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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읽다/[시사] 창밖으로 보이는 세상

우리는 모두 '잠재적 가해자'다

Widerstand365 2016.05.22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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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잠재적 가해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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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사회가 여성혐오를 두고 크게 논쟁을 벌이고 있다. 다양한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온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도 있고, 논리적 흠결이 없는 정론도 있다. 어쨌든 온 사회가 논쟁을 벌일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볼 수도 있고, 사회 전체의 발전 방향을 논의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세상이 시끄럽다’는 것은 어쨌든 그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중이라는 이야기다.




 강남역 살인 사건에 대한 추모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다만 이전보다 현장에서의 충돌이 잦아지고 있다. 이 사건을 ‘여성 살해’로 보고 추모하려는 측과, 이 추모를 ‘남성에 대한 혐오’라고 생각하는 측이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후자의 사람들이 제기한 문제 중 흥미로운 것이 하나 있다. “남성을 모두 잠재적 가해자로 몰지 말라”는 문구였다. 이번 사건에서 남성이 여성을 살해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으로 모든 남성을 가해자로 몰아세워선 안 된다는 논리다.


 이 주장은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하나의 사건을 가지고 모든 남성을 일반화할 수는 없으며, 만약 누군가 ‘모든 남성을 가해자’라고 칭한다면 그것은 곧 ‘남성 혐오’라는 논지가 곳곳에서 등장한다.


 이 주장은 대단히 타당하다. 외국인 중에 무능한 사람이 있다고 해서 “외국인은 모두 무능하다”고 말하면 제노포비아가 되고, 유색인종 가운데 그릇된 도덕관념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해서 “유색인종은 모두 도덕적 해이에 빠져 있다”고 말하면 인종차별주의자가 된다. 남성과 범죄의 연관성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일반화는 비논리적이며, 결과적으로는 혐오발언(hate speech)에 해당할 수 있다.




 그런데, 다시 한 번 이들의 논지를 면밀히 살펴보자. 말했듯 “남성을 모두 범죄자로 몰아세우지 말자”는 말은 정당하다. 남성 중에 범죄자가 있을지라도, 남성이 모두 범죄자인 건 아니니까.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그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문장 가운데에는 아주 핵심적인 단어가 하나 더 끼어 있다. ‘잠재적’이라는 단어가.




 “남성을 모두 ‘잠재적’ 가해자로 몰아세우지 말자.” 이 말은 어떨까?


 이 사건을 떠나서 생각해 보자. 우리는 사실 매일매일 모든 타인을 ‘잠재적 가해자’로 상정하며 살아간다.


 매일 아침 출근하며 집을 나설 때, 우리는 습관처럼 문을 잠근다. 도둑이 들 수 있는 위험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도둑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세상에 도둑은 존재하고, 그 피해자가 내가 아니라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일 아침 세상 사람들 모두를 ‘잠재적 절도범’으로 몰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어두운 밤에 인적이 드문 거리를 지나다닐 때 약간의 위축감을 경험한다. 누군가가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범죄자인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세상에 범죄자는 존재하니까. 그리고 그 피해자가 나일 수도 있으니까. 우리는 밤마다 세상 사람들 모두를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세운다.


 그런데 누가 이런 행동에 분노를 표출하던가?


 우리는, 아침에 문을 잠그고 가는 사람들에게 분노를 표하진 않는다. 나는 도둑이 아닌데, 왜 세상 사람들 모두를 도둑으로 모냐고 분노하는 사람은 없다. 도어락 자동잠금장치가 사회적 불신을 초래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없다.


 우리는 또, 밤길을 무서워하는 사람에게 분노하지도 않는다. 나는 밤에 지나가는 사람을 향해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는데, 왜 세상 사람들 모두를 범죄자로 모냐고 분노하는 사람은 없다. 가로등의 설치가 세상을 각박하게 만든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없다.


 그렇다면 왜 이 사건에 대해서는 분노하는가? 한 남성이 여성을 살해했다. 그것도 대한민국 최대의 번화가라는 강남 한복판에서. 이 소식을 들으면 위축되는 게 당연하다. 무서운 게 당연하다. 그 두려움의 감정은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이 맞다. 그것이 ‘남성혐오’라는 주장은 과도하다. 우리 모두 매일 그렇게 서로를 두려워하며 사니까. 이 논리대로라면 우리는, 온 세상을 혐오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세상에 아무런 범죄가 없고, 그래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 모두를 신뢰할 수 있는 세상이 오면 분명 좋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사회를 꿈꾼다. 하지만 지금이 그런 사회는 아니다. 아니, 애초에 그런 사회는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온전히 신뢰하지 못한다. 상대방이 언제든 범죄를 저지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위축되고, 두렵고, 때로 상대방을 의심하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모두들 그렇게 살고, 누구도 그 고민을 상대방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을 잠그지 않아도 도둑이 들지 않는 세상은 좋은 세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당장 모두에게 “문을 잠그지 말라”고 말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다. 범죄가 없는 세상은 좋은 세상이지만, 지금 당장 “서로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특히나 남성이 여성을 대상으로 저지르는 강력범죄 비율이 높은 사회에서는, 여성이 남성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느끼는 정도가 강한 것 역시 당연한 일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신뢰를 강요할 수는 없다. 우리는 사회 전체에 대한 ‘일반화된 공포’를 느끼면서 산다. 그 공포가 때로 강해지고 때로 약해질 뿐, 그런 공포가 소멸된 사회란 없다.


 모든 남성을 범죄자라 단정할 수는 없다. 모든 남성이 이번 사건의 가해자이며, 모든 남성이 이 사건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단언할 수도 없다. 하지만 모든 남성, 나아가 모든 사람을 ‘잠재적 범죄자’로 생각할 수는 있다. 그것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꾸려가는 사회라면 구성원 모두가 감수해야 할 일종의 패널티다.


 만약 그 정도의 패널티도 감수할 생각이 없다면, 다른 사람과 발맞추어 가는 사회에 등장하거나 목소리를 내지는 말아야 옳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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