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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10번 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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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젯밤엔 잠을 잘 자지 못했습니다. 아침 다섯 시 가까이 되어서야 겨우 잠들었던 것 같네요. 겨우겨우 세 시간쯤 자고 일어났습니다. 점심때쯤 되어서야 밖으로 나갔습니다.




 저는, 오늘 강남역에 다녀왔습니다.


 단지 항구의 이름이었던 ‘팽목항’이라는 말이 어느새 세월호와 그 이후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말이 된 것처럼, ‘강남역 10번 출구’라는 말도 어느새 증오범죄의 상징이 되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강남역에 도착해서부터 10번 출구를 찾아 나가기까지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저는 사실 요 며칠간 이 사회가 버겁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새벽 1시, 대한민국 최대의 번화가라는 강남 한복판에서 여성을 상대로 한 증오범죄가 벌어졌습니다.


 그 사건의 추모행사를 처음 기획한 것은 ‘워마드’라는 성소수자 혐오 커뮤니티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강남역에 모이자 이를 ‘남혐’이라고 몰아가는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일베’ 회원들은 강남역에 붙은 포스트잇을 태우고, 조화를 보내 피해자를 모욕했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여혐을 일반화하지 마라”는 포스트잇이 공공연히 붙기도 했습니다.


 약자와 소외된 이를 위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정치인은 조롱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어제는 ‘여성민우회는 빠지라’는 자칭 페미니스트의 말도 들었습니다.


 언론은 이 사건을 ‘여혐’과 ‘남혐’의 대결구도로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포털 사이트의 댓글창은 볼 용기조차 낼 수 없었습니다.


 범죄에 대한 공포를 ‘남성에 대한 일반화’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그런데도, 그런데도 세상은 지나치게 조용했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버거웠습니다. 강남역으로 갈 때까지 며칠간 고민했던 것도, 비슷한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강남역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종편부터 지상파, 케이블에 1인 미디어까지 취재를 온 언론인들도 많았습니다. 포스트잇에 쓰인 글씨를 조금 읽어 보았습니다. 무언가 울컥,하고 올라오는 게 있어 끝까지 읽지는 못했습니다.


 무어라 말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 강남역 앞을 몇 차례나 빙빙 돌았습니다. 마음을 조금 가라앉힌 후에야 글을 쓰고 있는 사람들 뒤에 붙어 줄을 섰습니다. 막상 펜을 손에 잡으니 글을 쓰는 것은 쉽더군요. 부끄러울 만큼 쉽게 쓰인 글을 들고 적당한 자리를 찾아 붙였습니다. 더 이상 붙일 공간이 없어 본의 아니게 다른 분의 마음을 조금 가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조금씩, 글을 읽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자체로 단단한 벽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의 죽음이 만들어 낸 분노, 애환, 슬픔, 울분, 그리고 저항. 혐오와 증오의 힘으로는 무너뜨릴 수 없는 단단한 벽을 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조화도 몇 개 놓여 있었습니다. 단연 눈에 띄는 조화는 문구가 적힌 띠지가 잘려 있는 밋밋한 조화였습니다. 어젯밤까지는 이것도 문구가 붙어 있었다고 하죠. “남자라서 죽은 천안함 용사들을 잊지 맙시다.”라는 문구가요. 네, ‘일간베스트 저장소’ 회원들이 보낸 조화였습니다. 죽음 뒤에도 혐오에 이용되어야 했던 그들의 이름에 묵묵히 애도를 표하고 돌아섰습니다.





 순간 바람이 불었습니다. 잘 붙여지지 않았던 포스트잇 몇 개가 떨어져 날아갔습니다. 제 앞에 서 계셨던 남성분이 이것을 주워 다시 잘 붙여 주더군요. 포스트잇이 있던 테이블에 테이프가 함께 놓여 있었던 이유를 그제야 알았습니다. 제가 쓴 포스트잇도 위태로워 보여서 다시 꾹꾹 눌러 붙여 두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센 바람이라도 불면 떨어질 것 같아 보이는 포스트잇이 몇 개 보였습니다. 밤새 소나기라도 내리면 어떻게 될까요. 그 자리에서 휴대폰을 꺼내 일기예보를 확인해 보았습니다. 당장 돌아오는 화요일에 비소식이 있더군요.


 그때쯤 되면 천막이라도 치고 공간을 보호해야 하겠죠. 비가 그 글들은 쓸어내릴 수 있어도 분노와 저항의 에너지를 씻어낼 순 없다는 것을 알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다시 글을 읽어보기 시작했습니다. 가슴에 새겨두고 싶었습니다.





 대학교에 진학하며 서울에 올라와 살게 된 지가 이제 1년 넘게 지났습니다. 돌이켜보니 지하철로 20분쯤 걸리는 가까운 거리에 살았음에도 강남에는 한 번도 와 보지 못했더군요. 실제로 와 보니 그 괴리감이 더 거대하게 느껴졌습니다. 높게 솟을 빌딩들, 수많은 사람들, 유난히 파란 하늘, 하지만 그 속에서 외로이 죽어가야만 했던 한 여성의 꿈.


 밤이면 이 땅은 얼마나 더 화려하게 빛날까요. 그 때가 되면 그 괴리감을 도무지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낮에 오길 차라리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쌓여 있던 국화꽃, 형형색색의 포스트잇. 그것들만이 위로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글을 읽다 보니 천천히, 아주 천천히 며칠간 품어왔던 버거움이 해소되는 것 같았습니다.


 여전히 거기,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요.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요.


 그곳에 ‘여혐’과 ‘남혐’ 따위는 없었습니다. 그곳에는 ‘성차별적 사회에 대한 분노와 저항’만이 존재했습니다. 여성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부당한 세상에 대한 온당한 분노만이 존재했습니다.


 세상은 조용하지 않습니다. 찻잔 속의 태풍은 결국 언젠가 찻잔을 깨뜨릴 원동력이 됩니다. 바로 오늘의 강남역 10번 출구가 그랬습니다.




 여성에 대한 명백한 증오범죄. 단지 시작일 뿐이라는 음습한 확신이 하루에도 몇 번씩 올라와, 몸서리가 쳐지는 날들입니다. 성(性)과 그 지향성이 증오의 대상이 되지 않는 세상을 꿈꾸며,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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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행복이 집사 2016.05.20 17:17 신고

    잘 읽었습니다!

우리는 모두들

쏘아버린 화살을 따라 달려나가고 있다.

그렇게 달려나가다 보면

저어 멀리 우리가 넘어야 하는 산이 보이기도 한다.

더 멀리에는 우리가 뛰어넘어야 하는 장애물들이 보이기도 한다.

때로는 그것만을 바라보며 시름에 젖기도,

완전히 잊고 즐겁게 웃기도 하는 사이,

우리는 어느새 그 거대한 산의 앞에,

그 높은 장애물의 앞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찌됐건 쏘아버린 화살을 따라 달려나가고 있고,

세상 사람들을 자신의 화살을 따라가기 바쁘면서도

남의 화살을 지켜보며 조소(嘲笑)할 여유만큼은 일부러라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의 차례가 와서

우리는 오로지 우리의 몫으로 저 높은 산과 장애물을 넘어서야만 한다.

어쩌면 그 산을 오르다 지쳐 쓰러질지도 모르고,

장애물을 넘지 못해 쓰러져 뒹굴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그것이 두려워 살짝 피해갈지도 모른다.

내가 사랑하지 않는, 차마 사랑할 수 없는 그 회색의 산과 장애물을 넘지 못하면

사람들은 또 예전과 같은 조소를 우리에게 줄 것이다.

우리가 그것들을 애써 넘으려 하는 이유는 그 조소를 피하기 위함일 것이다.

조소를 피해 그 산을 오르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사랑하는 푸른빛의 산이 나타나 나를 감쌀 것이고,

그때야 나는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

조소를 받는다고 해서 녹색의 산이 나타나지 않거나 그 산이 나를 품지 않으리라고 믿는 것은 아니다.

다만 회색의 산을 넘어가면 더 아름다운 길이 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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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e 2012.10.23 00:45 신고

    그곳에 다다를 때까지 그대가 지켜보고 관심과 사랑을 건넬 대상은 단지 그대 뿐임을*~
    지금처럼 잊지않는다면 그댄 지금도 그 후에도 작은 미소 지을 수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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