

그런데 나는, 이 것이 몇 년이나 갈지 의문이다.

또다시 기성세대는 '올바른' 방법보다 '쉬운' 방법을 선택하려 들 것이고,

그 때, 바로 그 때 학생들은 다시 바다로 뛰어들어야 할 것이다.

"왜?"라는 질문. 바다로 뛰어들라고 명령하는 교관의 말에

저 말 한마디를 할 수 있었던 학생이 있어서,

다시 학생들을 바다로 밀어넣지 않게 되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제발 학생들을 교육해라.

사육하지 말고.

1 Comments
  • 프로필사진 티스토리 운영자 2013.07.22 13:12 신고 안녕하세요, TISTORY 입니다.


    티스토리 메인에서 '해병대 캠프'를 주제로 회원님의 글을 소개하였습니다.
    궁금하신 사항은 tistoryeditor@daum.net 메일을 통해 문의 주세요.
    앞으로도 재미있고 유익한 글로 자주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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