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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오바마의 조 바이든 지지연설: "공감은 감정이 아닌 행동입니다." 본문

우리를 읽다/[외신] 상자 밖의 시선

미셸 오바마의 조 바이든 지지연설: "공감은 감정이 아닌 행동입니다."

Widerstand365 2020. 9. 3. 07:00

※ 다음 연설문은 영부인이었던 미셸 오바마가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조 바이든을 지지하며 남긴 연설입니다. 이 지지연설 역시 녹화되어 온라인으로 송출되었습니다. 원문은 이곳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미셸 오바마의 조 바이든 지지연설: "공감은 감정이 아닌 행동입니다."

녹화연설로 조 바이든에 대한 지지연설을 하고 있는 미셸 오바마 전 영부인.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어려운 시대입니다. 모두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어려움을 느끼는 시대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이번 전당대회는 물론, 정치 전반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가 오늘 이 자리에 나오게 된 것은, 제가 온 마음을 다해 이 국가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국민들이 상처받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만큼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통해서, 이 나라의 희망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 다가와주신 많은 분들 덕분에, 그 분들의 노력과 땀과 피 덕분에, 저는 그 희망을 저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미국입니다. 아이들을 위해 더 많은 것을, 더 나은 것을 원했던 사람들. 그래서 더 많은 것을 희생하고, 더 많은 것을 극복했던 사람들.

 그렇게 만들어진 이 땅에는 많은 아름다움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많은 고통도 서려 있습니다. 수많은 투쟁과, 부정과, 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투쟁을 영광스럽게 생각하는지, 우리가 이 부정을 조금씩이나마 밀어낼 생각이 있는지, 우리에게 남은 과업을 끝낼 최선의 가능성을 남길 수 있는지.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이번 선거에서 누구를 대통령으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저는 대통령이라는 권력과 그 막대한 무게를 가장 전면에서 경험한, 몇 안 되는 사람 가운데 한 명입니다. 다시 한 번 말하겠습니다. 대통령은 어려운 과업입니다. 현명한 판단과,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에 대한 완벽한 이해와, 사실과 역사에 대한 헌신과, 도덕적 방향성과, 경청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땅에 살고 있는 3억 3천만의 사람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하고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절대적인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대통령의 말 한 마디로 시장이 움직입니다. 대통령은 전쟁을 시작할 수도 있고, 평화를 매개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깨울 수도 있고, 끔찍한 본능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거짓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과거에 제가 말한 것과 같이,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사람을 바꾸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드러내줄 뿐입니다. 대통령 선거라는 과정에서도 그것은 충분히 드러나죠. 4년 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한 표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정치에 싫증이 난 것일 수도 있지요. 어쩌면 선거 결과가 그리 접전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너무 큰 벽이 있다고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이유가 무엇이든지, 결과적으로 직접투표에서 3백만 표 이상 밀린 후보자가 백악관에 입성하는 결과가 나오고 말았습니다.

 이 결과를 결정한 주 가운데에는, 선거구당 평균 두 표 차이가 난 곳도 있었습니다. 딱 두 표요.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의 현실입니다.

 제 남편이 조 바이든과 함께 백악관을 떠났을 때, 역대 가장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2천만 명 국민들이 가진 의료보험이라는 기본권을 지켜냈습니다. 미국은 세계의 선망을 받고 있었고, 우리 동맹국은 기후변화 대응의 선봉에 서 있었습니다. 정치권의 지도자들은 과학자들의 손을 잡았고, 에볼라의 확산을 막아냈습니다.

 4년 뒤, 미국은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되었습니다. 대통령은 바이러스의 확산을 지나치게 오래 과소평가했습니다. 15만명 이상의 사람이 사망했고, 경기는 침체됐습니다. 수백만의 사람이 직업을 잃었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이 의료보험을 잃었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집과 식량을 비롯한 기본적인 생활을 지켜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역사회는 학교를 안전하게 개방할 수 있는지를 두고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국제적으로는 제 남편이 만들어낸 조약이 파기되고 있을 뿐 아니라, 레이건이나 아이젠하워와 같은 대통령이 구축한 동맹관계도 파탄에 이르고 있습니다.

 국내 사정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조지 플로이드, 브레오나 테일러, 수많은 무고한 유색인종들이 살해되고 있습니다.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는 단순한 사실조차 정권 상층부에서는 조소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백악관에 지도력과, 위로와, 최소한의 건실함을 바랬지만, 우리가 본 것은 혼란과, 차별과, 완전한 공감의 상실이 아니었습니까.

 공감. 저는 요즘 공감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 다른 사람의 경험 역시 소중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우리 가운데 상당수는 큰 노력 없이도 다른 사람에 대해 공감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보면, 멀리 떨어져 판단만 하고 있지는 않으니까요. 우리라면, “누구든지 그런 상황에 처할 수 있다”면서 다가갔겠지요.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당장 우리가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일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버락과 저도, 저희 딸들에게 제 조부모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도덕적 가치관을 심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나라의 수많은 아이들이, 서로에 대한 공감이 사라진 현장을 보고 있습니다. 지금 아이들은 의문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아이들에게 말한 것, 우리가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이 모두 거짓말이었는지 의심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를 안전하게 지켜줄 마스크를 쓰지 않겠다며 마트에서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을.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로 무고한 사람을 신고하는 이들을. 아주 일부의 사람들만 미국 사회에 속할 수 있다는 주장을. 탐욕은 선한 것이고, 어떻게든 승리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 어떤 일이 생기든 아무 상관이 없다는 주장을. 우리 아이들이, 공감이 사라져 경멸로 가득한 사회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동료 시민을 국가의 적으로 간주하는 지도자와, 횃불을 든 백인 우월주의자를 우리 아이들이 보고 있습니다. 또래의 어린이들이 가족과 헤어지고, 보호소에 감금되고, 캡사이신과 공포탄을 평화로운 시위대에 사용하는 모습을, 우리 아이들이 공포에 사로잡혀 바라보고 있습니다.

 슬프게도, 이것이 다음 세대가 바라보는 미국 사회입니다. 낮은 수준의 정책과, 낮은 수준의 정체성을 가진 국가지요. 단순히 실망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분노할 만한 일입니다. 이 나라의 국민과 우리 이웃이 가진, 그 선함과 품격을 제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종도, 나이도, 종교도, 정치적 성향도 관계없습니다. 우리가 저 소음과 두려움을 차단하고 진심으로 마음을 연다면, 이것이 옳지 않은 방향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원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의 전략은 무엇입니까? 지난 4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저들이 저급하게 가는데, 우리가 품격 있게 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제 답은 이렇습니다. 오직 품격 있게 가는 것만이 효과를 발휘합니다. 우리가 저들과 같은 전략을 사용하며 다른 사람들을 폄하하고 비방한다면, 다른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소음의 하나가 될 뿐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싸우는 원인을 저급하게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품격 있게 가겠다는 것은, 사악함과 잔인함 앞에서도 미소와 입바른 소리만으로 대응하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는 더 어려운 길을 갈 것입니다. 우리는 드높은 목표를 쟁취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증오에 맹렬하게 대응할 것이며, 그러면서도 우리가 신 아래 하나의 국가를 이루고 있음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며 협력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낼 것입니다.

 우리는 거짓과 불신을 막아세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것, 차가운 진실과 함께할 것입니다.

 가능한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도널드 트럼프는 이 나라에 적합한 대통령이 아닙니다. 트럼프에게는 자신이 대통령의 자격이 있다는 것을 증명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는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감당할 수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주어진 임무를 수행할 수 없습니다. 트럼프는 결코 우리가 원하는 대통령이 될 수 없습니다. 명백한 사실입니다.

 이제 저는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 이야기를 듣지 못하겠지요.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분리된 사회를 살고 있고, 저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는 흑인 여성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여러분 가운데 상당수는 저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제가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전달해드리고 있다는 점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제가 정치논리를 싫어한다는 것도 아시는 분이 많을 테지요. 하지만 그렇다면, 여러분은 또한 아실 것입니다. 제가 이 나라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요. 제가 이 나라의 다음 세대를 염려하고 있다는 점을요. 그러니 여러분이 오늘 제 연설에서 한 마디만 기억해야 한다면, 이 말을 기억해 주십시오.

 만약 여러분이 세상이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믿으세요, 세상은 더 나빠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선거에서 아무런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세상은 분명 더 나빠질 것입니다. 우리가 이 혼란을 끝낼 조금의 희망이라도 갖기 위해선, 우리는 조 바이든을 목숨과 같이 선택해야 합니다.

 저는 조 바이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습니다. 믿음을 가진 품격 있는 사람이지요. 조 바이든은 아주 훌륭한 부통령이었습니다. 경제를 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전염병을 물리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국가를 지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조 바이든은 경청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진실을 말하고 과학을 믿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현명한 계획을 세우고 훌륭하게 집단을 관리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조 바이든은, 우리 모두가 존경할 수 있는 삶을 살아온 지도자입니다.

 조 바이든이 어렸을 때, 그의 아버지는 직업을 잃었습니다. 조 바이든이 젊은 상원의원이었을 때, 그는 아내와 어린 딸을 잃었습니다. 조 바이든이 부통령이었을 때, 그는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습니다. 조 바이든은, 식탁의 비어 있는 자리를 보는 비통함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애통해하는 부모에게 충분한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사람입니다. 감정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고, 그래서 충격을 이겨내려는 아이들에게 자기 전화번호를 알려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조 바이든의 삶은 그 자체로 회복에 관한 증언입니다. 조 바이든은 같은 열정과 열망으로 우리를 일으켜줄 것이고, 우리를 회복시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지금으로서 조 바이든이 완벽한 것이 아닙니다. 조 바이든 스스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완벽한 대통령 후보는 없습니다. 조 바이든은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우리가 지금 갈망하고 있는 겸손과 성숙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사람입니다. 조 바이든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잊지 않은 채, 더 나아가 우리가 누구인지 잊지 않은 채, 삶 전체에 걸쳐 이 국가를 위해 헌신해 왔습니다.

 조 바이든은 우리 아이들이 모두 양질의 교육을 받기를 원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아플 때 병원에 갈 수 있기를 바라고, 건강한 환경에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는 이 모든 것을 실현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 바이든은 피부색과 관계없이 모든 아이들이 체포당하거나 살해당할 위험에 처하지 않고 자유롭게 밖을 걸어다닐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는 우리 아이들이 총격에 대한 공포 없이 영화를 보러 가고, 수학 수업을 들으러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는 우리 아이들이 자신이나 부유한 시민들만을 위한 지도자로 성장하지 않고, 어려운 시간을 겪고 있는 이웃을 위해 안전망을 제공해줄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런 목표를 추구하고 싶다면, 우리가 이런 기본적인 요구를 받아들여 적절히 기능하는 사회를 보고 싶다면, 우리는 무시할 수 없는 압도적인 숫자로 조 바이든을 지지해야 합니다. 지금 공정한 방식으로는 승리할 수 없다고 직감한 세력이, 우리의 투표를 방해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소수자들이 많은 지역의 투표장을 폐쇄하고 있습니다. 투표자를 명부에서 삭제하고 있습니다. 투표자들을 겁박하고 있고, 투표의 안정성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전술은 딱히 새로운 것도 아닙니다.

 지금은 투표를 저항의 수단으로 생각하며, 승리할 가능성이 없는 후보자에게 투표할 수 있는 때가 아닙니다. 2008년이나 2012년처럼 투표해야 합니다. 그 때와 같은 열정과 희망을 조 바이든에게 보내주어야 합니다. 가능한 빨리 투표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 우편투표를 신청하고 최대한 빨리 우송해야 합니다. 친구와 가족들도 투표하도록 해야 합니다.

 편한 신발을 신고, 마스크를 쓰고, 저녁이나 아침 도시락까지 싸서 투표를 하기 위한 줄을 서야 합니다.

 올해 우리는 이미 지나치게 많은 것을 희생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여러분들은 기대 이상으로 많은 것을 해 주셨습니다. 지쳐버렸을 때에도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용기를 끌어모아 사랑하는 이들에게 싸울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분노에 가득찬 상황에서도 그 모든 물건을 배달하고, 이것을 매대에 쌓아두고, 필수적인 업무를 수행하며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일하는 부모들은 보육기관 없이도 어떻게든 이 일을 해내고 있습니다. 교사들은 창의적인 방식으로 아이들의 교육과 성장을 돕고 있습니다. 청년들은 절박하게 꿈을 쫓고 있습니다.

 구조적인 인종차별이 우리 국가와 양심을 흔들고 있을 때, 여러 계층에 속한 수백만의 미국인들이 서로를 위해 광장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정의와 진보를 외쳤습니다.

 그래요, 우린 이런 사람들입니다. 서로에게 공감할 수 있고, 강한 회복력을 가지고 있는, 품격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운명은 이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지도자들도, 우리의 진실을 따라올 때가 되었습니다.

 이제 역사에 우리의 목소리와 우리의 투표를 더해주도록 합시다. 존 루이스의 말을 빌리겠습니다. “옳지 않은 것을 보았다면, 무언가 말해야 합니다. 무언가 행동해야 합니다.” 그것이 공감의 가장 진실된 형태입니다. 공감은 감정이 아닌 행동입니다. 우리와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모두와 모두의 아이들을 위해 행동해야 합니다.

 우리 시대 진보의 가능성을 유지하고 싶다면. 이 선거 이후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사회를 생각한다면. 역사 위 우리의 자리를 다시 생각해 봅시다. 저의 친구, 조 바이든을 미국의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합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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