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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돈으로, 우리의 선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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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돈으로

 선거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적인 제도다. 주권자로서의 국민이 직접 그 대표자를 선출하는 일. 민주주의를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치면, 이만한 행사가 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공정한 선거는 곧 공정한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다. 공정성이 훼손된 선거에서는, 본질적으로 공정한 정부가 탄생할 수 없다.


 그러나 ‘선거의 공정성’은 꼭 불법적인 선거운동이나 투-개표 과정에서의 부정, 권력의 선거 개입과 같은 거대한 사건으로만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선거운동에 쓸 돈이 없어서 출마를 포기할 때, 선거운동에 너무 많은 돈을 써서 다시 재기하지 못할 정도의 상처를 입을 때, 선거운동에 들어간 돈을 보전받기 위해 당선이 된 후 부정을 저지를 때. 역시 선거의 공정성은 훼손된다.


 그래서 국가는 불법적인 선거운동을 규제하고, 투-개표 부정을 철저히 감시하는 제도를 만들고, 권력의 선거 개입을 제한하는 법률을 만드는 동시에, “돈이 없어서 선거를 포기하는 일”을 최대한 막으려고 노력하고 있기도 하다.


 대통령선거 후보자는 당선이 되거나, 15% 이상의 득표를 얻으면 선거운동에 들어간 돈과 기탁금 전액을 돌려받을 수 있다. 10~15%의 득표를 한 경우, 이 돈의 절반을 돌려받는다.


 물론 누군가가 지나치게 많은 돈을 써서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거나, 15% 득표를 노리지 못하는 다른 후보자를 ‘물량’으로 압도하려 할 때도 선거의 공정성은 훼손된다. 따라서 정부는 각 선거마다 사용할 수 있는 선거비용의 한도를 정해두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는 509억 4천만 원의 한도가 설정된 바 있다.


 후보자들은 509억 4천만 원 안쪽에서 선거비용을 지출했을 것이고, 15% 이상을 득표한 후보의 합법적인 선거비용은 선관위에서 보전해준다는 의미다. 선관위가 엄청난 양의 금괴를 지하 창고 쯤에 가지고 있는 기관도 아니고, 돈을 찍어내서 뿌릴 수 있는 기관도 아니다. 선거비용은 당연히 국민의 세금으로 보전해 준다.


 이번 선거의 경우, 문재인 후보, 홍준표 후보, 안철수 후보가 15% 이상의 득표를 했다. 이들의 선거운동은 모두 국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졌다는 의미다.


 국민에게 ‘공정한 선거’를 만들어갈 권리 혹은 의무가 있다면, 이 선거가 어떤 돈으로 어떻게 치뤄졌는지도 감시해야 할 권리 혹은 의무가 있을 것이다. 더구나 국민의 세금으로 치뤄진 선거운동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자세히 알아보자.





얼마나 썼는가

 이번 선거에서 가장 많은 돈을 사용한 후보자는 당선의 영예를 안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였다. 문재인 후보는 선거비용 한도 509억 4천만 원에 약간 못 미치는 500억 정도의 선거비용을 지출했다.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지출했던 비용은 485억 정도였다. 20억 정도를 더 사용한 것이다. 15% 이상 득표에 자신이 있었던 만큼 다른 후보에 비해 많은 돈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420억 원의 선거비용을 사용했다. 2012년 대선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480억 정도를 사용했었는데, 많이 줄어든 수치다. 초기에 지지율이 답보 상태를 보이며 15% 이상 득표가 어려워 보이자 선거비용을 많이 아끼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후반 결집으로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15%를 무난히 넘기자 어느 정도 안심하고 돈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3위 득표였지만 2위 득표자인 홍준표 후보에 비해 더 많은 선거비용을 사용했다. 460억 원 정도의 선거비용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반부터 15% 이상 득표가 확실했고, 한때 문재인 후보의 대세론을 위협할 정도로 지지율이 뛰어올랐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비용보전은 받지 못하지만,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총 50억 정도의 선거비용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10% 지지율이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고, 실제로도 10% 이상의 지지를 얻지 못해 선거비용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게 됐다.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선거비용을 아끼며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후보의 10분의 1 수준이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 역시 비슷한 수준이다. 총 42억의 선거비용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상정 후보 역시 10% 지지율을 얻지 못하고 6.2%에 그쳤기 때문에 선거비용을 보전받지 못한다.




어떻게 마련했는가

 그렇다면 후보자들은 이 돈을 어떻게 마련했을까? 선거비용 보전을 받을 수 있는 후보라고 해도, 선거비용 보전은 최대 올 7월 18일까지 미뤄질 수 있다. 대출을 받을 수도 있고, 실제로 많은 이들이 은행권 대출을 이용하지만, 모든 돈을 대출로 충당할 수는 없다. 자칫 잘못했다가 15% 미만의 지지를 받는다면 갚을 방법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우선 후보자들은 선거비용 한도의 최대 5%까지 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다. 이번 선거로 따지면 25억원 정도다. 정당의 최종 후보자로 확정된 뒤에는 5%를 더 모금해 최대 10%를 모금할 수 있다. 50억 정도를, 국민들의 대가 없는 후원으로 채울 수 있는 것이다.


 ‘선거 펀드’ 활용도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다. 과거 경기도지사에 출마했던 유시민 후보의 ‘유시민 펀드’에서 시작된 이 아이템은, 선거비용 보전이 비교적 확실한 후보들이 이용하는 방식이다. 국민의 돈을 모금하고, 이렇게 모금된 돈을 선거비용을 보전받은 후 소정의 이자와 함께 돌려주는 방식이다.


 실제로 2012년 대선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박근혜 약속펀드’로 250억 원을 모았고, 문재인 후보는 ‘담쟁이 펀드’로 300억 원을 모으기도 했다. 선거운동 비용의 상당 부분을 펀드로 충당하는 것이다.


 정당 보조금도 대단히 중요하다. 선거관리위원회는 각 정당에게 의석수 기준으로 보조금을 지급한다. 정당이 정치자금 조달 때문에 외부 세력에게 흔들리는 일을 막기 위해 지급하는 것이다.


 정당 보조금은 매 분기마다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경상 보조금’과 보궐선거를 제외한 대선, 총선, 지방선거 때마다 지급하는 ‘선거 보조금’이 있다. 제도의 허점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 보조금은 사실 선거운동 외의 목적에 사용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경상보조금의 경우엔 선거운동에 사용할 수 없고, 비용의 20% 이상을 정책개발에 사용해야 한다는 제한이 있지만, 선거 보조금에는 그런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선거비용을 보전받지 못하는 후보들도 정당이 의석을 가지고 있다면 선거 보조금을 받고 반환하지 않아도 되며, 선거비용을 보전받는 후보들은 선거비용을 어차피 보전받을 수 있기 때문에, 반환의무가 없는 선거보조금은 정당이 다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부수입’에 불과하다. 선거 이후 정당 운영 자금 등으로 이용되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대선에서는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가 중도 사퇴하며 ‘선거 보조금 ‘먹튀’ 논란’이 일기도 했다. 사퇴한 후보는 선거비용을 보전받지 못하지만, 선거 보조금은 반환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물론 선거보조금을 ‘먹튀’했다는 통합진보당이 선거운동 기간 동안 54억 원 정도의 비용을 지출해서 보조금 27억을 제외한 나머지 27억을 자비로 충당했어야 한다는 점과, 이 의혹을 제기한 새누리당은 선거 기간동은 480억을 지출하고 비용을 보전받은 뒤 선거 보조금을 추가로 177억원을 받아 꽤나 짭짤한 ‘부수입’을 올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의혹 제기는 코미디에 불과하다.


 아무튼, 결국 각 주자들은 선거운동 비용을 이렇게 마련한다. 당이나 후보 개인이 가지고 있던 재산과 대출, 이외에는 후원금, 선거 펀드, 정당 보조금이 전부다.



 실제 후보들의 상황을 봐도 그렇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사용한 500억 원 중 대부분을 ‘문재인 펀드’로 충당했다. 총 330억 원 정도를 문재인 펀드로 모았다. 여기에 원내 1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국고지원금 123억 원을 받았고, 나머지는 금융권 대출을 이용했다. 펀드와 대출은 이자와 함께 갚으면 되고, 말했듯 국고지원금은 반환의무가 없으므로 남은 돈은 정당 운영 비용 등으로 들어간다.


 홍준표 후보는 많은 금액의 후원을 받지 못했고, 펀드 모집도 하지 않았다. 자유한국당은 국고지원금으로 119억 원을 받았다. 이외의 자금은 자유한국당 시도당사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마련했다. 15% 미만의 득표를 했다면 자유한국당이 시도당사를 대부분 잃고 재기불능 상태에 빠질 수도 있었다. 이외에는 당이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재산을 활용하기도 했다. 선거비용을 보전받을 수 있는 득표를 한 자유한국당은 이제 대출을 갚고 당사를 지킬 수 있게 되었으며, 나머지 돈은 당이 사용하게 된다.


 안철수 후보의 경우는 조금 특이하다. 우선 국민의당은 국고지원금 86억 원을 받았으며, 금융권에서 100억 원 정도를 대출받았다. 특이한 점은, 당이 후보에게 대출을 받는 방식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국민의당이 안철수 후보 개인에게 80억 원 정도의 돈을 대출받아 선거운동 자금을 충당했다. 안 후보 개인의 재산이 선거운동에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게 된 것이다.


 유승민 후보는 선거보조금만으로 충당할 수 있는 ‘절약형’ 선거운동을 치뤘다. 유 후보가 사용한 선거비용은 50억 정도지만, 탈당 사태가 일어나기 전 33석의 바른정당이 받은 국고 보조금은 63억 원이었다. 의석수가 줄었다고 보조금을 반환할 의무는 없다. 비용보전을 받지 않았음에도, 오히려 돈을 남기는 선거를 치른 것이다.


 심상정 후보의 경우 정의당이 원내 6석의 작은 정당이므로 보조금을 많이 받지는 못한다. 28억 원의 국고보조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는 특별당비와 후원금으로 충당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선거가 끝난 시점에서 금융권 대출 3억 원 가량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고 법적으로 후원을 받을 수 있는 자정까지 심 후보의 후원계좌에는 5000여 명이 보낸 총 2억 원 정도의 후원금이 들어왔다. 정의당으로서는 1억 원의 빚을 남겼지만, 그보다 값진 것을 얻은 셈이다.


 조원진 후보의 경우 본인이 새누리당의 유일한 의원으로 원내정당이기 때문에 국고 보조금을 받는다. 약 3천 2백만 원 정도의 보조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후보들은 원외정당 소속이거나 무소속 후보이기 때문에, 국고보조금을 받지 못한다.





어디에 썼는가

 그렇다면 이 돈은 어디에 쓰게 될까. 당장 생각만 해봐도 쓸 돈은 많다. 광고도 제작해야 하고, 로고송도 만들어야 한다. 포스터도 제작해야 하고, 현수막도 만들어야 한다. 광고는 만들고 나면 끝나는 게 아니다. 방송사와 계약해 TV에 방영해야 한다. 포스터는 선관위에서 부착해 준다지만, 현수막은 부착하는 비용이 들어간다.


 방송차도 사용해야 하고, 무엇보다 선거운동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캠프 안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과 중책을 맡은 인사들에게 줄 임금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임금 뿐이 아니다. 선거운동에 쓰일 외투나 어깨띠도 만들어 제공해야 한다. 대선 기간 동안 이리저리 뛰어다닐 후보 자동차에 들어가는 기름값도 있다. TV연설도 광고와 마찬가지로 방송사와 계약해 돈을 주고 방영해야 한다. 선거 공보물도 직접 제작해야 한다.


 들어갈 돈이 한둘이 아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선거 연락소’의 마련이다. 말하자면 각 지역에 위치한 후보 캠프 사무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선거운동을 하려면 당연히 사무실이 필요하다. 법적으로 선거연락소의 숫자는 정해져 있다. 각 시군구별로 하나씩을 둘 수 있다. 322곳이다. 그리고 시도별로, 시도를 총괄하는 선거연락소 하나씩을 추가로 설치할 수 있다. 17곳이다. 모두 합해 각 후보 캠프는 339개의 선거연락소를 차릴 수 있다.


 물론 선거연락소 설치 자체에 큰 돈이 들어가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정당은 기존에 존재하던 지구당사나 지역위원회, 당협위원회 사무실을 선거연락소로 등록해 활용한다. 물론 선거때 들어와서 신설되는 선거연락소도 있지만, 그럴 역량이 있는 거대정당은 이미 지역위원회나 당협위원회를 운영하고 있으며, 지역위원회나 당협위원회를 운영하지 못하는 정당은 선거 때라고 새로 선거연락소를 차릴 역량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런데 물론, 사무실의 유무가 선거운동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냥 거리를 지나가면서는 선거연락소가 어디 있는지 찾기도 힘들다. 과연 선거연락소 등 후보의 사무실에 찾아가 본 뒤에 선출할 후보자를 결정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문제는 선거연락소의 설치 유무가 ‘얼마나 돈을 쓸 수 있는지’를 제한하는 지표가 된다는 점이다. 한 정당이 활용할 수 있는 선거 운동원의 숫자는 선거연락소의 숫자에 따라 달라진다.


 복잡한 규정이 있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각 시군구에 설치된 선거연락소에서는 해당 시군구에 있는 읍면동의 숫자만큼 선거운동원을 둘 수 있다. 예를 들어 관악구에는 21개의 동이 있으므로, 관악구 선거연락소에서 고용할 수 있는 선거운동원은 21명이다.


 시도에 설치된 선거연락소에서는 해당 시도에 있는 구시군의 숫자만큼 선거운동원을 둘 수 있다. 다만 하나의 구시군이 국회의원 선거구 둘 이상으로 나뉠 정도로 큰 경우에는, 국회의원 선거구의 숫자를 이용한다. 예를 들어 충청남도를 총괄하는 선거연락소에는 8개의 시와 7개의 군이 있기 때문에 총 15명의 선거운동원을 둘 수 있지만, 천안시가 3개의 선거구를 가지고 있으므로 3개로 계산하고, 아산시는 2개의 선거구를 가지고 있으므로 2개로 계산해야 한다. 따라서 충청남도 선거연락소에는 총 18명의 선거운동원을 둘 수 있다.


 이외에는 중앙에 설치되는 ‘선거사무소’에서 시도의 6배, 현재로는 102명의 선거운동원을 둘 수 있다. 이렇게 계산했을 때, 각 정당이 전국에 둘 수 있는 선거 운동원의 숫자는 총 3931명이다. 그러나 이것은 339개의 선거연락소를 모두 두었을 때의 이야기이다. 선거연락소를 제대로 설치하지 못한다면 이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낮아진다. 선거연락소가 설치되지 않은 지역에서는 선거운동원을 둘 수 없기 때문이다.


 비용이 없어서 선거운동을 치르지 못하는데, 거기에 선거연락소가 없다는 이유로 선거운동원의 숫자까지 제한받는 것이다. 가난이 가난을 낳는 선거다.


 뿐만 아니다. 건물에 거는 대형 현수막은 법적으로 선거연락소가 위치해 있는 건물에만 달 수 있다. 선거연락소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지역에서는 현수막도 달기 어려운 것이다. 유세 차량도 선거연락소 하나당 한 개만 가질 수 있다. 선거연락소가 없다면 유세차도 없다.


 지방에서 제대로 선거운동을 하지 못하게 규제하는 요소는 또 있다. 국회의원 수와 지방의원 수가 그렇다. 3931명으로 제한되어 있는 선거운동원 외에, 각 정당은 추가로 선거운동원을 등록할 수 있다. 국회의원, 국회의원 보좌진, 원래부터 정당에서 일하고 있던 유급 당직자, 지역의회 의원은 선거운동원으로 등록되어도 숫자 제한에 포함되지 않는다.


 편의를 위해 당직자와 의원직 상실의 경우를 제외하고 계산해 보자. 국회의원은 총 300명이다. 이들은 각 9명의 보좌진을 둘 수 있다. 모두 2700명이다. 광역자치단체 의회 의원수는 모두 합해 789명이다. 기초자치단체 의회 의원수는 모두 2898명이다. 모두 6687명이다. 물론 거대 양당의 양분 체제다. 양당은 법적으로 제한된 선거운동원과 거의 비슷한 숫자의 선거운동원을 추가로 얻게 되는 셈이다. 이 사람들은 단순히 선거운동원을 넘어서 실권을 가진 정치인이므로, 선거운동에서 건의받은 정책을 바로 입안에 ‘피부에 닿는 선거’를 치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또다시, 가난이 가난을 낳는 선거다.


 아무튼 이런 기준으로 각 후보들은 선거운동 비용을 지출한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500억 원 정도 사용한 금액의 40% 정도를 미디어 홍보비로 사용했다. TV광고와 연설, 신문 광고, 인터넷 광고 등에 200억 원 정도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평균적인 수준이다. 가장 돈이 많이 드는 부분이 미디어 부분이다.


 대선 방송 연설은 회당 최고 4억 4천만 원까지 들어가는 ‘비싼 연설’이다. 대선 주자들이 광고 시간이 가장 비싼 ‘프라임 타임’을 노린다는 점과, 시간이 길다는 점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다. 시청률이 낮은 시간에도 법적으로 정해진 방송 연설의 최대 시간인 20분을 채우면 1억 원 정도의 비용이 들어간다. 라디오 방송 연설도 최소 500만 원 선에서, 최대 3600만 원 선까지 만만한 금액이 아니다.


 연설은 후보 본인이 TV와 라디오에서 각각 11번씩 할 수 있고, 후보 외의 다른 사람의 찬조 연설도 TV와 라디오에서 각각 11번씩 할 수 있다. 총 44번이다. 문재인 후보는 44번을 전부 채워서 방송했다.


 TV 광고도 중요하다. 시간이 짧은 만큼 회당 1천~3천만 원이 들어간다고 한다. 최대 30번 방영할 수 있는데, 문재인 후보는 역시 TV광고도 30회 전부 방송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총 333개의 선거연락소를 설치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이후 나머지 6개 연락소를 추가로 설치해 339개 선거연락소를 모두 채운 것으로 보인다. 선거운동원 역시 3931명을 꽉 채워 모두 고용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유세 차량도 300여 대로 대부분 채워 사용했다.


 선거운동원 인건비도 만만치 않고, 유세차도 1대에 25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들어간다. 홍보물은 개당 단가는 작지만 전체로 따지면 꽤나 큰 금액이다. 문재인 캠프는 유세차 운영에 100억 원정도를 지출했으며, 홍보물 제작과 배포에도 100억 원 정도를 사용했다. 나머지 금액은 선거운동원 임금 등에 사용됐다. 선거운동원은 1인당 하루 7만원씩 임금을 받는다. 22일의 선거운동 기간을 고려하면 족히 수십 억을 호가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총 120석의 의석을 가지고 있다. 의원수와, 이들이 고용할 수 있는 보좌진의 숫자까지 합하면 모두 1200명이다. 광역의회에서는 291석을, 기초의회에서는 1162석을 가지고 있다. 총 2653명이다. 이들이 모두 선거운동에만 총력을 다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많은 수의 선거운동원을 확보한 셈이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전체 420억 원 가운데 홍보 비용으로 180억 정도를 사용했다. 이중 TV나 인터넷, 신문 광고 등에 투입한 돈이 150억 정도고, 나머지 30억은 홍보 문자나 홍보 전화에 사용했다. ‘비싼 연설’인 방송 연설은 모두 11번밖에 하지 않았다. 문재인 후보의 4분의 1 수준이다.


 자유한국당은 전국에 332개의 선거연락소를 설치했다. 거의 대부분 빼놓지 않고 설치된 것이다. 선거사무원 등 고용을 위해서 80억 원을 사용했고, 유세차 운영 비용도 70억 원에 달한다. 홍보물 제작과 배포에도 40억 원 정도 쓰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한국당은 바른정당 의원의 입당 전부터 94석의 의석을 가지고 있었다. 보좌진을 포함하면 940명이다. 국회에서는 과거에 비해 입지가 줄어들었지만, 지방의회에서의 아성은 여전하다. 자유한국당은 382석의 광역의회 의석과 1411석의 지방의회 의석을 가지고 있다. 집권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보다 많다. 국회와 지방의회를 모두 합하면 2733명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460억 원을 지출했고, 역시 대부분은 홍보비로 사용했다. 문재인 후보와 마찬가지로 안철수 후보는 44회의 방송 연설을 모두 사용했다. 여기에만 100억 원 정도가 들어갔다. 안 후보는 TV광고도 최대치인 30회를 채웠다. TV 광고나 인터넷 광고, 신문 광고 등에는 86억 원이 들어갔다. 홍

보물 제작에는 39억 원 정도가 따로 들어갔다.


 국민의당은 334개의 선거연락소를 설치했다고 알려졌으나, 역시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나머지 5개를 채워 339개를 전부 운영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당도 선거운동 3931명을 모두 고용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역사가 오래된 정당이고, 따라서 지역위원회나 당협위원회 조직이 잘 꾸려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갓 창당 1년을 넘긴 국민의당이 지역 조직을 이렇게 촘촘히 꾸린 것은 놀라운 수치다. 국민의당은 유세차도 300여 대로 대부분 사용했다.


 그렇다는 것은 역시, 돈도 많이 들어갔으리라 예상할 수 있다. 국민의당은 유세차 운영비로 89억 원을 사용했으며, 선거운동원 임금도 73억 원을 사용했다.


 그러나 추가되는 선거운동원에서 국민의당의 위력은 약하다. 국민의당은 40석의 의석을 가지고 있다. 보좌진을 포함해도 400명이다. 지난 2014년 지방선거때 존재하지 않았던 국민의당은, 광역의회 의석을 65석 가지고 있다. 적은 수치다. 다 합해야 465명이다. 기초의회 의석도 몇십 명 수준에 그친다.


 지역에서 위력이 약하다. 전국 3위를 차지한 안 후보가, 단 하나의 시도에서도 1위를 차지하지 못한 배경을 이런 상황과 연결시킨다면 지나친 확대해석일까. 호남에서 돌풍을 기대했던 안철수 후보가 받아든 실망스러운 성적표와, 호남의 지역의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이 363석, 국민의당이 197석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비교해 보면, 그렇지만은 않을 것 같다.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50억 정도를 사용했는데, 말했듯이 국고 보조금을 63억원을 받았으니 빚을 진 상황은 아니다. 처음부터 63억 원 안으로 사용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사용할 수 있던 돈이 적었던 만큼, 유승민 후보가 사용할 수 있는 선거운동의 방법도 적었다. 유승민 후보는 방송 연설을 단 한 차례도 사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군소 후보’로 취급되던 국민대통합당 장성민 후보는 방송 연설을 10차례한 것과 비교된다.


 모두 30회 방영할 수 있는 TV광고도 유승민 후보는 24회만 사용했다. 선거연락소는 194개밖에 세우지 못했다. 3분의 1 정도의 지역에는 선거연락소 자체를 세우지 못한 것이다. 광주와 울산에는 광역 선거연락소 한 개만을 설치했고, 시군구별 선거연락소는 하나도 없다. 선거연락소를 세우지 못했으니 선거운동원도, 유세차량도, 건물에 거는 대형 현수막도 없다.


 결국 유승민 후보는 유세차를 16대만 동원했다. 시도별로 1개도 채우지 못한 것이다. 선거운동원도 450명 수준이다. 대신 비용이 적게 드는 자전거 형태의 유세차를 만들어 운용했다. 다른 후보자의 8분의 1 수준이다. 손발이 묶인 채로 선거를 치른 것이나 다름없었다. 다른 후보들이 16면을 모두 채워 만든 책자형 선거공보도 유 후보의 것은 8면에 불과했다.


 바른정당의 의석은 모두 33석이었다. 그마저도 선거 과정에서 13명이 탈당했으니 실질적으로 20명에 불과하다. 보좌진을 포함해도 200명이다. 바른정당은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소속되어 있어, 신생 정당답지 않게 2개의 광역자치단체를 가지고 있지만, 이들은 선거운동에 참여하지 못한다. 선거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광역의회 의원은 40명이다. 의원수와 합하면 240명이다. 기초의회 의석도 몇십 석 수준이다. 다른 정당의 10분의 1 수준이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42억 원의 선거비용을 사용했다. 역시 절약형 선거운동이었다.


 심상정 후보 역시 유승민 후보와 마찬가지로 방송 연설을 단 한 차례도 진행하지 않았다. 모두 30회 방영할 수 있는 TV광고는 15회로 절반만을 사용했다. 정의당의 선거 연락소는 262개였다. 바른정당에 비해 신생 정당이 아닌 덕에 그나마 괜찮은 수준의 선거 연락소를 설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70여 개의 지역에는 선거연락소를 세우지 못했다. 역시 이 지역에는 선거운동원도, 유세차량도, 대형 현수막도 없다.


 심상정 후보가 동원한 유세차는 모두 17대. 시도별로 딱 한 개씩만 동원했다. 선거운동원도 다른 후보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다. 50명에서 100명 수준으로, 채 세 자리 수도 안 되는 선거운동원을 고용해 선거를 치뤘다. 책자형 선거공보 역시 유 후보와 마찬가지로 8면으로 제작했다. 유 후보와 심 후보 모두 전단형 선거공보는 제작하지도 못했다.


 정의당의 의석은 모두 6석이다. 보좌진을 포함해도 60명이다. 기초의회는 명함을 내밀기 민망할 정도다. 정의당이 가진 광역자치의회 의석수는 1석이다. 기초자치의원도 16명에 불과하다. 모두 76명에 불과하다. 임금을 주고 고용한, 숫자가 제한된 선거운동원까지 합해도 200명을 넘지 못한다.





우리의 선거를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정한 선거를 위해 가장 신경써야 할 부분은 ‘돈’이다.


 15% 이상 득표한 후보자의 선거운동 비용은 모두 국가에서 세금으로 보전해 준다. 선관위는 거기에 정당별로 선거보조금까지 지급한다. 문재인 후보, 홍준표 후보, 안철수 후보의 선거운동은 결과적으로 국민의 세금으로 진행한 선거운동이 됐다. 유승민 후보 역시 세금에서 나온 선거보조금으로만 선거를 치뤘으니, 마찬가지로 국민 세금으로만 진행한 선거운동이었다. 우리의 돈으로 치뤄진 선거였다는 의미다.


 당연히 이 모든 돈이 헛되게 쓰인 돈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민주주의 정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돈이라고 생각한다. 대의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이 정도 돈이 들어가는 것은 전혀 아깝지 않은 일이다. 어쨌든 선거공영제 덕분에 가난한 후보들도 수백 억 단위의 선거를 치를 수 있게 되었다.


 돈이 지배하는 선거라고도 말하지 않으려 한다. 가장 많은 돈을 사용한 문재인 후보가 승리하긴 했지만, 두 번째로 많은 돈을 사용한 안철수 후보는 3위에 그쳤다. 지난 대선에서도, 더 많은 돈을 사용한 문재인 후보가 낙선했다.


 그러나 진정으로 ‘공정한 선거’란 무엇인가를 고민할 필요가 분명히 있다. 선거연락소를 차리지 못한 후보자는 방송차도, 선거운동원도 동원할 수 없는 제도적 상황. 입지가 좁은 정당은 입지가 좁다는 이유로 더 좁은 선거운동을 강요받는 현실.


 쉽게 답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무작정 모든 후보에게 선거비용을 제공할 수는 없는 것도 현실이다. 그러나 작은 정당의 가치가, 그 가치의 폐쇄성 때문이 아니라 ’돈’ 때문에 훼손되는 것은 지나치게 잔인한 일이다.


 언급한 대로, 공정한 선거는 그저 개표부정이나 관권선거 같은 일을 막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소수당이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를 보장하는 것. 그와 동시에 가치 없는 목소리로 인한 낭비가 벌어지지 않는 선거공영제의 기준을 고민하는 것. 그것이 진정으로 공정한 선거를 만드는 데 중요한 지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돈으로 우리의 대표자를 뽑는, 우리의 선거니까 말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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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정치는 끝나지 않는다 (下): 각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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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더불어민주당부터 살펴보자.


 놀라운 시간들이 연속되어 있었다. 지난 연초부터 필리버스터를 통해 국회 안에서 드라마를 써나간 더불어민주당은, 4월 총선의 기적적인 승리, 탄핵소추 성공, 대통령 파면 결정, 이번 대선의 승리까지 오직 승리에 승리만을 거듭해 왔다.


 순전한 행운이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국정농단 사태가 밝혀진 건 언론 덕분이었지만, 촛불의 승리를 가져오는 데 더불어민주당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더불어민주당은 의원 총사퇴 결의까지 하며 탄핵을 소추한 정당이었다.


 그러나 승리는 곧 책임을 맡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제 집권여당이고, 120석의 의석을 가지고 있는 원내 1당이다. 국회의장은 더불어민주당 출신 정세균 의장이고, 대통령 역시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대통령이다.


 올해와 내년, 14명 대법관 중 양승태 대법원장을 포함해 총 8명의 임기가 만료된다. 이중 대법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할 것이며, 올 6월 임기가 종료되는 박병대 대법관의 후임을 제외한 6명의 대법관은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신임 대법원장의 추천을 받아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할 것이다.


 헌법재판소장 자리는 여전히 공석이다. 대통령 임명 헌법재판관 자리도 한 석이 비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곧 헌법재판관 한 명을 임명하고, 헌법재판소장도 재판관 가운데 새로 임명할 것이다. 내년 9월이면 헌법재판관 5명의 임기가 동시에 종료된다. 이중 두 명은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신임 대법관이 추천할 것이고, 한 명은 더불어민주당이, 한 명은 자유한국당이, 나머지 한 명은 국회가 합의해 추천할 것이다. 내후년에는 또 두 명의 헌법재판관 임기가 만료되고,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헌법재판관 두 명을 임명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명실상부한 집권여당이다. 입법부 세력이 교체되었고, 행정부 세력이 이제 교체되었으며, 곧 사법부 세력 역시 대규모의 변화가 있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이 새롭게 국가를 이끌어나갈 것이다. 그리고 이제, 이 국가의 책임도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이 져야 할 것이다.


 “소수당의 설움” 같은 건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은 강력한 권력을 지니고 있다.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극적으로 달라질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이 정도의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있는가? 소위 말하는 ‘수권능력’의 문제다.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정부가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때로는 발맞추고 때로는 견제하며 함께할 수 있는가? 다른 정당과 원활하게 소통하며 성공적인 5년을 만들 수 있는가?


 확신하지 못한다. 누구라도 확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의 실력에 앞으로의 5년이 달려 있다는 것 정도는 확신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5년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5년이 더불어민주당의 능력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기적처럼 이어진 승리, 이제 보답할 때다. 결과로 보여줄 차례다.






2.  



 더불어민주당이 승리에 승리만을 거듭한 만큼, 자유한국당은 패배에 패배를 거듭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권력을 눈앞에 두고 있다면, 자유한국당은 그 권력의 상실만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의 미래가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다. 홍준표 후보의 전략은 도덕적으로 잘못되었을 수 있고, 누군가에겐 굉장히 기분나쁜 것이었음은 명백하지만, 그만큼 그 전략이 효과적이었다는 사실 역시 명백하다. 초반에 한 자리 수를 오가던 지지율이 24%까지 올라갔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자유한국당을 떠났던 바른정당의 의원 13명이 복당 의사를 밝혔다. 홍준표 후보는 대선후보 당무우선권을 발동해, 이 13명 의원에 대한 복당 허가와 친박계 징계의 해제를 명령한 바 있다. 자유한국당은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고, 원래의 세력을 차츰 회복하고 있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을 것이다. 홍준표 후보가 대선 출마를 위해 경상남도지사에서 물러난 것은 어찌 보면 상실이지만, 홍 후보 개인 입장에서는 오히려 자유를 얻은 것일 수도 있다. 홍준표 후보는 이제 중앙정치를 무대로 자유한국당의 당권 장악을 위해 동분서주할 것이다. 24%라는 지지율과, 탈당 의원들의 복귀 신호, 대선후보라는 간판이 그를 도와줄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반대 세력이 만만치 않으리라는 점이다. 홍준표 후보는 그 스스로도 늘 강조하듯, 당내에 강력한 세력 기반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홍준표 후보의 독주에 제동을 걸고자 하는 이들이 반드시 발생할 것이다. 홍 후보는 그들과의 갈등이라는 하나의 시험대를 거쳐가야 한다.


 우선 정우택 원내대표 겸 당대표 권한대행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결론적으로는 수용했지만, 정 원내대표는 홍 후보의 당무우선권 발동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반발의 목소리를 냈다. “홍 후보가 이번에 지면 정치를 안 하겠다고 했다”는 발언까지 하며, 홍 후보에게 견제구를 던지고 있다.


 홍준표 후보도 마찬가지다. “당권 가지고 싸울 생각은 추호도 없다”면서도, “친박들은 좀 빠줘졌으면 한다”고 정우택 원내대표를 비롯한 ‘원조 친박’ 세력을 견제하고 있다. 홍 후보는 당권 출마 가능성에 대해서도 “더 생각해 보겠다”며 유보적인 태도를 취했다. 얼마든지 당권에 도전할 수 있다는 신호다.


 지금까지 몸을 사리며 별다른 돌출 행동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어쨌든 자유한국당은 복당한 바른정당 의원들까지 포함해 107석의 의석을 점유하고 있다. 제1야당이다. 더불어민주당의 119석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 수치다.


 이 강력한 정당을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홍준표 후보는 당내 세력을 구축해가며 당권을 장악해 다음 선거를 노리려 할 것이고, 이것에 제동을 걸고자 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홍 후보는 대중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승부할 것이며, 반대편은 당내 세력과 홍 후보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가지고 승부할 것이다.


 둘 사이의 갈등이 봉합되기 전까지, 자유한국당의 미래는 여전히 위태롭다.







3.  


 국민의당은 근본적으로 두 개의 세력이 연합을 통해 만든 정당이다.


 첫 번째는 안철수 세력이다. 안철수라는 개인은 국민적 인지도와 지지도를 고려했을 때, 독자적으로 세력을 구축할 수 있는 인물이다. 안철수라는 뛰어난 정치인 한 명과, 그 측근들이 하나의 세력을 이루고 있다. 이 세력은 규모가 크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중정치에서 영향력은 강하다.


 그리고 호남 중진 세력이 있다. 호남에서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쌓아놓은 중진급 의원들이 여기 속한다. 대표적으로 박지원 의원, 정동영 의원, 천정배 의원 등이 있다. 이들은 대중정치에서 그리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못하고, 따라서 국민 전체에게 강한 영향력을 가진 이들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의 규모는 거대하다. 지역에서 다져놓은 정치적 뿌리가 튼튼하고, 동원할 수 있는 세력은 정치권을 통틀어도 손에 꼽는다.


 이 두 세력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고리로 꽤나 강력한 연합을 만들어내고 있다. 안철수 개인은 대통령을 꿈꾸는 인물이다. 대통령선거는 개인의 역량만으로 치를 수는 없다. 골목 곳곳을 들어갈 수 있는 지역 풀뿌리 지지 세력이 필요하다. 호남 중진 세력은 안철수 세력에게 이 지역 영향력을 제공해 준다.


 호남 중진 세력도 안철수를 통해 많은 것을 얻는다. 안철수라는 인물을 전면에 내세워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고, 당권을 장악하고 ‘컷오프’ 따위로 끌려나오지 않을 단단한 정치적 기반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안철수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이 누리고 있는 권력을 40석의 작은 정당이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연합은, 성공할 때는 단단해 보이는 것이다. 어느 한 쪽의 힘이 약해졌을 때도, 이 연합은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는가?


 일단 안철수 개인은 대선을 통해 큰 상처를 입었다. 21%라는 지지율은 어느 면에서 봐도 그리 만족스럽지 않다. 홍준표 후보에 밀려 2위라는 점과, 한때 오차범위 내에서 문재인 후보와 접전을 벌였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결코 만족스러운 성적표가 아니며, 차기에 안철수 후보가 대통령으로 출마할 수 있는지도 의문시되고 있다. 거기에는, 안철수 후보 개인의 대선주자로서 역량이 그리 뛰어나 보이지 않았다는 점도 영향을 끼치고 있을 것이다.


 호남 중진 세력이라고 크게 득을 본 것은 아니다. 안철수 후보는 전라북도, 전라남도, 광주광역시 모두에서 지지율 1위 자리를 문재인 후보에게 내주고 말았다. 그냥 내준 것도 아니었다. 광주와 전남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안철수 후보에 비해 두 배 정도의 지지율을 얻었고, 전북에서는 이 격차가 세 배로 벌어진다. 시군구를 봐도 똑같다. 안철수 후보는 단 한 곳의 기초자치단체에서도 문재인 후보를 앞서지 못했다.


 안철수 후보로서는 이제 이 연합이 별로 만족스럽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호남 세력도 마찬가지다. 안철수라는 정치인이 대중에게 가지는 입지도가 점차 좁아지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연합은 깨어질 것인가? 당장 깨진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추세대로라면, 이 연합은 언젠가 붕괴한다. 양측이 연합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지나치게 작아진다. 연합을 유지하는 것보다 연합을 깨는 것이 이익이라고 어느 한 쪽이 판단하는 순간, 당도 함께 깨질 것이다.


 안철수 후보는 대선백서 출간을 제안하며 당분간 정치권에 얼굴을 비추지 않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당에서는 비대위 구성을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파국적인 미래를 막기 위해서, 국민의당은 보다 본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만 할 것이다.






4.  


 바른정당은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서 선거를 치뤘다. 유승민 후보의 지지율이 답보 상태를 이어가면서 선거 비용을 보전받을 가능성이 사라졌고, 따라서 최대한 돈을 아껴가며 선거를 치뤄야 했다. 의원들의 탈당으로 교섭단체 20석을 겨우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막판 결집으로 약간의 상승이 있었지만, 결국 7%를 넘지 못한 참담한 지지율이었다.


 왜일까. 유승민 후보가 보수 진영의 전통적 지지층에게 ‘배신자’라는 낙인을 찍혀서인가? 하지만 지난 총선 대구에서 출마한 유승민 후보는 75%라는 높은 지지율을 받으며 당선됐다. ‘배신자’라는 낙인이 탄핵 뒤에 생긴 것인가?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홍준표 후보를 지지한 이들 가운데 탄핵에 반대한다는 이는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절반은 탄핵에 찬성하거나 의견을 유보하면서도 홍 후보를 지지했다.


 유승민 후보가 전략적으로 잘못된 선거를 치뤘는가?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유 후보의 선거 전략은 정석에 가까웠다. 토론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고, 본인의 소신대로 촘촘한 공약을 만들었다. 후보 개인의 정치적 감각도 나쁘지 않았고, 감성에 호소하는 것 역시 빼놓지 않았다. ‘올바른 보수’라는 구호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유승민 후보의 지지율은 크게 뛰어오르지 않았다. 이것은 유승민 후보 개인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앞으로 다가오는 선거에서 바른정당은 똑같은 위기에 직면할 것이고, 이대로라면 아마 그 위기를 극복하지 못할 것이다. 유승민 후보는 바른정당의 정체성을 들고 선거에 임했다. 그리고 그 정체성은 외면당했다.


 대체 무엇이 문제였는가? 문제는 바로 그 정석에 가까운 전략이었다. 정치는 정석에 가깝게 흘러가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승민 후보와 바른정당의 전략은 ‘진보진영의 정석’과 가깝다. 우리 정치에서 각 진영이 국민에게 표를 호소하는 방법은 판이하게 다르다.


 진보진영은 가치를 우선하지만, 보수진영은 이익을 우선한다. 사실 이건 꼭 우리 정치에서만 벌어지는 일도 아니다. 모든 정치에서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이 추구하는 전략은 다를 수밖에 없다. 보수진영은 언제나 밥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고, 진보진영은 언제나 밥보다 중요한 게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유승민 후보는 어땠는가? 유승민 후보는 스스로를 보수 정치인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그의 메시지는 진보진영의 방식으로 전달된다. 그는 언제나 가치를 우선한다. 완전히 다른 무기를 가지고 싸우는 것이다. 그는 보수진영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선거운동을 펼치면서 진보진영의 방식을 사용한다. 당연히 효율적이지 못하다. 가치를 통해 설득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다른 진영에 서 있다.


 유승민 후보라고 “밥”을 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번 선거는 꽤나 오랫동안 지속된 불황 속에 치뤄졌고, 당연히 “밥”은 모든 정치인의 관심사였다. 보수진영은 말할 것도 없고, 진보진영도 “밥”을 논했다. 차이가 있다면 보수진영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오직 “밥”만을 말했다면, 진보진영은 “밥”과, 그 “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치”를 함께 논했다는 점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유승민 후보의 전략은 달랐다. 유승민 후보의 전략은 언제나 “가치”가 앞에 있었다. 유승민 후보는 경제학자답게 경제정책을 앞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그는 경제정책조차 “밥”보다 “가치”를 앞에 뒀다. 재벌개혁을 주장했지만, 유승민 후보는 재벌개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의를 앞세웠다. 그 정의의 구현을 통해 일반 국민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그의 메시지에선 생략되어 있다.


 유승민 후보는 진보진영의 전략을 가지고 보수진영을 설득하려 한다. “가치”와 “밥”이 언제나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가치있는 밥”이 존재한다. “밥”이 중요한 선거에서는 진보정당의 후보까지도 “가치있는 밥”을 들고 나온다. 하지만 유승민 후보는, 스스로 보수라고 규정하면서 전통적인 진보진영의 메시지 전달법에 지나치게 천착했다. 진보진영의 유권자는 마음이 움직이겠지만, 스스로를 ‘보수’라고 말하는 정치인을 선뜻 지지해줄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유승민 후보, 넘어서 바른정당은 “가치를 중시하는 보수”라는 당의 이미지부터 별로 효율적인 전략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해답은 이미 나와 있다. 진보진영이 “가치”를 중시하면서도 “밥”을 말하는 것을 보자. 그들은 전통적인 진보의 메시지 전달법에 “밥”을 얹는다.


 개혁적인 보수를 지향하는 바른정당은 정확히 반대로 외치면 된다. “밥”을 중시하면서도 “가치”를 외치면 된다. 전통적인 보수의 메시지 전달법 위에 “가치”를 얹어야 한다. 그렇게, 진보진영과는 다른 방식으로 “가치있는 밥”을 외쳐야만 보수 유권자를 설득하고 당이 성장할 수 있다.


 그러나 유승민 후보와 바른정당이 그런 메시지 전달법을 새로 숙달하고 당 전체의 이미지와 전략을 바꿀 수 있을지, 바꿀 수 있다고 해도, 당이 무너지는 속도보다 숙달의 속도가 더 빠를지는, 더 두고 지켜봐야 하는 일일 것이다.





5.  


 정의당은 한편으로는 아쉽고, 한편으로는 만족할 수 있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심상정 후보가 얻은 득표율은 최종 6.17%. 한때 10%를 넘나들었던 지지율은 막판에 크게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 동안 확산됐던 ‘문재인 위기론’과 ‘골든 크로스 설’ 때문에, 많은 심상정 지지자들이 문재인 후보 측으로 옮겨갔을 것이다. 여론조사에서 심상정 후보는 유승민 후보보다 장기간 우위에 서 있었으나, 심 후보 지지자들의 막판 이탈과 유 후보 지지자들의 막판 결집으로 결과가 뒤집힌 것도 아쉬울 것이다.


 그러나 성과도 있었다. 심상정 후보가 얻은 표는 2,017,458표. 진보정당이 얻은 역대 가장 많은 표이다. 2백만 표를 넘긴 것도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심상정 후보가 출구조사 결과 낮은 지지율을 보이자 후원 계좌에 몰린 2억 원의 후원금은 진보정당이 여전히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상징하는 숫자라고 할 수 있다.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 정의당. 정의당은 앞으로 그 성과를 확대할 것인가, 혹은 한계를 확대할 것인가. 이번 선거는 전직 대통령의 탄핵 위에서 벌어진 특별한 조건의 선거였다. 문재인 후보가 처음부터 끝까지 대세론의 바람을 안정적으로 타고 있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진보진영의 유권자들이 심상정 후보에게 표를 줄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는 뜻이다. 지난 18대 대선과 같은 접전 양상이 다시 펼쳐질 때, 정의당이 설 자리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렇다면 정의당은 지금부터 성과를 확대하고, 한계를 축소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 나가야 한다. 정의당의 한계를 만드는 요소는 무엇이 있을까. 당내 계파정치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진보정당에서 사라지지 않는 해악이기도 하다. 정의당은 일반 평당원의 대규모 입당을 통해 서서히 ‘계파색’을 없애가고는 있지만, 여전히 열성적인 활동가들이 계파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정의당이 해결해야 할 중요한 요소다.


 새로운 정치인의 영입도 중요한 문제다. 정의당은 노회찬과 심상정이라는 3선 의원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진보정당을 지탱하고 있는 대단히 중요한 축이다. 그러나 든든한 축만큼이나, 정치인이 새로 유입되는 활기도 대단히 중요하다. 그리고 그 정치인이, 자리를 잡고 새로운 축으로 커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정의당의 현재는 어떤가. 정의당에는 총 6명의 의원이 있지만, 이들 중 재선 의원은 아무도 없다. 노회찬과 심상정이 3선 의원이고, 나머지는 전부 비례대표로 들어온 초선 의원이다. 이들 초선 의원은 내년에는 지역구에 도전해야 한다. 이들이 지역구에서 민주당과의 연대 없이 승리할 수 있는가? 아니, 애초에 연대를 통해 후보로 선출될 수라도 있는 인물은 몇이나 될까?


 지난 총선, 정의당은 5석을 가지고 선거를 치뤘다. 현직에서 지역구 당선자는 심상정 의원 한 명 뿐이었다. 서기호 의원은 불출마를 선언했고, 김제남 의원은 야권연대를 이유로 사퇴했다. 정진후 의원과 박원석 의원은 지역구에 출마했으나 모두 낙선했다. 지금 정의당에는 누가 있으며, 누가 성장할 수 있는가?


 물론 성장의 요소도 있다. 무엇보다 정의당의 인지도가 서서히 올라가고 있다는 점, 그리고 정의당의 가치에 공감을 표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점에서 이번 대선은 대단히 좋은 기회였으며, 심상정 후보는 이 좋은 기회를 아주 적절하게 잘 사용했다. 정의당에게는 희망의 신호다. 정의당이 이들을 수용할 수 있도록 발빠르게 움직여만 준다면, 정의당의 지지율은 생각보다 빠르게 뛰어오를 수도 있다.


 2백만 표는 그리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정의당으로서는 성장판이 되어줄 수 있는 숫자다. 정계가 앞으로도 이와 같은 다당 체제로 이어진다면, 정의당은 꽤나 중요한 정치의 한 축이 될 것이다. 선거제도가 개혁되었을 때 정의당의 영향력이 강화될 것은 물론이지만, 정의당이 이 기회를 잘만 활용한다면 선거제도 개혁 이전에도 정의당이 나름의 입지를 잘 구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의당에게는 지금이 변곡점이다. 더 급격히 강력해지는 변곡점일 수도 있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영향력을 가졌던 ‘영광의 시절’로 회상되는 변곡점일 수도 있다. 어쩌면 대선 자체보다 중요한 시점이 지금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정의당이 스스로의 손으로 만들어낼 것이다.







결론

 쉬운 선거였지만, 많은 정당이 꽤나 복잡한 성적표를 얻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승리만큼이나 무거운 책임을 요구받았고, 자유한국당은 재건으로 가는 길의 험난함이 예고되어 있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서로 다른 이유로 붕괴 위기까지 언급되고 있고, 정의당은 대선보다 중요한 시기를 맞고 있다.


 복잡한 성적표를 받아든 것은 정치인 뿐은 아니다. 국민들 역시 새로운 종류의 갈등을 맞딱뜨리고 있다. 지역감정은 옅어지고 있지만 세대 갈등은 더욱 강력해지고 있다. 새로운 세대가 성장할수록 정치의 변화 속도는 빨라질 것이다. 이 속도를 가늠할 수 있는 여론조사에 대한 신뢰를 회복한 것은 성과라면 성과다.


 선거는 끝났고, 길었던 보수정권 역시 끝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했고, 상당히 빠른 속도로 인선이 발표되며 정상적인 업무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정치는 끝나지 않았다. 정치인들도, 국민들도, 받아든 성적표를 가지고 다음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정치인들은 더 나은 정부 운영을 위해, 혹은 더 나은 정부 견제를 위해 다음을 고민해야 한다. 국민들은 주권자로서 더 나은 판단을 위해, 그래서 더 나은 선택을 위해 다음을 고민해야 한다.


 정치는 끝나지 않는다. 당선인이 결정된 바로 그 순간부터, 다음의 정치가 시작된다.


 다시 새로운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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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정치는 끝나지 않는다 (上): 총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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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가 끝났다.


 돌이켜보면 허무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지루한 선거였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처음부터 끝까지 대세론의 바람을 타고 대통령의 자리에 안착했다. 다른 후보는 문재인 후보와 경쟁하는 것조차 어려워 보였다.


 한때나마 안철수 후보가 문재인 후보를 턱밑까지 쫓아가 위협했지만 지지세는 이내 사그라들었고, 막판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에 홍준표 후보 지지자들의 결집세가 놀라웠으나 2위를 차지하는 ‘실버 크로스’에 그쳤다. 문재인 대통령은 아주 쉬운 선거를 거쳐, AP통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시아에서 가장 힘든 자리”에 앉게 됐다.


 그러나 선거가 끝났다고 정치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선거는 끝났지만 정치는 끝나지 않았으며, 그러므로 이 뻔한 선거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고, 또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 분석하고 예측하는 것이 그리 무의미하진 않을 것이다.





결과

 전국에서 총 32,807,908명의 유권자가 선거에 참여했다. 투표율은 77.2%였다. 80%를 넘을 것이라는 예측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97년 대선 이후 가장 높은 투표율이었다. 인구의 증가를 고려해야겠지만, 투표에 참여한 인원 수는 헌정 사상 최고치였다.


 당선인은 문재인 후보. 전국에서 13,423,800표를 가져가며 41.08%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과반에 미치지 못하는 득표율이었지만 다자구도였음을 고려해야 한다. 2위와의 표차는 5,570,951표로 역대 가장 많았다. 2위 홍준표 후보는 7,852,849로 24.03%의 득표율을 올렸다.


 3위는 안철수 후보였다. 전국에서 6,998,342표를 얻었고, 득표율은 21.41%였다.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2,208,771표로 6.76%의 득표율을 기록해 4위를 차지했다. 주요 후보 가운데 가장 낮은 득표율을 기록한 후보는 심상정 후보였다. 전국에서 2,017,458표를 얻은 심상정 후보는 6.17%의 득표율로 5위를 차지했다.




여론조사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여론조사’였다. 여론조사는 최근 급격히 신뢰도를 잃고 있는 중이다. 이번에도 “여론조사를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이 상당수 있었다. 여론조사가 큰 차이로 틀리는 일이 몇 차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지난 총선을 보자. 여론조사 전문기관은 모두 새누리당의 압승을 예측했다. 새누리당의 과반에 의심을 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대부분 더불어민주당이 100석 미만의 의석을 차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모두들 알다시피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새누리당은 122석으로 주저앉았고, 더불어민주당은 123석을 얻으며 원내 1당의 자리를 차지했다.


 미국 대선은 또 어땠는가. 대부분의 여론조사는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승리를 예측했다. 그러나 승리는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몫이었다. 직접선거에서 승리한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승자독식제에 밀려 도널드 트럼프 후보에게 당선의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여론조사는 이번에도 실패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여론조사는 다시 그 체면을 차릴 수 있게 됐다. 각 여론조사 전문기관의 예측조사를 보자. 한국갤럽의 예측치는 문재인 43.1%, 홍준표 22.3%, 안철수 19.6%, 유승민 7.1%, 심상정 7.3%였다. 유승민 후보와 심상정 후보의 순위를 잘못 예측했지만, 전체적으로 2%p 내외에서 거의 정확히 적중했다.


후보

예측치 (한국갤럽, %)

실제 득표 (%)

차이 (%p)

문재인

43.1

41.08

2.02

홍준표

22.3

24.03

-1.73

안철수

19.6

21.41

-1.81

유승민

7.1

6.76

0.34

심상정

7.3

6.17

1.13


 리얼미터를 보자. 리얼미터는 문재인 42.7%, 홍준표 22.8%, 안철수 19.1%, 유승민 8.2%, 심상정 6.0%라는 예측 결과를 내놨다. 거의 정확한 예측치였다. 1%p 정도의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심상정 후보의 경우에는 0.1%p 차이라는 경이로운 결과였다.


후보

예측치 (리얼미터, %)

실제 득표 (%)

차이 (%p)

문재인

42.7

41.08

1.62

홍준표

22.8

24.03

-1.23

안철수

19.1

21.41

-2.31

유승민

8.2

6.76

1.44

심상정

6.0

6.17

-0.17


 출구조사 결과도 그랬다. 직접 투표한 사람에 한해 대면으로 실시한다는 점에서 출구조사가 기존 여론조사보다 적중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정확했다. 방송 3사 출구조사는 문재인 41.4%, 홍준표 23.3%, 안철수 21.8%, 유승민 7.1%, 심상정 5.9%를 예측하며 실제 득표 결과와 1%p 차이가 나지 않는 결과를 보여줬다. 홍준표 후보를 제외하면 모두 0.4%p를 벗어나지 않는 오차였다.


후보

예측치 (방송 3사, %)

실제 득표 (%)

차이 (%p)

문재인

41.4

41.08

0.32

홍준표

23.3

24.03

-0.73

안철수

21.8

21.41

0.39

유승민

7.1

6.76

0.34

심상정

5.9

6.17

-0.27


 여론조사는 민심의 향방을 가늠하는 대단히 중요한 요소다. 정치인들은 여론조사를 보고 정책의 도입을 결정하기도 하고, 정책을 수정하거나 철회하기도 한다. 매번 국민투표를 실시하지 않을 것이라면, 여론조사의 정확성은 정치를 선진화하는 아주 효율적인 도구다. 여론조사가 다시 제 자리를 찾고, 사람들이 다시 여론조사를 신뢰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은 좋은 신호라고 할 수 있겠다.




양극화

 ‘민심의 양극화’도 이번 대선의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다. 그러나 과거와는 다른 양태의 양극화가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과거 선거에서 민심을 양극화하는 요소는 ‘지역’이었다. 영남과 호남의 정치적 성향 차이는 한국 정치를 정의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보다 중요한 요소로 ‘세대’의 양극화가 떠오르고 있다.


 물론 지역 간 양극화가 사라졌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다. 광주에서 홍준표 후보는 1.55%의 미미한 득표율을 기록했다.  반면 문재인 후보는 61.14%라는 득표율을 기록하며 홍 후보를 압도적으로 이겼다. 홍 후보는 호남에서 문재인, 안철수, 심상정 후보 모두에게 밀려 4위를 차지했으며, 광주에서는 유승민 후보에게도 밀려 주요 후보 가운데 가장 적은 표를 얻었다.


 대구에서 홍준표 후보는 45.36%를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지만, 문재인 후보는 21.76%를 차지하며 홍 후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문재인 후보는 전국에서 고른 수준의 지지를 받았지만 역시 호남권에서 60%선의 지지를 받으며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반면 대구와 경북에서는 20%대, 경남에서는 30%대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홍준표 후보에게 1위 자리를 내주었다. 지역감정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역감정이 사라지는 과정 중에 있다는 사실만큼은 주지의 사실인 듯하다. 문재인 후보는 경상남도에서 홍준표 후보에게 졌지만 득표율 차이는 0.5%p 정도에 불과했다. 창원과 김해, 양산, 거제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홍준표 후보에게 승리하는 양상도 보였다. 물론 창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문재인 후보와 관련이 있는 지역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이외에도 문 후보는 울산에서는 울주군, 중구, 남구, 북구, 동구 전 지역을 석권하며 1위를 차지했고, 부산에서는 서구, 중구, 동구를 제외한 13개 구,군에서 승리했다. 문 후보가 영남권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놀라운 수치다.


 비슷하게 민주당계 정당이 영남 출신 후보를 낸, 지난 두 차례의 대선과 비교해 보자. 수치는 더욱 놀라워진다.



2017

문재인 득표율 (%)

2017

문재인 - 홍준표 (%)

2012

문재인 득표율 (%)

2012

문재인 - 박근혜 (%)

2002

노무현 득표율 (%)

2002

노무현 - 이회창 (%)

전국 평균

41.08

17.05

48.02

-3.53

48.91

2.33

부산광역시

38.71

6.73

39.87

-19.95

29.85

-36.89

울산광역시

38.14

10.68

39.78

-20.00

35.27

-17.60

경상남도

36.73

-0.51

36.33

-26.79

27.08

-40.44

대구광역시

21.76

-23.6

19.53

-60.61

18.67

-59.08

경상북도

21.73

-26.89

18.61

-62.21

21.65

-51.81

영남 평균

31.38

-7.22

30.52

-38.10

25.4

-43.2


 영남이 보수 후보의 ‘텃밭’ 역할을 서서히 중단하고 있다는 표지가 드러나고 있다.


 전국과의 득표율 차이를 추세로 살펴보면 신호는 명확하다. 




 물론 이번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가 전체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는 점, 안철수 후보라는 제3지대가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15년 전 대선과 비교했을 때 분명한 차이가 드러났다는 점은 사실이다. 특히 지난 총선에서 ‘이변'으로 취급받았던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와 정운천 후보,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후보, 민주당계 무소속 홍의락 후보의 당선과 연장선에서 생각한다면, 결코 가볍게 볼 만한 신호는 아니다.


 그렇다면 새롭게 드러나는 차이는 무엇일까. 세대의 격차를 놓칠 수 없다. 일단 세대별로 누가 어디에 투표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은 당연히 없다. 다만 각 후보의 득표율을 거의 정확하게 예측했던 출구조사의 결과를 참고할 수는 있다.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세대별로 지지 후보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20대와 30대는 문재인 후보를 가장 많이 지지했고, 전체 2위를 차지한 홍준표 후보는 주요 후보 가운데 가장 낮은 지지율을 얻는 처참한 성적을 받았다. 유승민 후보와 심상정 후보의 지지율 역시 20대와 30대에서 많이 나타난다. 안철수 후보는 2위를 차지하고는 있지만,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반면 세대가 올라가면 추세가 명확히 바뀐다. 40대는 52.4%라는 높은 지지율로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지만, 홍준표 후보의 지지율이 처음으로 두 자리수로 올라선다. 안철수 후보 역시 22.2%라는, 전체 평균보다 높은 득표율을 보여주고 있다.


 50대부터는 홍준표 후보의 지지세가 확연히 나타나고, 유승민 후보와 심상정 후보의 지지율은 점차 낮아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안철수 후보는 높은 연령대에서도 20%대의 꾸준한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반면, 문재인 후보와 홍준표 후보는 극적인 차이가 드러난다. 60대부터는 문재인 후보가 홍준표 후보에게 크게 밀린다. 70대 이상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홍준표 후보에게 더블 스코어로 밀리는 모습이 보인다.


 지역별로 보면, 20대는 영남을 포함한 전 지역에서 문재인 후보가 홍준표 후보에게 승리한다는 결과가 나온다. 세대가 올라갈수록 영남을 중심으로 홍준표 후보의 지지율이 올라가기 시작하며, 60대를 넘어서면 홍준표 후보가 호남을 제외한 전 지역을 석권한다. 문재인 후보는 전북과 전남만을 가져가고, 안철수 후보가 광주에서 1위를 차지한다.




 굳이 과거라고 세대별로 완전히 같은 표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그 추세는 점차 명확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옅어지는 지역갈등에 대비해, 다음의 키워드는 세대 갈등이 될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20대가 30대가 되고, 40대가 되고, 또 50대가 되었을 때 정치의 지형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도 주목해야 할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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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진짜 싸움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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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지나온 시간인지 모르겠다.


 지난해 말엽. 낯선 이름들, 그러면서도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름들이 언론에서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솔직히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우리는 몰랐다.


 민간인 국정농단의 명확한 증거가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강고하던 여당이 분열하기 시작했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발의되었고, 국회의원 234명의 찬성으로 가결되었다. 몇 달 동안 특검이 수많은 사람들을 수사했다. 최순실, 이재용, 류철균, 김기춘, 조윤선. 익숙한 이름들이 하나둘 구속되었다.


 대통령이 탄핵되었다. 헌법재판관 8명이 전원 대통령 파면에 동의했다. 이내 그는 구속되었다.


 대선이 시작되었다. 대통령. 새 시대의 대통령을 뽑기 위한 레이스가 시작됐다. 처음부터 끝까지 대세론이 압도한 선거였지만, 불안하지 않았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문재인 후보가 대한민국 제 19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대통령 탄핵 소추로부터 반년. 길다면 길었던 그 시간이 하나의 프레임으로 압축되어 눈 앞에 스쳐가는 것만 같다.





 어려운 시간이었다. 단지 지난 탄핵 정국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FTA. 4대강. 언론장악. 세월호. 민중총궐기. 국정교과서. 수많은 단어들이 떠오른다. 버텨내기만도 버거운 시간이었다. 퇴보만이 가득한 시간이었다.


 그만큼 투쟁과 싸움으로 가득한 시간이었다. 광장 앞 민중을 철저하게 가로막은 컨테이너, 차벽, 그리고 경찰 병력. 저항의 선봉에 어쩔 수 없이 밀려나 서야만 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바람이 바뀌었다. 촛불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탄핵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세상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대통령은 탄핵되었고, 이제 우리는 정권의 교체를 목전에 두고 있다.





 승리 끝의 승리 끝의 승리였다. 그러나 축하만을 건네기에는 우리의 시대가 지나치게 어렵다.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열아홉의 노동자는 컵라면 하나 비우지 못하고 죽어야만 했다. 심의에서 탈락해 기초적인 생활 보조마저 받지 못한 송파의 세 모녀는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고 함께 죽음을 택했다. 몇 년 째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다 낙방한 청년은 어머니와 함께 고향으로 내려가던 길 휴게소에서 목을 맸다.


 서쪽에선 시진핑이 독재 체제를 구축하고 있고, 동쪽에선 도널드 트럼프라는 예측불가능한 대통령이 탄생했다. 북쪽은 우리에게 여전히 위협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남쪽에선 우파의 초장기 집권시대가 열리고 있다. 그 가운데 진보적인 정부를 꾸렸다고 말할 수 있는 공간은 한국밖에 없다.


 대학은 점차 기업화되어가고, 이를 막기 위해 본부를 점거한 학생들에게 물대포를 쏜다. 재벌은 골목을 잡아먹으며 몸집을 불리고 있다. 소득은 감소하고 있고, 빚은 늘어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의 열명 가운데 네명은 1년에 1천만원도 못 되는 돈을 손에 쥐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은 1명당 평균 1,200만 원이 넘는 부채를 가지고 있다.


 국민의 의지로 쫓아낸 대통령, 그리고 그 자리에 다시 국민의 의지로 앉게 된 새로운 대통령. 새로운 시대에 대한 열망과, 그 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개혁의 의지는 높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바닥만을 가리키고 있다.


 지난 10년간 우리의 일상은 투쟁이었다. 천막에서, 거리에서, 빈소에서, 광장에서. 우리는 투쟁과 싸움으로 그 버거웠던 시대를 지내 왔다.


 앞으로 새로운 정부가 열어갈 시간 역시 투쟁의 연속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차원이 다른 투쟁일 것이다. 몸으로 느껴지는 경제 성장을 만들어야 할 것이고, 누구에게도 무시받지 않고 당당하게 균형 외교를 지켜야 할 것이다. 위협에 단호하게 대처하면서도 북한과의 평화 시대를 열어야 할 것이고, 누군가를 해치지 않으면서 모두의 삶의 질을 높여줘야 할 것이다.


 이제까지의 싸움은, 오히려 쉬운 싸움이었다. 지더라도 도망갈 공간이 있는 싸움이었다. 대통령의 권한. 소수당의 설움. 보수적인 정치 지형. 핑계와 변명의 소지는 많았다.


 그러나 이제부터의 싸움은, 도망갈 공간이 없는 진정한 싸움이다. 대통령의 의지와 원내 1당의 추진력이 뭉쳐 변화를 만들어갈 것이고, 이 정부는 오직 그 변화의 결과로서만 평가받을 것이다. 성공했는가, 실패했는가. 심판은 냉혹하다. 더 무섭고 엄정한, 그래서 더 현실적인 싸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상대 정파와의 싸움이 아닌, 현실과의 ‘진짜 싸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문재인 후보, 아니 이제 문재인 대통령의 승리에 진심으로 축하를 보낸다. 어쩌면 5년 전 보았어야 할 승리의 유예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 시간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나쁘기만 한 시간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한다. 긴 기다림의 시간을, 문재인 대통령이 긴 준비의 시간으로 현명하게 활용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말했듯 걱정되는 지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현실은 우리의 의지 따위를 깊이 양찰해서 좋은 방향으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오직 결과만으로 평가받는 냉혹한 시간이, 문재인 정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문재인 후보를 감싸고 있는, 혹은 감싸고 있다고 착각하는, 맹목적인 지지자의 무리들은 그 냉혹한 평가에 별로 좋은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문재인 대통령의 현명한 판단력을 믿는다. 그가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 성공한 정부를 이끌고, 5년 뒤 성공한 나라와 함께 대통령의 자리에서 편안하게 물러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가 ‘진짜 싸움’에서 승리하리라는,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우리 사회가 조금씩이나마 진보해나갈 것이라는 희망섞인 예측은 거두지 않으려 한다.





 3천 2백만의 유권자가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어 지난 시대의 마감을 알렸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공인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받아든, 결코 가볍지 않은 한 송이 한 송이의 열망이라고 생각한다.


 서운하고 서러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걱정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안타까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미래에 합리적인 비관을 가진 분도 계실 것이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 오직 희망만을 가지고 문재인 정부를 바라보는 사람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문재인 정부에 힘을 보태 주어야 한다. 그것은 꼭 문재인 정부를 지지해 달라는 말은 아니다. 국민의 다수가 선출한 대통령이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때로 응원을, 때로 비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다.


 때로 그것이 절망적이라도, 때로 그것이 아무 가능성 없는 외침처럼 보이더라도, 우리는 우리를 대표하는 우리의 정부가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태야만 한다. 그래서 현실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만 한다. 국민의 합리적인 의견 표출만이, 민주정이 가질 수 있는 최대의 싱크탱크라고 믿는다.


 문재인 정부가 보다 성공적인 길을 갈 수 있도록, 모두의 힘을 보태야 한다고 믿는다. 결국 ‘국민의 승리’를 만들어낸 우리 유권자에게, 그 정도의 역량은 있으리라고 믿는다.





 문재인 대통령. 파국의 시대를 수습하고, 국민의 뜻을 한 데 엮어 더 나은 방향을 고민하는 대통령이 되어주시리라 믿는다. 그리고 그 위에서, 더 나은 발전의 방향을 제시하는 대통령이 되어주시리라고 믿는다.


 5년 뒤, 문재인 대통령이 성공적인 국정 운영을 마치고 새로운 대통령을 맞으며 퇴임하는 날, 나의 믿음이 헛되지 않았다며 기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마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낙선한 후보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여러분이 대변한 사람들의 민심이 새로운 정부 아래서 목소리를 이어갈 수 있도록, 여러분의 역할이 앞으로 더 중요하리라고 믿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문재인 대통령에게 축하를 보낸다. 새로운 시대를 여는 새로운 대통령에게 걸맞은, 새로운 정부의 성공적인 국정 운영을 기대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맞은 ‘진짜 싸움’에서, 그가 승리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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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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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en they go low, we go high.


 지난해 미국 대통령선거, 힐러리 클린턴 후보 지지연설에서 미셸 오바마가 했던 말이다. “그들이 저급하게 가도, 우리는 품격 있게 가겠다.” 차별과 혐오에 기댄 도널드 트럼프 후보에 대응하는, 미국 민주당의 기조가 오롯이 담긴 선언이었다.




 그리고 몇 개월 뒤, 한국에는 기적과 같은 대선이 찾아왔다. 대통령은 탄핵당했고, 이내 구속되었다. 비서실장과 장관, 재벌 총수까지 구치소로 모여들었다. 집권여당의 정권 연장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졌다.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의 독주를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따라붙고 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지지율은 10%를 오가고 있고,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의 지지율은 5% 선에서 뛰어오르지 못하고 있다. 보수정당은 착실하게 몰락의 길로 들어서고 있으며, 한때 한 정당에 몸을 담았던 두 명의 후보가 정권을 두고 경쟁하고 있다. 기적같은 일이었다. 국민이 광장민주주의의 힘으로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그러나 우리 정치에게는, 그 기적을 감당할 수 있을 만한 힘이 있었는가?


 어찌 보면 선물과도 같은 일이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발빠른 진보였다. 우리는 그 발빠른 진보를, 온전하게 성장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는가?


 소란스러운 대선 정국을 바라보며, 피어오르는 의심을 스스로 주체할 수 없다.





 물론 정치란 언제나 소란스러운 것이다. 소란스럽지 않으면 정치가 아니다. 소란스럽지 않은 정치는 오히려 더 위험한 정치다. 정치의 본질은 소란스러움이다. 그러나, 그 소란스러움이 얼마나 생산적인지는 또 다른 문제다.


 쓰리디나 삼디나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기본적인 어휘를 잘 알고 있다면 좋겠지만, 그걸 모른다고 해서 좋은 정책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공약은 후보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다. 후보가 당장의 시류를 잘 따라가지 못하더라도, 좋은 사람을 데려와 좋은 정책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건 문재인 캠프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기도 하다. 핵심은 3D를 무어라고 읽느냐가 아니라, 3D 프린터를 비롯한 기술혁명에 어떻게 대응하려 하는지 그 청사진이다. 별로 중요한 지적도 아니고, 별로 영양가 있는 지적도 아니다.


 그런데 한 쪽에서 영양가 없는 지적을 하면, 다른 쪽에선 영양가 없는 대답이 나온다. G20을 ‘지이십’이라고 읽으면 안 된다느니, 홍길동도 아니고 3을 ‘삼’이라고 읽으면 어떠냐느니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익숙하지 않다보니 실수를 했다고 말하고 다음부터 그러지 않으면 될 것을, 그리고 기술혁신에 대응하는 자신의 공약을 강조하면 될 일을, 이상한 논리를 들고 와서 방어를 한다.


 조폭이니 이단이니 하는 말들도 오간다. 그런 세력과의 연계를 끊어내지 못한 캠프의 작태는 한심하다. ‘차떼기’와 같은 불법 행위가 있었다면 명백히 처벌받아야 한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이 논란들이 ‘조폭’과 ‘이단’이라는 말에 담긴 부정적인 이미지를 안철수 후보에게 부당하게 덧씌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조폭이든 이단이든 누군가를 지지할 수는 있다. 문제는 그들의 영향력이, 그 후보에게 얼마나 강력하게 미치고 있느냐는 것이다. 안철수 후보의 정책에 ‘조폭’과 ‘이단’이 강력하게 개입한 정황이 존재하는가? 정부 성립 이후 그들이 국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보이는가? 그들로 인해 국가의 정책방향이 흔들릴 수 있는가?


 불법적인 사실에 대한 처벌 요구를 넘어선, 아무런 증거 없는 단순 의혹에 근거한 후보 비방은 네거티브에 불과하다. 하루에 수백 장도 넘는 사진을 찍는 정치인에게, 그들과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은 아무런 증거가 되지 못한다.


 아들의 특혜 채용 논란은 어떤가. 지금으로서 그가 문재인 후보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떤 특혜를 받았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 문제는 남겨진 의혹을 일소하는 일이다. 그러나 ‘귀고리’ 의혹에 대한 “자유로운 분위기의 공기업”이라는 대답을 보자.


 대체 어느 시대 어느 공기업이 그런 자유로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해명에 동의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취업을 조금이라도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모두들 비웃을 일이다. 채용 공고상 시간이 부족해 급하게 준비하다보니 부주의했다는 해명 정도면 충분하다. 캠프의 대응이 시민의 상식을 뛰어넘지 못한다. 논란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그 기본조차 모른다.




 아무런 가치 없는 질문과 의혹 제기가 이어지고, 마찬가지로 영양가 없는 대답이 이어진다. 누구에게도 이 갈등을 생산적으로 풀어나갈 의지가 없다.


 문명화된 갈등의 방식이 현대의 민주정치라지만, 무엇을 두고 갈등하는지는 성찰할 필요가 있다. 3D를 무어라 읽어야 하는지를 두고 갈등하는 것과, 기술혁신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두고 갈등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가.


When they go low, we go high.


 미국 민주당의 선거 기조를 그대로 농축한 이 문장을 다시 한 번 음미해 보자. 우리는 그들의 ‘저급한’ 지적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저급한 지적에 저급하게 대응하는 정치. 실수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정치. 사과에 인색한 정치. 우리는 그리 ‘품격 있는’ 정치를 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기적과 같은 선거였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사회는 그 기적을 감당할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분명 누군가는 선거에서 승리할 것이다. 그리고 아마 정권은 교체될 것이다. 현재 상황에서 자유한국당 정권의 연장은 불가능해 보인다. 촛불 민심은 새로운 세력을 선택할 것이며, 광장에 모여 대통령을 파면시킨 국민은 변화를 갈망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승리를 거둘 것인가? 똑같이 이기더라도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당당하게 이기는 후보가 있다. 반면 상대 후보에 대한 비방과 무책임한 의혹 제기로 비굴하게 이기는 후보가 있다.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패배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키며 올곧게 패배하는 후보가 있는 반면, 끝까지 아무런 비전을 제시하지 않고 지저분하게 패배하는 후보가 있다.




 어떻게 싸우든, 이기고 지는 것은 같다. 누군가는 이기고 누군가는 진다. 그러나 때로는, 어떻게 이기고 어떻게 지느냐가 다음의 승패를 좌우하기도 한다.


 우리는,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패배할 것인가?


 상황이 유리할 수록, 더 뼈아픈 성찰이 필요한 법이다.




 물론 그렇다고 단순히 “품격 있는 정치를 하라”고 명령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정책 대결이 실종됐다”며 현명한 척을 하는 언론들이, 정작 1면 톱으로는 3D니, 조폭이니, 이단이니 하는 이야기를 떠들고 있지 않은가. 생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논의 대신, 소모적이고 무의미한 논쟁만을 자극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이 있지 않은가.


 우리들의 수준 역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상대방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난, ‘우리 편’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가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리지는 않았는가. 자극적인 제목을 뽑아낸 ‘찌라시’들의 클릭수를 올려주는 것도 결국은 우리들이 아니었던가.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이 현실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정치인들만을 함부로 비난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부당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저급한’ 정치는 꼭 그들의 탓만은 아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냐고? 상대편에서 자극적인 의혹을 쏟아내고, 그 의혹이 정책 이슈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품격 있는 정치’를 할 수 있냐고?


 유세 현장에서, 미셸 오바마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How do we go high?


 광장에 모인 미국의 유권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We vote!


 그리고, 힐러리 클린턴은 유권자의 직접선거에서 300백만표 차이로 도널드 트럼프에게 승리했다.


 어쩌면 답은 우리 안에 있는지도 모른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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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서울대에도 봄은 오는가

시대의 농축, 시흥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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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당했습니다. 그 역사적인 날, 학생들 사이에서는 문자가 돌고 있었습니다. 내용은 그 공포감을 부각하듯 단순했습니다.


 “내일 본부의 침탈이 예상됩니다. 최대한 일찍 본부로 모여주세요.”




 서울대학교 학생들은, 지난 3월 11일까지 153일이라는 장기간에 걸친 본부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학교가 추진 중인 시흥캠퍼스 사업을 철회하라는 이유였습니다.


 장기간의 본부 점거라는 이례적인 상황이었지만, 혼란스러운 상황 탓에 서울대학교의 본부점거 사태는 밖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종종 의문을 표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새로운 캠퍼스를 지으면 좋은 것 아닌지, 무언가 나쁜 것이 있더라도 꼭 사업 전체를 철회해야 하는지 묻는 분들이 계십니다. 단순히 서울을 떠나기 싫어서 벌이는 이기적인 투쟁이 아니냐는 힐난의 목소리도 왕왕 들려옵니다.


 그러나 서울대학교의 시흥캠퍼스 사업은, 단순히 그렇게 볼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학교 측이 시흥캠퍼스 사업을 추진하며 든 목적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국제화의 추진과 관악캠퍼스의 포화 문제였죠. 새로운 방식의 국제화를 추진하기 위해 새로운 캠퍼스가 필요하고, 어차피 관악캠퍼스도 포화되어 있으니 새로운 캠퍼스를 만들자는 논리입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합니다. 국제화를 추진하기 위해서, 왜 새로운 캠퍼스가 필요할까요? 그냥 관악캠퍼스에서 국제화를 하면 안 되는 걸까요? 사실 저도 이 의문에 답을 드릴 순 없습니다. 답을 해야 하는 학교 측에선 별다른 답변이 없기 떄문입니다. “국제공항이 가까워서”라는 전 기획처장님의 말씀은 답변이라기엔 좀 민망하죠.


 관악캠퍼스가 포화되어 있다는 것은 어떨까요? 사실 관악캠퍼스가 오래 전부터 난개발된 것이 사실이고, 개발 제한 구역도 많은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서울대학교의 넓이를 봅시다.


 서울대학교는 270만m²만 넓이의 평창캠퍼스를 제외하고도 400만m²라는 넓은 부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큰 부지죠.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집니다. 중국의 북경대보다 크고, 예일대는 학교 안의 골프장까지 합해도 서울대보다 좁습니다. 동경대는 그 크기가 서울대의 절반도 되지 않죠.


 관악캠퍼스의 포화라. 이 정도 캠퍼스를 가진 주제에 할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라면 괜찮습니다. 새로운 캠퍼스가 지어지는데 ‘이유가 없다’는 건 좀 이상하지만, 그 이유야 앞으로 만들어나갈 수도 있죠. 새로운 캠퍼스에서, 학교와 학생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이 만들어진다면 학생들 역시 거부할 이유가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돈입니다. 서울대학교는 2011년 법인화되었으므로, 새로운 캠퍼스를 짓겠다는 이유로 국가의 지원금을 받을 순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캠퍼스를 짓는 비용은 어디에서 올까요?


 서울대학교와 시흥시가 체결한 양해각서를 보면, 그 계획이 나옵니다. 우선 시흥시는 서울대학교에 약 20만 평 정도 되는 땅을 무상으로 제공합니다. 신도시 중심부의 거대한 땅을 무려 공짜로 받아갑니다.


 대신 시흥시는, 건설업체 하나를 선정해 서울대학교 시흥캠퍼스 주변에 아파트를 지을 수 있도록 허가해 줍니다. 대학교도 들어오고, 신도시 부지이고 하니 땅값이 많이 오르겠죠? 제법 인기있게 분양도 될 거고요. 선정된 건설업체는 이익을 많이 볼 겁니다.


 그런데 이 이익은 서울대학교 덕분에 번 것도 일부 있으니, 건설업체는 최소 3000억 원 규모의 건물을 서울대학교에 무상으로 지어줘야 합니다. 분양 실적에 따라 최대 1500억 원이 더해져, 많게는 4500억 원 규모의 건물을 서울대학교에 무상 제공해야 하죠.


 참 재미있죠. 사실 서울대학교는 한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시흥시에 들어가겠다는 약속 뿐이었죠. 그 약속을 빌미로 건설업체는 투기 붐을 일으키고, 그 이익을 가지고 서울대학교에 건물을 지어 줍니다.


 시흥캠퍼스는 단순히 캠퍼스를 새로 만드는 사업이 아닙니다. ‘서울대학교’라는 이름을 팔아, 투기자본의 손을 빌어 만들어지는 캠퍼스입니다. 학교로서 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은 아닌 것 같죠.





 그래요, 여기까지도 그렇다고 칠 수 있습니다. 조금 꺼름칙하긴 하지만, 새로 캠퍼스가 만들어지면 학생들 입장에선 좋을 수도 있습니다. 보다 넓은 공간에서 쾌적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는데, 뭐 나쁠 것은 없겠죠.


 다만 문제는, 대체 시흥캠퍼스에선 무얼 하느냐는 것입니다. 학생들과 학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그런 이상적인 교육과정 운영이 가능할까요?


 저는 답변을 드릴 수 없습니다. 시흥캠퍼스에 수립된 계획이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구요? 계획이 없기 때문입니다.


 처음 학교 측에서는 ‘RC (Residential College, 거주대학)’라는 방식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재학생들 모두가 기숙사에 필수적으로 거주해야 하는 대학 형태입니다. 나쁜 건 아니에요. 해외 많은 대학이 이런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고, 보다 전인적인 교육을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어요. 무엇보다 우리나라처럼 땅 값 비싼 나라에선, 대학생 주거난을 해소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관악캠퍼스의 고질적인 문제가 기숙사의 포화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서울대학교가 현재 채택하고 있는, 하나의 캠퍼스와 단과대가 있는 방식도 나쁜 방식은 아닙니다. 어느 한 쪽이 옳고, 다른 한 쪽이 틀린 건 아니에요. 각자의 장단이 있죠.


 무엇보다 현재 단과대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학교가, 새로 거주대학 형태의 교육과정을 만들기에는 막대한 비용이 듭니다. 기숙사 건축은 물론, 이제까지 없었던 기숙사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도 많은 돈이 들어가니까요. 학생들의 자율권 침해 문제도 심각합니다.


 학생들은 반발했습니다. 결국 학교 측은, 학생들의 동의 없는 RC는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RC를 하지 않는다면, 그 넓은 시흥캠퍼스에는 누가 들어갈까요? 계획이 없습니다.


 특정 단과대학을 들어서 시흥으로 옮기는 건 어떨까요? 그러나 학교 측은, 학생들의 동의 없는 단과대 이전은 없다고 못박았습니다. 현재 관악캠퍼스에서 시흥으로의 이주를 원하는 대학은 없습니다.


 서울대학교 병원 분원도 시흥캠퍼스에 들어간다고 하지만, 서울대학교와 서울대학교병원은 서로 다른 법인입니다. 서울대학교가 함부로 약속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각종 포털사이트 지도에는 이미 ‘서울대학교 병원 예정지’가 들어서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병원의 동의는 어떻게 얻어야 할까요? 역시 계획이 없습니다.


 시흥캠퍼스 건설 과정에서, 민간업체에게 받는 건물과 돈이 4500억 정도라고 말씀드렸죠? 그런데 사실 이 자금으로는 시흥캠퍼스 전부를 완공할 수 없습니다. 전부 완성하는 데는 1조 8천억 정도의 돈이 들어가요. 부족한 돈은 어디서 마련할까요? 이번에도 당연히, 계획이 없습니다.


 물론 학교 측은 다양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창업 단지와 중소기업 기술지원 센터, 4차산업 융합 연구개발센터, 글로벌 교육센터 등을 갖추겠다고 말합니다. 외국의 대학들과 협의해 글로벌 창업 캠퍼스를 만들겠다고도 주장하죠. 하지만 알려진 것처럼 2018년 일부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다소 구체적이지 않은 계획들입니다.





 심지어 그 추진의 경위 역시 비민주적이었습니다. 서울대학교 학생들은, 시흥캠퍼스 사업의 진척 경위를 학교로부터 전혀 안내받지 못했습니다. 언론 기사로 간간히 접할 수 있었던 것이 전부였습니다. 추진 과정에서 학생들과의 밀접한 협력 따위는 없었습니다.


 학생들은 초기부터 시흥캠퍼스 추진에 반발하는 입장을 표시했고, 학교는 이러한 요구에 대응해 ‘대화협의회’라는 기구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학교와 학생이 시흥캠퍼스 문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기구였습니다.


 그러나 2014년 7월, 신임 성낙인 총장이 부임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성낙인 총장은 한 달에 최소 한 번의 회의를 열도록 규정하고 있는 대화협의회 규정을 위반했습니다. 2014년 9월에 한 번, 그리고 8개월 뒤에 한 번, 다시 1년 뒤에 한 번에야 회의를 열었죠. 기구의 기능이 사실상 사라져버렸습니다.


 특히 성낙인 총장은, 학교와 시흥시가 법적인 구속력을 가진 ‘실시협약’을 체결하기 전, 대화협의회를 통해 반드시 학생들과 미리 이야기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물론 약속은 파기됐습니다. 학생들은 실시협약 체결 30분 전 메일 한 통으로 이 사실을 알았습니다. 부랴부랴 항의방문을 간 학생들은 청원경찰에 의해 쫓겨났습니다.


 이후 성낙인 총장은 “신뢰의 서울대학교를 약속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시흥시와의 약속을 지켜서 다행이며, 학생들과의 약속 파기에는 ‘유감’을 표한다는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결국 시흥캠퍼스는 단순히 대학 확장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대학의 기업화와, 돈을 따라가는 대학, 그리고 학생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권위주의가 정점에 모여 있는 하나의 결과물입니다.


 학생들은 지난해 10월 10일, ‘전체학생총회’를 열었습니다. 학생사회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로, 서울대학교 학생 10분의 1이 광장에 모이면 성립되는 기구입니다. 2000여명이 넘는 학생이 모여 총회가 성사되었고, 학생들은 직접 투표를 통해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전면 철회”를 학교 측에 요구했습니다.


 같은 회의에서, 학생들은 이 요구안의 관철을 위한 투쟁 방안 역시 채택했습니다. 본부의 점거였습니다. 학생들은 그 즉시 본부를 점거했고, 지난 3월 11일까지 농성을 계속했습니다.


 (시흥캠퍼스에 대한 더욱 자세한 이야기는, 이 블로그의 <우리, 아직 여기에 있습니다>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그 사이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점거한 총장실에서는, 시흥캠퍼스를 반대하는 학생들을 사찰하는 문건이 발견됐습니다. 성낙인 총장은 이 사실을 부인하다가, 문건을 보여주자 그제야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학교가 다시 한 번 약속을 파기하려 한 정황 역시 밝혀졌습니다. 본부에서 밝혀진 메모에 따르면, 학교 측은 학생들과의 약속을 파기하고 RC를 강제 추진하려 논의한 바가 있었습니다. 학교 측은 “논의조차 하지 못하느냐”고 반발했지만, 학생들과의 약속 파기가 ‘논의의 대상’이 되는 상황 자체가 부적절합니다.


 성낙인 총장의 부정임명 논란도 일었습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핵심 증거 중 하나였던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메모에서 “서울대학교 총장 逆任(역임)”이라는 글자가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성낙인 총장은 임명 당시, 총장추천위원회가 추천한 후보 중 2위 후보였습니다. 그러나 이사회는 1위 후보를 제치고 성낙인 총장을 선택했죠. 여기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정황입니다. 서울대학교 이사회에는 기획재정부 2차관과 교육부 차관이 당연직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성낙인 총장 측은 해당 메모가 ‘逆任(역임)’이 아니라 ‘選任(선임)’이라고 주장했지만,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서울대학교는 이미 법인화되었기에, 청와대 측은 서울대학교의 총장 선임 논의에 개입할 권한이 전혀 없습니다. 특히 성낙인 총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사장이던 시절 영남대학교에 근무했다는 점, 1위 후보가 현재 야당 의원이 되어 있는 오세정 교수였다는 점은 이 의혹을 증폭시킵니다.


 시흥캠퍼스에서 각종 수익사업을 벌이려고 했다는 의혹 역시 있었습니다. 교육 계획은 제대로 세워놓지 못한 학교가, 호텔, 키즈카페, 고소득 노인 대상 실버타운 등 각종 수익사업을 캠퍼스에서 벌이려 했다는 문건이 공개된 것입니다. 시흥캠퍼스가 돈을 위해 만들어진 캠퍼스라는 증거가 나온 셈입니다.


 그 사이 서울대학교는 비학생조교 33명을 일시 해고 조치하기도 했습니다.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 직원을 정규직화하지 않아 논란이 되었다가 정규직화를 약속했지만, 이 교섭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2월 28일자의 계약 만료 기간을 넘겨버린 것이죠.


 비학생조교들은 임시계약을 요구했지만 거부당했고, 교섭 완료시까지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재직 사실이 인정되지 않아 어린이집 이용 등에 불편을 겪고 있습니다. 결국 비학생조교들은 점거된 본부 대신 사용하고 있던 우정관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기도 했죠. 기업이 되어가고 있는 서울대학교의 단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주장하는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철회가 비현실적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법적인 구속력이 있는 실시협약이 체결되기 전부터 서울대학교의 입주를 기정사실화해 투기 붐을 일으킨 것은 건설사였습니다. 실시협약 파기시, 배상의 책임은 학교보다는 건설사에 있습니다.





 결국 학생들은 농성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학교 측은 학생 29명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고, 본부에 출입하는 것만으로도 징계 사유가 될 수 있다는 경고문을 캠퍼스 곳곳에 배치했습니다. 학교는 학생들이 점거하고 있는 본부의 전기와 수도, 난방을 끊었습니다.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교육에서 본부 점거가 위험하다고 주장했으며, 학생사회의 ‘새내기새로배움터 (새터)’ 사업을 탄압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3월 11일, 직원들의 폭력적인 본부 침탈이 시작되었습니다. 새벽같이 본부를 찾아온 직원들은 1층과 4층에는 출입하지 않겠다고 주장했지만, 학생들이 이를 믿을 수 없다는 의사를 표하자 1층으로 무력 진입했습니다. 문을 지키기 위해 설치한 쇠사슬을 그라인더를 통해 자르고 침입했습니다. 학생들이 손으로 막고 있는 문에 아무런 거리낌없이 그라인더를 대는 그들이었습니다. 직원들에게선 술냄새가 진하게 났습니다.


 학교 직원들과 청원경찰은 폭력적으로 학생들을 쫓아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학생들이 다쳤고, 두 명의 학생은 기절해 구급차를 통해 병원에 후송됐습니다. 4층에 고립된 12명을 제외하고, 모든 학생들이 본부에서 쫓겨났습니다. 4층에 있는 학생들에 대한 식료품 전달조차 허락되지 않아 학내언론 기자들이 나서 식료품을 전달해주어야 했습니다. 12명 학생들은 사실상 감금됐습니다.


 이후 학생들이 반발하자, 학교 측은 소화전을 이용해 학생들에게 물대포를 직사 살수했습니다. 명백한 불법 행위입니다. 학교 측은 학생들이 사용한 소화기의 분말을 정리하기 위해 청소를 하다 벌어진 일이라고 주장했지만, 직원들은 학생들이 물대포를 맞고 있다는 것을 보면서도 ‘청소’를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상황으로 봤을 때 설득력이 없는 주장입니다.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학생들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소화전을 이용한 것은 명백한 폭력 행위이며, 애초에 소방법을 위반한 행위입니다.


 그 사이, 서울대학교 학내 언론인 <대학신문>은 3월 13일자 1면을 백지로 발행했습니다. 학교 측이 학생기자의 편집권을 침해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학교 측은 <대학신문>에 본부점거 관련 기사를 줄이고, 개교 70주년 관련 기사를 늘리라고 압력을 행사했습니다. 이 의혹을 뒷받침하는 학교 간부의 메모는 본부점거본부 측에서 공개했습니다.


 학생들은 4월 4일, 다시 한 번의 학생총회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현재 학생사회는 성낙인 총장의 사퇴와 책임자 처벌,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철회를 주장하며 천막농성과 학내 집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돈을 쫓아 기업화되는 대학, 사라져가는 민주주의, 권력의 인사개입, 언론에 대한 탄압, 물대포. 작금의 서울대학교 사태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하나의 축소판입니다. 그리고 시흥캠퍼스는 아마, 이 현실을 그대로 농축한 시대의 상징이 될 것입니다.


 성낙인 총장은 지난 3월 2일, 졸업식에서 “남의 의견을 경청할 줄 모르는 리더는 모든 이를 불행하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김기춘, 우병우, 이재용, 조윤선 등이 서울대학교 출신이라는 점을 고려한 자성의 목소리로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들만큼이나 부끄러운, ‘모든 이를 불행하게 하는 리더’가 있습니다. 성낙인 총장 본인입니다.


 서울대학교의 학생들은, 이제 더 이상 이 부끄러운 시대의 표상이 되길 원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이 치졸한 시대의 상징으로 남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부끄러운 리더, 대학 기업화와 권위주의의 선봉에 서 있는 성낙인 총장의 사퇴에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광장에서 본부로, 본부에서 다시 광장으로. 징계 협박에도, 물대포에도, 폭력에도, 우리가 다시 일어설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기업화와 권위주의를, 최전선에서 몸으로 막아내야 하는 이유입니다.


 시대가 승리를 자축하던 밤을 지나, 서울대학교는 다시 아침을 맞았습니다. 서울대학교의 봄은 다시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더 많은 승리가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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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선달 2017.03.29 23:32 신고

    그래 일찌감치 서울대는
    시흥에다 2천억 계약파기금 물어주고
    시흥이 다른계획 세우도록해라
    서울대가 뭐 별거라고

    7~8년전 서울대생들이 시흥까지 와보고
    찬성했던것을 지금의 후배들이 농성으로 반대하니

    차후에 후배들이 누구탓 하거든 지금의
    학생들을 탓 하리니...
    기회는 항상 주어지는것이 아님

  2. 김선달 2017.03.29 23:41 신고

    어서빨리 서울대는 시흥시에 계약파기금
    2천억 물어주고 끝내라

    7~8년전에 서울대생들이 찬성한 일들을
    후배들이 반대하니 꼴 좋다

    또한 이후 후배들이 시흥캠퍼스를 아쉬워
    하거든 2017년 선배들 탓 하거라

    모든 기사를 학생들 대변으로만 기사화했구만
    스승에게 소화기 뿌려가며
    잘못한 일들은 다 덮어두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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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진보

우리가 받은 것, 우리가 남겨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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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이 파면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7년 3월 10일, 11시 21분부로 대통령직에서 내려오게 되었으며, 경호 예산을 제외한 모든 전직 대통령 예우를 박탈당했다. 1948년 이 땅에 주권과 영토를 가진 정부가 들어선 뒤 처음 있는 일이었다.





 탄핵 선고는 허무할 정도로 빨랐다. 초반의 파면사유 부정으로 몇 차례나 가슴이 철렁했지만, 그것은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선고가 시작된 것은 11시 정각, 그리고 낭독문을 모두 읽고 대통령의 권한이 박탈된 시각은 11시 21분. 짧은 시간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대통령은 파면되어 사라졌다.


 그것은 참 묘한 일이었다.


 대한민국은 이미 몇 차례 대통령을 쫓아낸 일이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혁명에 의해 쫓겨났으며, 박정희 대통령은 측근에 의해 암살당했다. 전두환 대통령과 노태우 대통령은 그 임기는 채웠지만 결국 형사처벌을 받았고, 전직 대통령 예우를 모두 박탈당했다.


 그러나 그들 전직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례는 판이했다. 이승만 대통령을 쫓아낸 것은 혁명이었다. 그 혁명은 일주일 동안 지속되었으며, 그 사이 200명 가까운 사망자를 냈다. 박정희 대통령을 쫓아낸 것은 암살이었다. 그 도화선이 된 부마항쟁에서는 1000명 넘는 체포자와 125명의 구금자가 발생했다.


 이승만의 독재는 발췌개헌과 사사오입 개헌을 거쳐 12년을 지속했다. 박정희의 독재는 삼선개헌과 유신을 거쳐 16년 동안 계속되었다. 전두환의 독재는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속됐다.


 긴 시간이었다. 폭력과 야만이 난무하며 민주화의 요구를 억압했다. 그리고 수많은 이들의 용기와 결단, 그리고 희생만이 이 야만의 세월을 막아세울 수 있었다. ‘민주주의’라는 말에는 피의 냄새가 짙게 서려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19차에 걸쳐 1400만의 시민이 운집한 촛불집회에서는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평화의 힘은 폭력보다 강했다. 국회는 234표이라는 압도적인 숫자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헌법재판소는 단 한 명의 이견도 없이, 8명 전원의 판결로 대통령을 파면했다.


 이것은 우리 진보의 증거다.


 4.19 이후 57년의 시간이 지났다. 10.26 이후 38년의 시간이 지났다. 6.10 이후 30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차근차근 진보했다. 더 나은 헌법을 만들었고, 더 구체적인 법률을 만들었으며, 더 민주적인 사회 분위기를 만들었다. 더 나은 선거를 했으며, 더 나은 제도권 정치를 만들어냈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점점 성장하며, 민주주의의 영역을 착실히 확대해 나갔다.


 그리고 그렇게 성장한 2017년의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혁명도, 암살도, 누군가의 희생도 필요없었다. 누군가의 중대한 용기 역시 필요치 않았다. 작은 사람들의 작은 용기로 충분했다. 우리는 총이 아니라 법전의 힘으로 대통령을 파면했다. 폭력이 아니라 제도의 힘으로 대통령을 쫓아냈다.





 폭력은 불행한 일이다. 사회적 약자가, 다른 수단 없이 극단에 몰렸을 때 벌이는 폭력은 때로 정의로운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폭력은 불행한 일이다. 그래서 인류는 폭력 없이 사회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시스템을 끝없이 갈망해 왔다. 그리고 지금 세계의 존재하는 국가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량만큼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 냈다.


 수십년 전 우리는, 정의를 위한 최소한의 폭력을 필요로 했다. 그것 없이는 우리의 목소리를 전할 방법이 없었다. 사회의 핵심적 가치들은 극단에 몰려 있었으며,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국민 몇백만이 모이든, 그건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우리는 극단에 몰렸지만, 우리에게는 평화적으로 이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이 존재했다. 국회가 있었고, 공정한 선거를 통해 선출된 이 대의민주주의 기구는 국민의 뜻을 충실하게 반영했다. 탄핵안은 가결되었다. 헌법재판소가 있었고, 3권의 조합을 통해 만들어진 이 기관 역시 헌법과 법률에 따라 공정한 판결을 내렸다. 대통령은 파면되었다.


 이 거대한 권력의 비리를 무너뜨리는데, 누구의 피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누구의 희생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을 보장받았다. 그리고 그 신성하고 강력한 광장에, 어떤 종류의 국가폭력도 쉽게 발을 붙이지 못했다.





 우리는 불행한 사태 없이 승리했다. 이것은 우리가 얼마나 많이 진보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우리는 폭력 없이, 누군가의 희생 없이, 강자를 심판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우리의 혁명은 이만큼이나 진보했다. 대단히 문명적인 방식으로 권력을 바꾸고, 그 권력자를 심판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냈다. 피를 흘리지 않는 혁명. 이것이 우리가 민주화 역사 전반에 걸쳐 만들어낸 성취였다. 사회는 진보했고, 딱 그만큼 혁명의 방식 역시 진보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함으로써 헌법을 수호하고 손상된 헌법질서를 다시 회복하기 위하여 탄핵소추안을 발의한다.” 국회가 발의안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마지막 문장이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헌법재판소 판결문의 주문이었다.


 국민의당 김관영 의원이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을 낭독했다. 대통령을 파면해서 헌법질서를 회복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정미 헌법재판소 소장대행이 판결문을 낭독했다. 대통령을 파면하겠다고 선언했다.


 그것은 김관영 의원과 이정미 재판관의 입을 통해서 선언된 말이었지만, 기실 그것은 그들을 통해서 선언된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광장에 모였던 수많은 국민이 한 목소리로 만들어 낸 선언이었고, 민주화의 역사 전체가 만들어 낸 성취였다. 그리고 그 선언만으로, 대통령은 파면당했다. 누구의 피도 필요하지 않았다. 필요한 것은, 그 무거운 재판정의 망치가 전부였다.


 피를 흘리지 않은 혁명. 그것은 역사 속 선배들이 우리를 위해, 그들의 피를 희생해 만든 영광스런 진보의 결과물이었다.





 우리의 진보한 혁명으로, 별다른 혼란 없이 대통령은 파면당했다. 국민이 선언한 국민의 승리였다.


 우리 앞에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어쩌면 더 어려운 싸움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승리해야 한다. 이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당위의 문제다.


 우리가 나아간 만큼, 시대가 다음 세대에게 요구하는 희생은 줄어든다. 우리는 우리의 후배에게 더 진보한 사회를, 더 진보한 혁명이 가능한 사회를 넘겨줘야 한다. 진보를 물려받은 우리는, 다시 한 번의 진보를 우리의 뒷 세대에게 물려줘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의무다.


 그렇기에 오늘을 즐기자. 이 승리에 마음껏 감격하자. 그리고 그 힘으로, 다시 다음 승리를 향해 나아가자.


 결국, 우리가 이긴다.




 덧1. 박근혜 전 대통령께서 오늘 밤, 청와대 관저를 떠나지 않고 그냥 머무르신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로써 청와대 관저에서 묵은 최초의 민간인이 되었다. 하루 정도는 괜찮다. 그러나 그 마지막 밤을 보내며, 부디 깊이 생각해보기 바란다. 내일 그곳을 나가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왜 그렇게 되어버렸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불편한 밤이 되길 바란다.




 덧2. 탄핵 반대 집회 현장에서 두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모두 집회 참가자로 추정된다. 이외에도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이외에도 기자나 일반 시민에 대한 폭행이 발생했다. 그러나 이것을 진정시키려는 정치인 하나 없다. 그들에게 위로를 보낸다. 오늘만은 당신들이 패자다. 승자로서 우리는, 그들에게 관용을 베풀 의무가 있다. 조금은 과격해져도 좋다. 일반인에 대한 폭력과 같은, 최소한의 선만 넘지 말았으면 한다. 열심히 싸우시고, 열심히 무력감을 느끼시길 바란다. 민주주의의 시민으로서 성장하기에 아주 좋은 경험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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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3.10 23:56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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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은 반복된다

다시, 또, 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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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을 기억하는가. 그 한 해에 벌어졌던 그 많은 일들을 기억하는가. 그것이 다른 한 해와 같은 길이였다는 것을 믿을 수 있는가. 주변에선 “2016년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말하면 놀라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대표적인 이야기가 있다. 영남권 신공항 논의가 그렇다. 부산 가덕도와 경남 밀양이 영남권 신공항 유치를 두고 경쟁하다, 김해공항의 확장이라는 다소 허무한 결론이 나온 것이 2016년이었다. 지난해 6월의 일이니, 이제 막 8개월 정도 지난 셈이다.




 영남권 신공항은, 그 논의 자체가 이 사회의 비극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처음 영남권 신공항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참여정부 때였다. 정부 내에서 논의가 있었으나 적절한 입지를 찾지 못해 백지화되었다. 다만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새로운 공항을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2007년 대통령선거, 이명박 후보는 영남권 신공항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명박 정부가 탄생하고 신공항 착공이 가시화되자, 영남권 내에서 여론이 갈리기 시작했다. 밀양과 가덕도. TK와 PK가 갈등하는 상황에서, 영남에 지역기반을 둔 이 대통령은 어느 한 쪽도 선택하지 못했다. 신공항은 자리를 찾지 못했고, 시간만이 흘렀다. 그 사이 김해국제공항의 포화는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2011년 3월 30일에야 최종 입지 평가 결과가 발표되었다. 밀양 39.9점, 가덕도 38.3점. 밀양이 근소한 차이로 승리했으나, 두 지역 모두 50점이라는 절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서 영남권 신공항 논의는 백지화됐다. 두 번째 백지화였다. 신공항은 2025년 이후의 장기 논의로 미뤄졌다.


 각 지자체는 반발했다. 부산시는 단독으로라도 공항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그 사이 밀양시장은 영남권 신공항을 반대하는 주민을 폭행하기까지 했다. 절망은 그 기대만큼이나 뜨거웠다. 대통령이 탈당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입지 조사에 부정이 있었다는 주장도 흘러나왔다.


 1년 뒤 2012년 대통령선거, 영남권 신공항은 다시 후보들의 공약이 되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입지를 특정하지 않은 채 영남권 신공항을 약속했고,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가덕도에 신공항을 짓겠다고 명시적으로 밝혔다.


 이미 두 차례가 공항 입지로서 부적절하다고 판단된 두 곳이었다. 그러나 이 두 땅은 다시 한 번 정치의 전면에 등장했다. 지역감정은 표를 얻기 위한 아주 쉬운 선택지다.


 결국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었다. 2013년 8월, 국토부의 수요조사가 시작되었다. 조사는 1년 동안 이어졌다. 1년만에 나온 수요조사의 결과는 단순했다. “새로운 공항이 필요하다.” 영남권 신공항의 착공 가능성이 다시 높아졌다. 지역감정은 다시 쌓이기 시작했고, 종종 폭발했다.


 2016년 6월 21일, 2년 만에 입지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가덕도와 밀양 모두가 다시 한 번 백지화됐다. 세 번째 백지화였다. 정부는 김해공항을 확장하겠다고 밝혔다. 표 논리에 의해 끌려나온 신공항은, 그 지저분한 지역감정과 함께 다시 한 번 버려졌다.


 지역감정이라는 ‘쉬운’ 수단은 선거 때마다 끌려나왔고, 선거가 끝나면 버려졌다. 그 지리한 논란 속에서 ‘지방’은 표와 함께 때로 구원되었고, 때로 버려졌다. 그 사이 김해공항의 수요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고 있었다. 지역감정과 함께 표는 이곳저곳을 오갔고, 정작 필요했던 공항은 어느새 사라져 유령처럼 세간을 떠돌았다.





 어쨌든 김해공항 확장안이라는 대안은 나왔다. 이것이 그 지리한 논란의 결말이었다. 합리적인 수준의 결정이었다. 우리 사회는 하나의 결론을 도출했고, 그 결론에 따라 공항을 확장해 편의를 도모하면 될 일이다. 비극은 여기서 끝났어야 했다.


 그러나 상황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신공항과 지역감정이라는 이 ‘쉬운’ 수단은, 다시 한 번 끌려나올 기미를 보이고 있다. 비극의 불씨가 살아나고 있다.


 정부의 목표에 따르면, 김해공항은 2026년 그 확장을 완료한다. 연간 3800만명 정도가 이용할 수 있는 규모다. 활주로는 기존의 활주로와 다른 방향으로 3200m 규모로 한 개가 늘어난다. 이것이 정부가 지난 6월 21일 발표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후 정부가 내놓은 예비타당성조사의 결과는 달랐다. 정부는 예비타당성조사 보고서에서, 김해공항의 확장 규모를 기존에 발표한 3800만명 선에서 1000만명 이상이 줄어든 2500~2800만명으로 잡았다. 보고서는 매년 승객이 4.7%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당장 현재만 해도 매년 7.7%의 승객이 증가하고 있다.


 1000만 명의 이용객이 사라졌다. 당연히 확장되는 시설의 규모가 달라진다. 예상되는 비행기 이륙량도 줄어든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소음에 따른 주변 주민 이주 비용 역시 줄어든다. 대형기를 띄울 필요성도 부정된다. 그렇다면 부산시 측에서 요구한 활주로의 연장 안도 무산된다는 의미다. 이용객의 축소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여기, 재미있는 발언이 하나 있다. 6월 21일 김해공항 확장안이 발표된 뒤, 박근혜 대통령은 “김해공항 확장이 사실상의 신공항”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20일 정도 지난 7월 11일,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대구국제공항의 이전 사업을 속행하라고 주문했다.


 대구국제공항의 이전은 과거부터 논의된 사안이었지만, 영남권 신공항 논의로 사업이 일시 중지된 상황이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이 발언을 기점으로 논의가 재개되었고, 현재 경북 군위군과 의성군이 후보지로 결정되어 예비타당성조사를 진행중에 있다.


 정부는 2023년까지 대구국제공항 이전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김해국제공항 확장 사업보다 3년 이르다. 투입되는 예산은 7조 2465억원. 김해국제공항 확장에는 4억 원 정도의 예산이 투입된다. 활주로는 3500m 규모로 두 개의 신설이 예측된다. 김해국제공항의 3200m보다 더 큰 규모다.




 물론 두 지역을 단순히 비교할 수는 없다. 김해국제공항은 원래 있던 공항을 확장하는 것이고, 대구국제공항은 새로 공항을 짓는 것이다. 대구국제공항은 군 공항 시설도 함께 이전한다. 예산이 더 들 수밖에 없다. 전체 예산 중에서 민간 공항이 사용하는 양은 대단히 적다. 2023년 개항 역시 예측일 뿐이며, 3500m 규모의 활주로 역시 대구시 측의 요구다. 국방부는 아직 규모를 결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는 없다. 대구국제공항 이전은 김해국제공항 확장보다 이르게 완료될 것이다. 대구국제공항은 현재보다 두 배의 규모로, 확장된 김해국제공항보다 일찍 개장한다. 수요가 대구로 흡수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부의 누구도 ‘사실상 신공항’이라는 김해국제공항의 수요난을 염려하지 않는다.


 김해국제공항은 확장 사업을 이유로, 1년에 330일 동안 만차로 주차난을 겪고 있는 주차장의 확장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확장안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10년 뒤 완성될 확장안은, 아직 삽 한 번 뜨지 못한 채 오히려 김해국제공항의 편의를 막아세우고 있다. 9개월만에 처음 열린 소음대책협의회에는 국토부와 공항공사 측 인사가 단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반면 대구국제공항의 확장 사업은 속도를 내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대통령의 발언이 있고 한 달만에 국방부는 이전 사업을 확정했다. 이미 입지 선정은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군위군은 공항을 유치해야 한다는 결의문까지 채택했다.




 결국 공항을 기반으로 한 지역갈등은 다시 한 번 피어오르고 있다.


 부산 신공항추진범시민운동본부는 정부가 김해국제공항 확장을 “리모델링 수준으로 사업을 축소”하려고 한다며, 이를 정부의 “배신행위”라고 규탄하고 나섰다. 가덕도 신공항을 다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반면 대구시는 3500m 규모의 활주로 건설을 기반으로 유럽-북미 노선의 대구국제공항 취항을 주장하고 있다. 부산의 가덕도 신공항 재추진 논리에 대항해, 밀양 신공항의 재추진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정치인들 역시 가세했다. 홍준표 경상남도지사는 김해공항 새 활주로가 3800m 이상이 되지 않는다면, 신공항 사업 자체를 백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병수 부산시장 역시 유일호 경제부총리를 만나 대구공항 이전과 김해공항 확장 사업 축소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했다.





 TK와 PK의 지역갈등을 정점으로 이끌고 갔던 영남권 신공항 사업이었다. 10년 넘는 시간 동안 논의는 세 번 등장해 세 번 백지화됐다. 김헤공항의 확장은 이 논란의 종점을 찍어주는 듯했다.


 하지만 결론이 나오고 20일만에 대통령은 대구공항 이전의 속행을 주문했다. 지지부진하다가 결국 일시 중단되어 있던 논의는 이 발언을 기점으로 속도를 냈고, 이렇게 만들어진 대구공항 이전 사업은 결국 다시 한 번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참여정부 당시 백지화된 영남권 신공항 사업은 2007년 대통령 후보의 공약이 되었다. 이명박정부에 이르러 다시 백지화된 영남권 신공항 사업은, 2012년 다시 대통령 후보의 공약이 되었다. 그리고 박근혜정부, 영남권 신공항 사업은 다시 백지화되었고, 이제 또 한 번의 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대통령은 씨앗을 뿌렸다. 빠르게 추진되는 대구공항 이전 사업. 그리고 축소되는 김해공항 확장 사업. 그들이 이 씨앗에 물을 주고 갈등을 키워냈다. 그 갈등은 지금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그 갈등은 곧 열매를 맺을 것이다. 지역감정이라는 치졸한 씨앗을 가진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열매는 누구의 몫이 될 것인가. 2007년에 그랬듯, 2012년에 그랬듯, 다시 한 번 ‘그들’이 그 열매를 가져갈 것이다. 그리고 표를 얻어갈 것이다. 김해공항 확장이라는, 이 논쟁을 종결시킨 나름 합리적인 결정을 뒤엎을 것이다. 이미 갈등은 자라나고 있다. 지역이기주의는 다시 노름판의 판돈이 되어 이곳저곳을 망령처럼 떠돌 것이다.


 다시 공항이다. 여기, 비극은, 반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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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의 원칙

더 나은 상상력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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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의 선거, 의외의 후보, 의외의 발언

 의외성의 연속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뒤에 국민이 선출하지 않은 권력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고, 집무가 정지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온전하게 임기를 마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12월에 예상된 대선은 5월까지는 당겨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단순히 선거의 일정 뿐만이 아니다. 새누리당의 최대 대권 후보였던 김무성 의원은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여권의 잠룡으로 급부상했던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은 귀국 후 채 한 달이 되지 않아 출마를 포기했다. 여당은 둘로 갈라졌고, 대통령의 지지율은 폭락했으며,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보수정당의 지지율을 압도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의외의 선거에, 의외의 주자 한 명이 더 등장했다. 어느새 문재인 전 대표에 이어 대권후보 지지율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안희정 충청남도지사가 그렇다. 이제까지 별다른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 안 지사였지만, 대선이 다가오면서 적극적으로 입지를 넓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 의외의 대선에 출마하겠다는 의외의 후보는, 의외의 발언을 쏟아내며 야권 지지자들의 관심 또는 비판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가 했던 대표적인 돌출 발언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박근혜 정권의 적폐는 이미 청산되었다.” (170122, 대선 출정식)


 “(이재용 구속영장 기각에 대해)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 (170119, YTN)


 “반값등록금 약속할 수 없다.” (170203, 허핑턴포스트)


 “개혁 과제에 합의한다면 새누리당과도 연정 꾸릴 수 있다.” (170205, CBS)




원칙주의자 안희정

 민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동의할 수 없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이제까지 민주당 소속의 정치인에게 들어보지 못한 말이다. 그렇기에 돌출 발언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이재명 시장이 그를 향해 말했던 “중도 포퓰리즘”이라는 말도 설득력있게 들린다.


 하지만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자. 안희정의 발언은 돌출 발언이었을까? 중도로 표심을 확장하기 위한 포퓰리즘에 불과했을까? 반대로, 안희정 지사가 원래 그런 사람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단순히 우리가 지금 안희정 지사를 발견했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게 느끼는 것은 아닐까?


 사실, 안희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원칙주의자다. 본인도 ‘원칙’이 스스로가 정치를 하는 이유라고 말한다. 측근들 역시 ‘원칙’은 그를 대표하는 특징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의 행보를 봐도 그렇다. 스스로가 정한 원칙에서 잘 벗어나지 않는다.


 선거판에 들어오면 이제까지의 원칙을 버리고 바뀌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안희정 지사는 그렇지는 않다. 다른 민주당 대권주자와 다르게 말하는 그의 방식을, 선거에 들어와 표를 얻기 위해 변한 ‘포퓰리즘’으로 치부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사실, 이런 발언들은 그가 이제까지 생각해왔던 원칙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원칙은 단순하다. 민주주의다. 그런데 다른 대권주자의 생각과는 조금 다른 형태의 민주주의다. 그의 민주주의는 보다 넓다. 이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이 포함되는 민주주의다. 보다 넓고, 그래서 더 보수적인 형태의 민주주의다.


 그에게 누가 얼마나 큰 목소리를 내는지, 지금의 대중이 당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중요치 않다. 그는 ‘목소리를 내지 않는 사람’의 목소리를 중시한다. 그의 민주주의에는 촛불집회에 참석해 대통령을 탄핵시킨 시민들도 있지만, 마지막까지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던 4%의 시민들도 들어가 있다.


 그는 성소수자에 대한 평등을 가장 적극적으로 말하는 정치인이지만, 한 편으로는 새누리당과 연립정부를 구상할 수 있는 정치인이다. 그는 더 넓은 스펙트럼의 민주주의를 원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 넓은 범위의, 그 모든 사람들이 합의할 수 있는 아주 기본적인 핵심 원칙만을 고수하는 사람이다. 어쩌면, 그 누구보다 원칙적인 보수 정치인이다.




어쩔 수 없는 원칙

 문제가 됐던 발언들도 마찬가지다. 그에게 이 발언들은 전혀 ‘돌출 발언’이 아니다. 그는 의외의 후보였지만, 그의 정치 철학에서 의외성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는 가장 원칙주의적인 후보다.


 “박근혜 정권의 적폐는 이미 청산되었다”는 발언부터 보자.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은 가결되었고, 높은 확률로 탄핵의 인용이 예상된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완전히 밝혀졌다고 할 순 없지만, 특검에 의해 강도 높은 수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김기춘과 조윤선을 비롯한 이번 정권의 각종 부역자들이 이미 구속된 상황이다.


 물론 아직 부족하다. 여전히 처벌받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어쨌든 대통령의 탄핵은 아직 인용되지 않았다. 정유라는 송환되지 않았고, 최순실은 무죄를 주장하고 있으며, 우병우는 아직 소환조사 한 번 받지 않았다.


 하지만 안희정 지사가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안희정 지사는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건이 범죄라는 것에 대해 명확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특검법은 제정되어 특별검사의 활동이 진행되고 있으며, 특별검사의 기소에 따라 사법부는 판단을 내릴 것이다. 탄핵소추안의 인용 여부 역시 이제 사법부의 몫이다. 그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손대선 안 되는 부분이다. 그는 그 어쩔 수 없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의 발언이 진보적 유권자의 감정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인정한다. 그러나 그의 발언이 ‘틀린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법률에 의해 규정된 특별검사의 활동과, 헌법에 의해 규정된 사법부의 활동에 정치인이 압력을 가할 순 없다. 그게 도지사든, 국회의원이든, 대통령이든 마찬가지다. 아주 원칙적이고 기본적인 민주주의 사회의 운영 원리다.


 법률에 의해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한, 정치권이 직접 나서서 청산할 수 있는 적폐는 없다. 안희정 지사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손댈 수 있는, ‘정치적 적폐’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그것은 광장에 나온 시민이 청산시켰다. 바닥을 기는 대통령과 집권여당의 지지율이 그것을 증명한다. 남은 것은 정치인이 아닌, 법조인이 손대야 하는 적폐다. 다 제하고 원칙만 남기면 그렇다. 안타깝지만 그렇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에 대해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말했던 것도 그렇다. 특별검사가 특정한 이유를 들어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사법부는 이 이유가 충분치 않다고 생각해 기각했다. 만일 이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면, 특검이 다시 증거를 모아 영장을 재청구하면 된다. 역시 우리 사회가 운영되는 아주 원칙적인 방법이다. 법률의 틈에 정치인이 들어갈 자리는 없다.


 “반값 등록금을 약속할 수 없다”는 발언도 그렇다. 그는 복지를 타이타닉 호의 구명보트에 비유했다. 구명보트에는 스스로를 구할 수 있는 능력이 가장 부족한 사람을 태워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능력을 상실한 노령층, 노동능력을 얻지 못한 영유아, 노동능력을 빼앗긴 장애인들이 가장 우선이라고 말했다. 거기에 쓸 재원도 부족하니, 반값등록금을 당장 약속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말이야 바른 말이다. 한정된 재원을 가지고 복지를 해야 한다면, 자기 구제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돈을 사용해야 한다. 안희정 지사가 청년정책을 모두 폐기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등록금을 낮추는 것보다 더 급박한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당장 자구능력이 없어 말 그대로 굶어 죽을지 모르는 사람을 돕는 게 먼저다. 그 원칙은 어쩔 수 없다.


 대연정 발언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적폐를 청산하고 개혁한 정치세력이라면, 그래서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특별한 이견이 없는 정치세력이라면, 얼마든지 연립정부를 꾸릴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통령이 다수당을 차지하지 못했을 때, 정치적 이견이 없는 다른 정당과 연립정부를 꾸려 효율적인 국정운영을 꾀할 수 있다. 역시 당연하고 원칙적인 이야기다. 틀린 말은 아니다.





상상력의 부재

 이것은 가치판단이 아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안희정 지사가 잘 하고 있는지, 못 하고 있는지에 대한 판단과는 별개의 문제다. 단순히, 안희정 지사의 발언은 어디까지나 원칙에 입각한 것이었다는 사실판단의 문제다. 이것이 안희정 지사의 ‘돌출 발언’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의 원칙은 아주 확고하다. 민주주의적 국가 운영원리에 충실하다. 정치인이 개입해서는 안 되는 부분에 대해 입장을 섣불리 표하려 하지 않으며, 정치인의 영역이 아닌 부분을 철저하게 존중한다. 복지 운영의 원칙에 아주 약간의 변칙도 허용하려 하지 않으며, 기본적이고 당연한 정치 운영원리에 입각해 정치를 바라본다.


 사실 이것은 안희정 지사의 대단한 강점이기도 하지만, 치명적인 약점이기도 하다. 그는 원칙에서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는 민주주의 사회가 이룩해낸 역사적 합의를 충실하게 지킨다. 그래서 그는 가장 안정적이고 예측가능한 정치인이다. 그의 원칙은 강력하다.


 하지만 그런 만큼 대중과의 호흡은 부족하다. 원칙이 강한만큼, 상상력은 빈약하다. 지금 당장 역동적으로 올라오는 민중의 목소리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이슈에 대한 대응이 늦다.


 원칙은 정치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그것 없이 운영되는 정치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우리는 이미 두 눈으로 확인했다. 하지만 역동성 역시 민주주의 정치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지금 당장 터져나오는 대중의 목소리를 듣고, 오늘 광장에 모인 국민이 말하는 요구를 수용하는 정치도 필요하다. 유권자로서의 행복은 오히려 거기서 나온다.


 그에게는 역동성이 부족하다. 상상력이 부족하다. 대한민국 최대의 권력이라는 1위 재벌 삼성의 리더가 구속되지 못했을 때, 국민이 느끼는 절망감을 공유하지 못한다. 적폐의 청산이 가로막혔을 때 국민이 느꼈을 절망감을 공유하지 못한다. 원칙은 우리의 감정을 신경쓰지 않는다.


 대한민국 재벌권력의 최정점에 있던 사람이 국가권력의 사적 유용을 이용해 편법으로 재산을 승계받았을 때, 그리고 심지어 그것이 국민연금에 손해를 끼치면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는 박탈감을 느낀다. 정치의 ‘시스템’은 그 박탈감을 신경쓰지 않는다. 그 박탈감을 고려하는 것은, 그 시스템을 운용하는 ‘사람’들이다. 바로 안 지사와 같은 정치인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 그는 원칙 아래에서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의 힘’이 줄 수 있는 위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구명보트가 한정되어 있을 때 먼저 태워야 할 순서가 있다는 것은 옳은 말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 ‘옳은 말’을 뛰어넘는 상상력이 부재한다. 구명보트에 탈 수 있는지 없는지 줄을 세워 조마조마하게 기다려야 하는 불안감을, 그래서 구명보트에 탈 수 있다는 허가를 받지 못하면 타이타닉 호와 함께 침몰해야 한다는 절망감을 이해하지 못한다. 구명보트를 늘릴 수도 있다는 상상력은 발휘하지 못한다.


 개혁에 동의한다면 새누리당과도 연립정부를 꾸릴 수 있다는 것은 ‘원칙’이다.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 새누리당을 쫓아내기 위해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이, 민주당의 대권주자에게 ‘대연정’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느낄 배신감을 그는 상상하지 못한다.


 오늘의 대중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 적극적인 광장의 목소리를 잘 듣지 못한다는 것. 침묵하는 이들을 고려하기 위해 소리치는 이들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것. 원칙이 상상력을 밀어낸다는 것. 민주정의 정치인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더 나은 상상력을 위하여

 원칙이 실종된 사회였다. 법과 제도를 뛰어넘어 국가권력을 사적으로 유용한 정권이 무려 4년동안 이어졌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의 실체는 임기 말에 와서야 밝혀졌다. 출근하지 않는 대통령, 일하지 않는 민정수석, ‘나이가 들어’ 기억력이 떨어진 비서실장, 의견을 내지 못하는 장관, 물대포를 쏘는 경찰. 민주주의의 원칙이 사라진 시대였다.


 그렇기에 이 시대에 원칙은 중요하다. 아니, 모든 시대를 뛰어넘어 원칙은 중요하다. 원칙이 실종되면 제대로 된 정치인일 수 없다. 우리 사회 전체가 합의한 법제라는 테두리를 벗어나는 정치인은 좋은 정치인일 수 없다.


 하지만 그 원칙에 갇혀 있는 정치인도 좋은 정치인일 수 없다. 정치인은 그 합의를 준수해야 하는 사람이지만, 그 합의를 적극적으로 이끌어내는 사람이기도 하다.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정치인은, 단순히 사회를 운영하고 유지하는 주체가 아니다. 그들은 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발전시키는 주체이기도 하다.


 그래서 정치인에겐 상상력도 중요하다.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바뀌어야 할지, 적극적으로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한다. 때로 그것이 본인의 권력을 벗어난 일일지라도 그렇다. 사법부의 판단에 개입하지 않되 의견을 낼 수 있다. 제한된 복지재정을 이유로 줄을 세우지 않고, 재정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새누리당이 개혁 과제에 동의하더라도, 그들에 대해 국민이 가진 적개심을 이해해야 한다. 그것 역시 정치인의 의무다.


 원칙적인 정치인은 국가를 운영하는 데는 효과적이다. 하지만 그것이 국민의 행복을 보장하지 못한다. 정치 주체의 행복은, 나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정치를 바라보는 행복이다. 대중의 목소리를 듣는데 그치지 않고, 대중의 목소리를 듣고 변화하는 정치가 국민을 행복하게 만든다.


 안희정은 원칙적인 정치인이다. 하지만 상상하지 못하는 정치인이다. 원칙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뛰어난 행정가지만,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빈약한 투쟁가다. 세상을 정상으로 돌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지만, 세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대중은 언제나,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에게, 정상적인 국정 운영 이상의 것을 주문한다. 정상적인 국정 운영은 전제다. 대중은 세상을 발전시키고, 사회의 진보를 이끌어낼 정치인을 원한다. 혼란스러울 시대일수록 더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에게 원칙 이상의 것을 바란다. 원칙을 뛰어넘어 변화를 만들어내는 적극적인 정치를 바란다. 대중과 호흡하는 정치를 바란다. 공감하는 정치를 바란다.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정치를 바란다. 더 나은 상상력을 바란다.


  그것이 이 시대 젊은 보수 정치인에게 바라는 점이다. 그리고 나는 그가, 이 바람과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 정도의 역량을 가진 인물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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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우리에겐 무슨 일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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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을 ‘올해’라고 부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매번 한 해는 365일로 똑같지만, 올해는 왜인지 더 길었던 한 해였던 것 같다. 아마 나만의 느낌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럼 한 번 정리해 보자. 이 길었던 한 해를, 우리는 어떤 다사다난한 일들을 겪으며 헤쳐나왔을까. 2016년을 총정리해보자.




1월 1일

 2016년 새해가 밝았다. 우리 중 누구도 이렇게나 다이나믹한 한 해를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전조는 있었다. 2016년은 1월 1일 0시를 기해,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구가 무효화되는 대사건을 겪으며 시작되었다.


 2014년 10월 헌법재판소에서 나온 판결 때문이었다. 헌법재판소는 현재의 선거구별 인구 격차가 지나치게 크니, 새롭게 선거구를 개편해 가장 큰 선거구와 가장 작은 선거구의 인구 비율을 최대 2:1로 조정하라고 판결했다. 헌법재판소는 2015년 12월 31일을 선거구 합의의 마감 기한으로 설정했다.


 이에 따라 선거구 합의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국회는 마감 기한까지 선거구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인구가 많은 도시 지역 지역구를 나누거나 인구가 적은 농어촌 지역구를 통합해야 하는데, 지역구를 나누면 의원정수가 늘어나고 지역구를 합치면 현직 의원이 자기 지역구를 잃어버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1월 1일 0시를 기해 국회의원 선거구는 무효화됐다. 다가오는 20대 총선 예비후보들의 선거운동이 모두 불법화되었다. 이 합의는 결국 2월 23일에 가서야 이루어진다. 지역구 의석은 253석으로 늘어난 대신 비례대표 의석은 47석으로 줄어 의원정수 300석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합의가 됐다.


 이 기간 동안 선거관리위원회의 조치로 예비후보의 선거운동 자체는 가능해졌으나, 지역구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선거운동을 해야 하는 정치인들, 특히 이름을 많이 알려야 하는 신인 정치인들의 고충이 있었다.


 


2월 2일

 국민의당이 창당했다. 뭔가 아주 오래도록 우리 곁에 있었던 정당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2015년 12월 13일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안철수 의원이 주축이 되어 올 2월 2일에 만들어진 정당이다.


 안철수 의원을 비롯해 김한길 의원 등의 새정치민주연합 탈당파와, 천정배 의원을 중심으로 한 ‘국민회의’ 계열에 정동영, 박주선, 주승용, 박지원 등의 호남 거물 정치인들까지 합세하며 나름 원내교섭단체까지 꾸린 정당을 만들었다.


 안철수-천정배 공동지도체제로 출범한 이 정당은 이 포지션대로 4.13 총선을 치뤘다. 이후 홍보위원장 리베이트 사건에 책임을 지고 두 대표가 물러났고, 6월 29일부로 박지원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출범했다.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린지 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전당대회를 통한 공식 당대표를 선출하지 못했다.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2월 5일부터 김동철 의원이 맡고 있다.





2월 10일

 개성공단 가동이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중단되었다.


 사건은 올 2월 2일, 북한이 광명성 4호 로켓을 발사하면서 시작되었다. 한국 정부는 이것을 북한의 도발로 규정했고, 며칠 뒤인 2월 10일 협의 없이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개성공단을 통해 유입된 자금이 북한의 핵무장에 이용되었다는 것을 그 이유로 들었다.


 다른 문제를 떠나, 이는 중대한 재산권 침해 행위에 해당한다. 실제로 대한민국 정부의 이 조치로 인해 개성공단 입주 업체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지난 5월 20일 개성공단 가동중단 100일을 맞아 개성공단기업협회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남측 기업은 100일동안 최소 8152억 원의 손해를 입었다. 입주기업에 속한 노동자 중 80%가 직장을 잃고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개성공단을 비롯한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중단하기 위해선 통일부 장관이 반드시 청문을 실시하여야 한다. 이마저도 즉시 중지시키는 것이 아니라, 6개월 이내의 기간을 정해 서서히 중단시켜야 한다. 하지만 개성공단 중단은 이 법률에 따른 절차를 위배했다. 명백한 불법행위였다.


 개성공단에 투자된 돈이 북한의 핵개발 자금으로 흘러들어갔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신빙성이 부족하다. 당시 현안보고에서 정세균 의원의 증거 제시 요구에, 홍용표 장관은 “그에 대한 우려가 있다는 것”이라며 “자금이 들어간 증거 자료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와전된 것”이라고 밝혔다. 아무런 근거가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판단에 따라 개성공단 가동은 중지되었으며, 북한은 개성공단 자금을 모두 동결한 상황이다. 이미 자산을 청산하겠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의 증언에 따르면, 이 조치 역시 최순실 씨의 불법적 국정개입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알려졌다. 어쩌면, 우리는 아주 기나긴 복선을 보고 있었던 셈이다.




2월 23일

 정의화 국회의장이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안을 직권상정했다. 현행 국회법상 직권상정은 여야 교섭단체 사이에 합의가 있거나,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만 가능하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이병호 국정원장을 통해 당시 상황이 국가비상사태라고 판단,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했다. 해당 내용이 무엇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결국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108명이 테러방지법의 표결 저지를 위한 필리버스터, 무제한토론을 신청했다. 1964년 신민당 김대중 의원이 김준연 의원의 구속 동의안 표결을 저지하기 위해 진행했던 필리버스터 이후,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52년만에 벌어진 필리버스터였다.


 당시 김대중 의원이 세웠던 5시간 19분의 기록은 첫 타자였던 김광진 의원이 5시간 33분이라는 기록으로 깨고 출발했다. 다음으로는 국민의당 문병호 의원이 올라왔고, 그 다음으로 은수미 의원이 올라와 10시간 18분을 발언하면서 역대 최장 기록을 세웠다.


 다음으로는 필리버스터가 새누리당의 공약사항이었음을 지적해 새누리당의 홈페이지를 마비시킨 신경민 의원, 공천에 탈락했는데도 불구하고 올라와 5시간 4분의 연설을 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 강기정 의원, 5시간 17분의 연설을 마치고 내려와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서기호 의원, SNS 여론을 많이 전달한 김용익 의원, 박정희 시대의 노동정책에 항의하다 분신한 전태일 열사의 동생인 전순옥 의원, 11시간 39분을 발언하면서 다시 최장 기록을 세운 정청래 의원 등이 기억에 남는다.


 이후 필리버스터는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의 ‘전략적 판단’에 의해 종료되었다. 필리버스터 종료를 두고 당내에서는 심한 잡음이 일었고, 그 과정에서 박영선 의원 등의 발언은 큰 논란을 낳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이종걸 원내대표의 12시간 31분 최장 기록을 남기고 3월 2일 오후 7시 30분, 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한 필리버스터는 종료되었다.


 대한민국 국회는 192시간 27분이라는 세계 최장 필리버스터 기록을 세웠다. 2위 기록인 58시간과는 몇 배 이상 차이가 나는 숫자다. 3월 2일 통과된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은 현재까지 시행 중에 있다. 국정원은 안보를 이유로, 자의적인 기준에 따라 설정한 ‘테러 위험 인물’을 합법적으로 감시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 지금도, 그러고 있을 것이다.





3월 9일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국이 있었다. 이날을 시작으로 총 5번기의 대국이 있었고, 이 가운데 제 4국을 제외하고 4번의 대국에서 모두 알파고가 승리했다. 인간이 컴퓨터에 대항에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보드게임이었던 바둑마저 이제 챔피언의 자리에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앉게 되었다.


 알파고의 승리를 예측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기술의 발전이 더욱 필요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인공지능 기술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인공지능의 인간에 대한 우위는 보다 확실해졌다.


 기술은 생각보다 빠르게 성장한다. 하지만 인간은 어떤가. 인간은 그 기술만큼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다. 우리 인류 공동체는, 그 빠르게 성장한 기술을 제대로 다룰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해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저 기술은 우리에게 약이 될 것인가 독이 될 것인가. 명확하게 확신할 수 없다. 왜인지 공포감이 엄습하는 대목이다.


 물론 그렇다고 기술의 발달을 막아세울 순 없다. 막는다고 막아지는 것도 아니고, 막는 것이 옳은 방향도 아니다. 그럴수록 기술을 다루는 방향에 대한 수준 높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이 기술은 인류의 복리를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적용될 수 있을까. 생각보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많지 않다.


 알파고가 4국에서 패배한 뒤, 알파고 프로그램의 모니터에는 이런 문구가 떴다.


 “Alphago resign:The result “W+Resign” was added to the game information.”

 (“알파고 패배 기록이 게임 정보에 추가되었습니다.”)




3월 20일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쿠바를 방문했다.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88년 만의 방문이었다.


 미국의 턱밑에서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켰던 쿠바. 그래서 언제나 미국의 최전방 충돌구역이 되었던 쿠바였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사태 때는 핵전쟁의 가능성까지 공공연하게 떠돌았었다. 하지만 교황의 중재로 2015년 교황의 중재를 통해 국교를 정상화한데 이어, 올해 3월 20일에는 미국 대통령의 공식 방문까지 받게 되었다.


 어지러운 세상에도, 화해와 희망의 징표는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4월 11일

 4월 11일, ‘어버이연합 게이트’로 불리는 사건이 <시사저널>의 보도로 처음 공개되었다. 어버이연합이 세월호 특별법 반대집회 과정에서 2500만 원을 시위대에게 나누어줬다는 것이 그 골자였다.


 이후 이어진 <시사저널>과 <JTBC>의 보도를 통해, 어버이연합이 유령회사를 세워서 시위대에게 일당을 제공했다는 것이 보다 구체적인 정황으로 드러났다. 무엇보다 이 유령회사에 자금을 대 준 것이 전국경제인연합회, 전경련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크게 논란이 일었다.


 또한 이 전체의 배후에 청와대 허현준 행정관이 있었다는 점 역시 드러났다. 결국 그간의 어버이연합 관련 집회들이 청와대의 기획 하에 재벌이 자금을 지원해, 어버이연합이 실행하는 로드맵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후 어버이연합 관련 간부들이 정상적인 의혹 해명 과정 없이 잠적하면서 파장이 커졌다.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해 검찰은 현재까지도 결론을 내지 않고 시간을 끌고 있어, 늑장 수사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모든 집회는 일당”이라며, “보수 2만원, 진보 5만원, 교회 2만원”이라던 김미화 탈북어버이대표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과연 연말 200만 집회의 자금책은 누구였을까. 다른 건 몰라도 일단 1천억 정도는 현금으로 인출할 수 있는 자금력이 있어야 한다.




4월 13일

 대한민국 제 20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모든 당이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선거를 치뤘다. 새누리당은 ‘진박 감별사’ 논란과 비박계 공천 배제, 이를 계기로 한 김무성 대표의 ‘옥새 탈주’로 혼란스러웠다. 더불어민주당은 공천 컷오프 과정에서 심한 잡음이 일었다. 국민의당은 야권연대 문제로 분열이 있었다. 기독당과 민주당이 컷오프 의원의 입당으로 원내정당이 되어 선거를 치르는 이변도 발생했다.


 물론 그 결과보다 심한 이변은 아니었을 것이다. 새누리당이 국회선진화법 무력화선인 180석, 심지어 개헌선인 200석까지 노리던 새누리당은 122석을 얻어 2당으로 주저앉았다. 많은 중진들이 낙선했다. 더불어민주당은 호남에서 참패했지만 수도권에서 압승하고 영남권 의석을 얻어가며 123석을 얻어 1당이 되었다. 국민의당은 호남 의석과 비례대표 의석을 가져가 38석의 굳건한 3당이 되었고, 정의당은 6석을 가져가 나름의 승리를 이뤄냈다. 무소속은 모두 11석, 이중 여당 성향이 7명, 야당 성향이 4명이었다.


 여소야대 체제가 열렸다. 야당 성향 의석을 모두 합하면 무려 171석이라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20대 국회를 이끌어갈 전반기 의장단으로는 더불어민주당 출신 정세균 의장, 새누리당 심재철 부의장, 국민의당 박주선 부의장이 선출되었다.





5월 10일

 필리핀 대통령 선거에서 로드리고 두테르테 후보가 당선되었다.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초법적인 마약범 사살 작전을 예고하던 그였다. 흔히 ‘필리핀의 도널드 트럼프’라고 불렸지만, 막상 취임한 그는 예상보다 더 심각한 인권 유린을 자행하고 있다.


 완전사형폐지국가인 필리핀에서, 절차 없이 마약범에 대한 즉각 사살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12월 12일 필리핀 경찰의 발표에 따르면, 두테르테 취임 이후 절차 없이 사살된 사람만 5927명에 달한다. 이중 2086명은 경찰에 의해 사살되었으며, 나머지 3841명은 민간인 자경단에 의해 살해되었다.


 얼마 전에는 이런 불법적 살인을 반대하는 인권운동가 역시 사살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는 일도 있었다. 두테르테 대통령 자신도, 시장 재직 시절 마약범을 살해한 적 있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필리핀 안에서 두테르테의 인기는 식지 않고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놓지 않기가 그만큼 힘들어지는 세상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다시 민주주의로 돌아가, 그 민주주의의 본질적 가치를 찾아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한다.




5월 11일

 이탈리아가 동성 커플의 시민결합을 허용했다. 이 조치를 통해, 유럽연합 28개국은 단 한 국가도 빠짐없이 동성 커플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게 되었다. 2015년 6월 26일 대법원 판결을 통해 미국 전역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상황에서, 유럽연합의 모든 국가가 동성 커플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는 희망적인 소식이 다시 한 번 들려온 것이다.


 물론 여전히 유럽에서도 많은 국가들이 동성 커플의 ‘시민 결합’을 허용하며 법적 지위만을 보장하고, 이를 ‘결혼’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입양 역시 불가능한 국가가 많다. 하지만 세상은 아주 조금씩,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당장 지난 12월 26일에는, 대만 입법원 사법법제위원회가 동성 간의 결혼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본회의를 통해 최종 통과 여부가 결정된다. 내년 4월 경에는 모든 절차를 마무리하고, 대만이 아시아에서 최초로 동성 결혼을 허용할 수 있는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는 사이 한국의 법원은 지난 5월 25일, 김조광수-김승환 씨의 동성결혼 합법화에 관련된 소송에 대해 각하 결정을 내렸다. 12월 6일에는 이들이 낸 항소 역시 기각했다. 하지만 당시 서울서부지법은 “성적 소수자라고 하여 그 개인의 권리실현에 장애가 있거나 미흡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는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의 입법적 결단을 통하여 결정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모두, 올 한 해 이 땅 위에서 벌어진 일들이었다.





5월 14일

 옥시의 신현우 전 대표가 구속되었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 때문이었다.


 사건이 처음 알려진 것은 5년 전인 2011년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정부는 이 사건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5년이 지난 2016년에 와서야 제대로 된 수사를 시작했다. 수사 결과 연구결과의 조작 등이 밝혀졌고, 옥시레킷벤키저 본사 측에서 직접 사과하는 일까지 있었다.


 정부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 접수에 신고된 사망자는 464명. 전체 피해자는 2399명에 달한다. 가습기살균제가 처음 판매된 것이 2001년이고, 문제가 알려진 2011년까지 10여년간 판매되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더 많은 사망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안방의 세월호 참사’라고 불리는 이 거대한 화학 참사에서, 정부와 기업의 일관된 책임 회피와 변명은 어쩌면 사건 그 자체보다 더 큰 충격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5월 17일

 강남역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강남역 일대에 포스트잇을 이용한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현장에서 수 차례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고, 이 사건을 기점으로 페미니즘과 한국 여성들이 겪어야 하는 사회적 현실에 대한 논쟁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자세히 말하자면 어려운 문제들이 끝도 없이 산적해 있는 사건이다. 물론 이 사건을 두고 충돌했던 두 진영 모두, 완벽했다고 말할 순 없다. 페미니즘을 외치는 사람들조차 몇몇 가지의 실수를 저질렀다.


 하지만 그들은 어째서 그 작은 실수에만 분노하는가. 한 여성을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한 사람에게는 왜 분노하지 않는가. 여성을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지에 몰아넣은 이 사회에 대해서는 분노하지 않는가. 왜 그 거대한 폭력 앞에선 하나같이 입을 다무는가.


 답은 단순하다. 모두가 그 가해자이기 때문이다.




5월 28일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노동자 김모 씨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시 한 번 포스트잇을 이용한 추모가 이어졌다.


 저비용이라는 환상이 만들어낸 사회 전체의 살인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열아홉의 노동자를, 기차가 달려오는 스크린도어 뒤로 몰아넣은 사회. 그 대가로 쥐어준 140만원 남짓의 월급봉투. 세월호 참사에서 사망한 학생들과 같은 나이인 그 노동자는, 아주 우연찮은 죽음을 맞아야만 했다.


 여기 국가는 없다. 자본의 폭주 뒤에 죽어가는 노동자를 구해내지 못하는 그 스크린도어 뒤에, 국가는 없다. 전태일이 분신하고 40년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기 국가는 없다.


 컵라면 하나 비우지 못한 생일 하루 전날, 그 젊은 노동자는 어쩌면 46년 전 전태일과 같은 말을 속으로 되뇌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시대는 돌아와 다시 한 명의 노동자를 죽였다.





6월 21일

 영남권 신공항 논의가 백지화되었다. 정부는 영남권 신공항의 후보지였던 가덕도와 밀양 모두가 신공항 입지로서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김해공항을 확장하기로 결정했다.


 영남권 신공항을 두고 선거 때마다 논란이 일었던 것이 벌써 한참이다. 영남권 신공항 논의 자체는 1990년대부터 나왔다. 백지화에 백지화를 거듭했던 영남권 신공항은 다시 한 번 백지화를 맞았고, 김해공항의 확장이라는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김해공항 확장 자체가 얼마나 많은 수요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비용 측면에선 확실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 이어졌던 소모적인 정치논쟁이 다시 한 번 반복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6월 24일

 영국이 국민투표를 통해 EU에서 탈퇴하기로 결정했다. EU의 전신인 ECC에 영국이 가입한 이후 43년만에 영국은 유럽연합을 탈퇴하게 되었다.


 잔류파였던 노동당 조 콕스 하원의원이 탈퇴파 극단주의자의 총격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할 정도로 격렬하게 이루어졌던 선거였다. 그러나 탈퇴 결정 직후 탈퇴파 정치인들은 하나둘 말을 바꿨다. EU 분담금으로 내는 5500억원 정도를 모두 의료복지에 사용할 수 있다던 정치인은 발언을 철회했고, 이민자를 완전히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 정치인 역시 “엄격히 관리하자는 것일 뿐”이라며 말을 바꿨다.


 파운드화와 유로화가 폭락했고, 대신 엔화가 폭등하는 국제시장 급변도 발생했다. 약속에 따라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사퇴하고 테레사 메이가 신임 총리로 선출되었다. EU 탈퇴 협상은 아직 개시조차 하지 못했으며, 2018년 10월까지는 협상 완료를 목표로 삼고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7월 6일

 세계 각지에 순차적으로 ‘포켓몬 고’가 출시되기 시작했다. 출시 직후부터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쓰러져가던 닌텐도 사를 한 번에 일으켜 세웠다. 닌텐도 사의 주식은 하루 만에 두 배 가까이 폭등했다.


 한국에서는 지도 데이터 문제로 속초에서만 플레이가 가능해, ‘속초 원정’과 같은 웃지 못할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한국의 구시대적 인터넷 규제가 다시 한 번 문제가 되었으나, 현재까지 포켓몬 고는 한국에서 플레이할 수 없다.




7월 7일

 이날 저녁, 교육부 나향욱 정책기획관이 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민중은 개, 돼지와 같다”며 “우리나라도 신분제를 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등장했던 이 대사는, 어쩌면 한국의 상류층들이 국민들을 대하는 방식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나 입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이 대사가, 언제나 문학작품을 뛰어넘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선 고위 공직자의 입밖으로 나오는 사건이 벌어졌다.


 결국 나향욱 정책기획관은 사과했으며, 교육부는 나 기획관을 파면조치했다. 나 기획관은 이에 항소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것이 나 기획관의 발언이었는지, 아니면 교육부의 파면조치였는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기로 하자.




7월 13일

 대한민국 국방부가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경상북도 성주군 성산포대에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사드 배치의 필요성을 두고 각종 논란이 이어졌고, 배치의 비민주성에 대해 비판이 이어졌다.


 특히 사드 배치 대상 지역으로 선정된 성주군에서는 큰 반발 여론이 일어났다. 지역과의 협의 없이 시설을 들여오겠다는 졸속 발표가 분노를 더 크게 만들었다. 이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은 몽골 순방을 떠났고, 황교안 총리는 성주로 내려갔다 계란 세례를 맞는 일까지 벌어졌다.


 결국 사드 배치 위치는 수정되어 성주군 초전면 롯데스카이힐 골프장 부지에 사드를 배치하기로 결정되었다. 제대로 된 타당성 평가도 없이 이루어진 배치와 졸속 이전 역시 논란이 되었다. 또한 바뀐 사드 부지가 칠곡군과 인접해 있어 칠곡군 주민들의 항의까지 받게 되었다.


 중국은 한국의 사드 배치 이후 한국에 대한 경제 제재를 강화하고 있다. 상용복수비자 발급이 중지되었으며, 한국 연예인들의 활동이 제재되고 있다. 내년 1월과 2월에는 한국행 전세기 출항을 금지한다고 알려졌다. 지난 12월 16일에는 중국 항공모함이 서해에서 최초로 실탄 사격훈련을 하며 무력 시위를 벌이기까지 했다.


 졸속으로 벌어진 정부의 조치 하나가, 경제 전체를 사지로 밀어넣고 있다.





7월 30일

 이화여대에 경찰이 투입되었다. 대학 측의 일방적인 미래라이프대학 설립을 저지하기 위해 학생들이 본관을 점거하고 회의실의 교수와 직원을 약 46시간 동안 감금하자, 최경희 총장이 직접 경찰 진입을 요청한 것이다. 대학에 경찰이 진입하는 비문명적인 일이 학교 측의 요청에 의해 벌어진 것이다.


 현장에서는 ‘운동권’에 대한 배제가 이슈가 되었다. 구시대적 사회운동 방식을 버리지 못한 이들에 대한 배제였지만, 본질적으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사회운동에 대해 “어떤 정치세력과도 무관하다”는 주장은 부적절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다만 이런 방식으로 투쟁한 이화여대 학생들은, 근래 학생사회에서 보기 드물던 승리를 거두었다. 최경희 총장은 미래라이프대학 설립을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학생들은 최경희 총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본부 점거를 이어갔고, 최경희 총장이 정유라 씨의 입시비리에 관련되어 10월 19일 사임하면서 본부 점거를 해제할 수 있었다. 놀라운 성과였다.


 대학가에서는 이외에도 여러 충돌이 있었다. 고려대학교는 이화여대와 비슷한 미래대학 설립 건으로 본부 점거가 이루어졌으나 대학 측의 철회로 점거가 해제되었다. 서울대학교는 학생과의 약속을 파기한 시흥캠퍼스 설립 계획과 비민주적 의사소통 구조 문제로 지난 10월 10일부터 현재까지 본부 점거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8월 31일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부동의 국내 1위 해운사였던 한진해운이 해운경기 불황과 경영상의 실책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해운사업이 휘청였다.


 한진해운의 경영난이 알려지면서 항구에서는 한진해운의 배가 들어오는 즉시 선박과 물류를 가압류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한진해운 측은 급한대로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바다 위에서 떠돌며 항구에 입항하지 않는 방법을 취했고, 이에 따라 물류의 유통이 정지되며 물류 대란까지 벌어지고 한진해운 선원들이 표류하는 일이 벌어졌다.


 결국 한진해운은 청산 절차에 들어갔고, 부동의 해운 1위 기업은 허망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제대로 경영하지 못하는 경영자,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정부는 다시 한 번 국민에게 피해를 입히게 되었다.





9월 12일

 경상북도 경주시 남남서쪽 8km 지점에서 규모 5.8의 강진이 발생했다. 대한민국 영토 내에서 기록된 지진 중 가장 규모가 큰 지진이었다. 다행히도 사망자는 없었고, 23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정부의 재난 늑장 대응이 크게 문제가 되었다. 국민안전처 홈페이지는 마비되었고, 재난경보 역시 울리지 않았다. 주변의 원자력 발전소가 다시 한 번 논란이 되었다. 지진해일로 인해 최악의 원자력 발전소 참사가 바로 옆 나라에서 벌어진 것이 겨우 5년 전이지만, 원자력발전소 주변의 지진에 대한 한국의 대응 체계는 일본에 비할 바조차 못 되고 있었다.




9월 25일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현장에서 경찰의 위법적인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농민 백남기 씨가 결국 서울대병원에서 사망했다. 백남기 씨 사망의 주범이었던 경찰은 백 씨의 위중 소식이 들리자마자 서울대병원 안에 병력을 투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백남기 씨는 사망했고, 경찰은 백남기 씨를 부검하겠다며 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은 이를 한 차례 기각했다가 검경의 재청구에 ‘유족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며 조건부로 영장을 발부했다. 경찰은 강제 부검을 시도했지만, 시민의 저항에 밀려 최종적으로 집행을 포기했다. 민중총궐기 당시 경찰청장이었던 강신명 씨는 끝까지 사과하지 않았다.


 서울대병원 백선하 교수의 사망진단서 역시 논란이 되었다. 사망 원인을 ‘심폐정지’로 기록하고 이를 ‘병사’라고 주장한 백 교수는 결국 보직해임 처분을 받았다.


 병원에 오랜 기간 입원해 있었기에 기록이 충분하고, 이미 법원이 “경찰의 위법적 물대포에 의해 쓰려졌다”고 판단을 받은 백남기 씨를 부검하겠다며 나선 경찰. 1987년 이한열 열사의 시신을 탈취하던 경찰과, 1991년 박창수 열사의 시신을 탈취하던 경찰에서, 그들은 하나도 진보하지 않았다. 단 한 발자국도.




11월 9일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누르고 45대 미합중국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직접투표에서는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앞섰으나, 미국의 독특한 선거제도인 주별 승자독식제가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혐오발언을 일삼던 트럼프는 이제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혐오는 이제 일상을 넘어 권력까지 얻었다. 그것도 국민의 선거에 의한 권력이었다. 그가 꾸리는 내각의 면면 역시 화려하다. KKK를 옹호하는 법무부 장관,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하는 노동부 장관, 에너지부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에너지부 장관 등등. 절망의 드림팀이 완성되고 있다.


 기득권의 정점이었던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이제 정치권력까지 한 손에 쥐게 되었다. 우리가 민중의 힘으로 지켜냈던 마지막 보루를, 하나둘 잃고 있는 기분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본질적인 성찰이 필요할 것이다. 과정으로서의 민주주의를 넘어선, 철학과 이념으로서의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이 반드시 필요한 4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의결되었다.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을 제외하고 299명의 의원들이 참석한 상황에서, 234명의 찬성으로 가결정족수인 200명을 훌쩍 넘겨 통과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12월 9일 7시 3분부터 직무가 정지되었다. 대통령으로서의 직무는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행하게 되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2016년 연말을 수놓은 거대한 비리 사건의 정점이었다. 조선일보와 청와대의 경쟁으로부터 터져나온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논란이 그 시작이었다. 주목받지 못했던 이 사건을 한겨레가 크게 터뜨렸고, JTBC의 태블릿PC 입수가 결정타였다.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을 통한 재벌들의 뇌물. 최순실 씨의 불법적 국정개입. 자금 세탁. 정유라 씨의 입시비리와 학사비리. 문화계 블랙리스트 제작. 증거인멸.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해임. 삼성의 승마협회 지원. 우병우 민정수석의 비리. 세월호 7시간과 의료 관련 비리. 대법원장 사찰 사건 등등. 수많은 비리들이 이 사건을 중심으로 점철되어 있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직무가 정지된 상태로 새해를 맞고 있다. 사건이 처음 밝혀졌을 때만 해도 탄핵은 불가능하다는 비관론이 우세했다. 하지만 10월 29일 3만 명으로 시작되어, 12월 3일 230만 명까지 불어난 거대한 촛불의 목소리가, 이 모든 것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대통령의 신년사 없이 한 해를 맞을 수 있게 되었다.


 2016헌나1 대통령(박근혜) 탄핵 사건. 헌법재판소로 넘어가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이다. 헌법재판소는 빠른 속도로 재판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국회에서는 이 사건과 관련된 국정조사가 벌어지고 있고, 사건에 깊에 관여한 전경련은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고 있다.


 거대한 사건들이 홍수처럼 쏟아졌던 2016년의 마지막 결정타였다. 이것이 시대 교체의 출발로 기록될지, 혹은 다시 한 번 놓쳐버린 기회로 기록될지는, 이제 다시 새해를 맞는 우리의 손에 달려있다.





12월 27일

 마지막까지 다이나믹했다.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 29명이 탈당하며 새누리당이 99석의 미니 여당으로 주저앉았다. 121석을 보유한 더불어민주당이 굳건한 1당의 자리를 되찾았다. 비박계 의원 29명과 이미 탈당한 김용태 의원은 ‘개혁보수신당’이라는 이름으로 교섭단체를 등록했으며, 창당 절차에 나서고 있다.


 새누리당은 다시 친박당으로 돌아왔고, 인명진 비대위 체제가 들어섰지만 어느 정도의 개혁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개혁보수신당에게는 ‘보수’라는 정책적 선명성이 새로운 과제가 될 것이다. 현재 정당 지지율과 대선주자 지지율에서는 모두 더불어민주당 측이 앞서고 있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이것이 다른 한 해와 같은 길이의 한 해였다는 것이, 나는 아직도 잘 믿겨지지 않는다.


 다가오는 2017년은 어떤 해일까. 지금을 사는 우리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올해처럼, 그 최소한의 선이 무너지지는 않는 한 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선이 무너진 대가가 어떤지는, 우리 이미 톡톡히 체험하지 않았던가.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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