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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Cage- 4' 33"를 말하다. 본문

나를 읽다/[칼럼] 먼지에서 세상 찾기

John Cage- 4' 33"를 말하다.

Widerstand365 2013. 5. 5. 14:23

John Cage - 4' 33"

1952829일 비 오는 날, 뉴욕의 한 홀에서는 어떤 젊은 작곡가의 곡이 초연되려 하고 있었다.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튜터(David Tutor)가 입장했다. 뒤이어 지휘자가 등장하고 홀은 박수소리로 가득 찼다. 관객들은 새로 나타난 작곡가의 음악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지휘자는 지휘봉을 들었다. 연주자들은 연주를 위한 준비를 했고, 피아니스트는 건반 뚜껑을 열었다. 이어진 것은 고요한 정적이었다. 밖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밖에는 없었다. 지휘자는 지휘봉을 흔드는 대신 지휘대 위의 탁상시계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정확히 33초 뒤 지휘자는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잠시 후 지휘자는 다시 지휘봉을 들었고, 아무 소리도 없었다. 이번에는 빗방울이 홀의 지붕을 때리는 소리 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240초가 흐르고 지휘자는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잠시 후 지휘자가 다시 지휘봉을 들자 관객석에서는 당황한 관객들이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휘자는 120초가 흐르자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이렇게 연주는 끝났다. 연주 내내 무대 위에서는 어떠한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탈 경계적 예술의 시발점이 된 존 케이지의 <433>가 초연되었다.

존 케이지가 활동했던 20세기 말은 혼란의 시대였다. 인류가 수 천년동안 쌓아왔던 가치관들은 하나둘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인류 존재의 기본이 되었던 사상들이 하나하나 무너져가던 상황, 이러한 상황에서 인류는 인류 자신에게 아주 근원적인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런 맥락에서 예술가들에게 던져진 질문은 이것이었다. “과연 예술이란 무엇인가?”

존 케이지도 이러한 질문을 체감하고 있었다. 작곡가로서 그는 음악이란 무엇인가에 파고들기 시작했다. 존 케이지가 살던 도시는 뉴욕이었다. 당시 뉴욕은 소음의 도시였다. 여기저기 시끄럽게 울리는 자동차의 경적 소리, 공사장에서 들려오는 소리, 그리고 어디에서 들려오는지 조차도 모르는 소음까지, 존 케이지를 포함한 뉴욕의 모든 시민들은 그 소음 속에 휩싸여서 살아갔다. 그런 도시에서 케이지가 생각해낸 것은 저 소음 조차도 음악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우리 주변에서 들려오는 모든 소리가 음악일 수 있다는 발상을 해낸 것이다. 피아노 소리 뿐 아니라 말하는 소리와 도시 소음까지도 음악이라는 것이다. 음악은 주변 어디에도 있다는 것이 <433>라는 음악의 저변에 깔려 있는 첫 번째 생각이었다.

어느 날 존 케이지는 하버드 대학의 무향실에 들어가 보았다. 그는 그곳에서는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그 곳에서 두 개의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높은 소리와 낮은 소리를 들었는데, 높은 소리는 자신의 신경계가 돌아가는 소리이고, 낮은 소리는 자신의 혈액이 순환하는 소리였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면서 존 케이지가 떠올린 것은 완벽한 정적은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존 케이지는 이미 모든 소리는 음악이다라고 생각했으므로, 소리가 없는 곳은 없다음악이 없는 곳은 없다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것이 <433> 아래에 깔려 있는 두 번째 생각이었다.

존 케이지는 모든 것은 음악이다음악이 없는 곳은 없다는 두 가지의 생각을 가지고 <433>를 작곡했다. 알다시피 <433>에서는 어떠한 음악도 연주되지 않는다. 하지만 무대에서 음악이 흘러나오지 않을 뿐, 음악은 연주되고 있다. 이 음악의 초연 때를 회상해 보자면, 1악장에선 바람소리, 2악장에선 빗소리, 3악장에선 관객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바로 음악이었다.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음악이라는 사실을 존 케이지는 아무것도 연주하지 않는 파격적인 연주회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모든 물체는 영하 273˚C가 되면 샤를의 법칙에 의해 소멸한다고 한다. 그래서 모든 물체는 영하 273˚C 아래로 온도가 떨어지지 않는다. 영하 273˚C라는 온도는 어떤 물체도 접근할 수 없는 온도인 것이다. 433초를 분단위에서 초단위로 환산해 보면 273초이다. 존 케이지는 영하 273˚C의 법칙과 소리는 똑같다고 생각했다. 물체가 소멸하는 영하 273˚C에 어떤 물체도 접근할 수 없듯이, 소리의 소멸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존 케이지를 시작으로 이 근원적 질문에 대한 예술가들의 답변은 이어졌다. 비디오 아트로 유명한 대한민국의 예술가 백남준의 답도 존 케이지의 대답과 같았다. 예술은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이었다. 백남준은 심지어 파괴조차도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백남준의 피아노 공연 <존 케이지에게 보내는 경의>에서 그는 피아노를 연주하다가 부숴 버리기도 한다.

<존 케이지에게 보내는 경의>이든, <433>이든 그 음악을 처음으로 들은 사람의 기분은 어떨까. 아마 황당했을 것이다. 음악을 들으러 연주회에 온 사람들에게 작곡가들이 선사한 것은 파괴 혹은 침묵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음악들만큼 아름다운 의미를 지닌 음악이 있을 수 있을까.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이 예술임을 전해주고 있는 이 음악들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된다면 우리는 가장 많은 음악을 소유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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