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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가을. 끝 본문

낯선 세계를 읽다/[소설] 벽

벽. 가을. 끝

Widerstand365 2015.11.23 00:00



벽. 가을. 끝


by / 이창우


 


  11월의 가을비가 지나면 겨울일거야. 캠퍼스 안에 대형 커피숍이 자리잡아 학내라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 길이었다. 우산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던 나는 차가운 공기를 가르는 이 비를 맞고 가야할지 어찌할지 주저하다 들어온 공간이다. 인문대를 걸어 나오다 스윽 둘러보긴 했던 이곳에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창에 길게 늘어진 테이블에 앉아 어둠이 내리는 순간을 바라본다. 이 비는 쉽게 그칠 것 같지 않다. 


따끈한 커피를 마시고 나서면 가을비를 맞으며 어느 정도는 버틸 거야. 학교를 나설 때부터 우산을 잡을까 말까 고민하던 내가 배시시 웃는다. 까짓것 가을비쯤이야 감당할 수 있거든. 창으로 바라보는 빗줄기는 주변의 가로등과 멀리서 번져오는 빌딩이 내뿜는 빛으로 여러 빛을 발하며 땅으로 추락한다. 경사진 도로에 스르르 저들끼리 어울려 아래로 아래로 흐른다. 테라스에는 접힌 파라솔과 텅 빈 진한 갈색의 나무의자들이 비를 맞고 있다. 


몇 시나 된 건지 이미 배터리가 나간 핸드폰을 꺼내려다 실내의 시계를 보니 일곱 시가 이미 넘어 있었다. 더 거세지기 전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할 것 같아 짐을 챙겨 밖으로 나서며 후드를 뒤집어쓴다. 길은 빗물로 부드럽게 윤기를 내고 있다. 늘어선 은행나무의 노란 잎들이 쌓여 두둑하게 발을 감싼다. 정거장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지만 흠뻑 젖은 나는 계속 길을 걷기로 한다. 여러 색의 우산들이 가득 모여 있는 정류장을 지나친다.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 그저 이곳을 벗어나지 않았다. 정오가 막 지나면서 보낸 문자에 답이 없었고 수업 중일까 조심스레 통화버튼을 눌렀지만 서너번 신호음이 가고 나서 핸드폰을 닫았다. 배터리가 거의 끝나갈 때까지 그는 연락하지 않았고 별로 그 다음은 궁금하지 않았다. 고의인지 피하는 건지 어떤 이유인지 상관 없었다. 망설이다 언젠가 다시 기억이나 할까 싶은 마음이었다. 아무래도 비는 밤새 내릴 것같다.  


비가내리는 길은 자동차의 마찰음이 묘하게 어우러져 혼자 걷는다는 생각을 떨쳐내게 한다. 비 오는 날에 더 안정감을 느끼는 것이 이런 이유였을까. 한편으론 알아차리지 못하는 두려움이 빗소리에 빨려 들어가곤 했다. 지나는 차들의 불빛들로 빛난다. 하지만 보도블록 위 뒹굴지 못한 채 밟히는 수북한 은행잎은 노랗게 풀어놓은 그림물감 덩어리 같다. 바닥에 시선을 둔 나의 눈빛도 흐리멍텅하다.  


알 수 없는 두려움은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아마도 영원히 알아차릴 수 없을 거야. 이 거리의 안락함이 광장의 암울함과 유리되어 있다는 생각, 내가 서 있는 세상이 수많은 시선으로 분산되어 초점 잃은 눈동자를 어디에 두어야할지 모르겠다. 나의공간이가까워질수록 마음은 다시 되돌아가려 한다. 오후 내내 나를 가두고 고문했던 상념과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나였다.


 


“핸드폰은 꺼져 있고 비는 오고 우산은 여기 이렇게 있고, 도대체 무슨 일이야?”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퍼붓는 금지의 말에 갑작스레 한기를 만난다.  


“그대로야. 네 말대로 핸드폰은 배터리가 없었고 우산은 두고 갔고 나는 비를 맞고 이렇게 왔지. 왜?” 


“걱정했다고.” 


 


금지의 짧은 대답과 한숨소리와 방안을 가득 채운 음식의 혼합된 냄새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이마에 주름을 금지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애쓴다. 


 


“내가 뭐 할 줄 아는 게 있어야지. 그냥 집에 있는 걸로 찌개 끓이고 밥만 해놨어.” 


 


오랜만에 집에 들어온 금지의 서툰 변명도 아무렇지 않다.  


 


“그래, 지금은 배고프지 않아서 너는?” 


“나, 다시 일자리 구했거든. 야간 일이지만 그래도 다른 건 괜찮아. 이제 준비하고 나가야 돼.” 


“그럼 아침에 들어와?” 


“으응. 새벽에 끝나서 근처 선배 네에서 자는 날이 많을 거야. 택시타고 어쩌고 하면 남는 게 없잖아.” 


“견딜 수 있겠어?” 


“이정도야 끄떡없지. 걱정 말아. 넌 별 일 없는 거지?” 


“응, 아무 일도 없는데.”


 


내 안에서 기어 나오곤 하는 것을 나도 모르겠는데 뭘. 분명한 것은 알겠다. 이 나라의 이 시간대가 정상은 아니라는 거. 헛갈린다. 지명이 바뀌면 세상도 달라져 있어서 서쪽에 몸을 누이며 사는 나와 동쪽의 평화로운 공간에서 반나절을 지내는 나는 낯선 여행자 같기만 하니까. 제 각기 삶을 살아가는 모습에서 이질감을 만난다. 여기에 있으면 나에게 물어 오는 수많은 물음에 심장박동이 거세진다. 학교에 가면 눈부신 태양 아래 환한 사람들로 넘친다. 거리로 나서면 답답한 문구의 플랜카드가 여기 저기 목을 맨 채 늘어져 있다.


 


  철학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내가 공부하는 이 시간이 어쩐지 현실과 너무도 괴리되어 있다는 생각에 무력감이 쌓인다. 이 세계에 사상이 존재할 수나 있을까. 방안을 둘러본다. 빼곡하게 벽을 둘러싼 책들이 무덤처럼 누워있다. 그래, 이 책들과 지나온 나의 시간들이 지금 어떤 의미가 있는 거지? 내가 왜 여기에서 이렇게 있어야 하는 거지? 소크라테스가 플라톤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무슨 소용이 있는 거지? 사상의 부재 시대에서 무엇이 나를 이끌어가든 그것은 현실적으로 무해하기에 작은 의미를 던져줄 것이라 생각했었다.


비를 맞고 돌아온 후 며칠을 감기몸살로 앓고 그동안 꺼진 채 있던 핸드폰을 충전기에 연결한다. 비몽사몽간에 금지가 들락거렸던 것 같다. 어지럽게 놓인 약봉지들이 놓여있는 방바닥은 한차례 들끓던 오열이 지난 후 내팽겨친 식은 내 몸뚱아리의 한 조각 같다. 서윤에게서 몇 번의 전화가 왔었다. 지금은 아니다. 누구와도 말을 할 수 없어. 나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지치고 있어. 커튼을 내려놓아서겠지. 아직 어둠 속에서 원두를 내린다. 아, 향기로운 방으로 변하고 있다. 이 시간 안에서 나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것 같아.


“여러분은 휴머니스트인가요?”


비를 맞으며 걷던 거리 위에서 내 머리 안에서 부유하며 계속 되뇌곤 했던 여성학 시간, 교수의 물음이었다. 강의가 끝나갈 즈음 교수는 도리스 레싱의 소설 속 인용구를 던지며 강의를 끝맺었다.  


‘휴머니즘은 우주의 모든 것에 대해 가능한 한 의식적이 되고 책임감을 가지려고 분투하는 인간들 전체, 개인들 전체를 의미하는 거예요.’ 


교수의 물음에 답은 각자의 몫이었다. 부리나케 강의실을 나가는 움직임들에서 생각은 끊겼고 다른 시선으로 걷고 있는 내가 밀어두었던 의식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인도 위에 널브러져 납작하게 눌린 젖은 낙엽들이 나처럼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내 안에서 작은 벌레들이 꿈틀거리며 나를 갉아먹는 느낌이다. 이 느낌은 통증을 가져다 준다. 상상력의 산물인지 현실에서 일어나는 현상인지 가늠할 수 없어.


 


  핸드폰의 벨소리에서 현실 감각을 되찾는다. 내 몸과 마음이 분리된 느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외부를 통해 전해지는 소리이다. 바깥 공기를 맡고 싶다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그와 서둘러 약속을 잡고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는 것에 약간의 어지럼증을 가늠하다 욕실로 들어간다. 거울 속에 내가 있다. 익숙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낯선 얼굴이 빼꼼히 나를 바라본다. 뜨거운 수증기로 거울 속의 나는 서서히 자취를 감춘다. 


서둘러 길을 나서다 문턱에 걸려 헛발질을 하고 무릎을 꿇고 말았다. 며칠째 나를 휘어감고 있는 무거운 공기가 계속이다. 가을비를 만만하게 여긴 탓이려니 하면서 돌아 나오려다 욕실의 전등빛에 다시 운동화를 벗는다. 왜 이러지? 나를 기다리는 거울 속의 그 사람이 멀뚱멀뚱 시선을 준다. 미친 사함같아. 아직 덜 마른 긴머리는 산발한 것처럼 늘어져 있다. 저 머리 좀 어떻게 자르던지 하지. 결국 늦겠군.


초저녁의 시간인데 거리는 벌써부터 밤을 향해 빛을 발산한다. 아, 이 골목도 이제 싫증이 난다. 매일 밤 깜빡이는 이름들, 삶을 기억하게 하는 진득한 음식 냄새들, 찌든 알콜 냄새, 구역질이 난다. 나와 반대로 비껴가는 많은 사람들의 옆모습에서 또 다른 나를 본다. 차라리 집으로 들어오라 할 것을 그랬다는 생각이 들면서 카페 입구를 밝히는 보랏빛 글자가 눈 앞에 나타난다. 하필 이곳을 선택하다니. 창이 밖으로 나지 않은 곳인데.            


   


 


“장례식장은 올거지?”


 


실내의 주황빛에 서윤의 얼굴은 평소와 다르게 보인다. 광장에서 총궐기를했다고 했는데 그 영향일까. 푸욱 꺼진 그의 두 눈이 낯설다.


 


“무슨 장례식?”


“너, 정말 모르고 있던 거야? 며칠 전 비 오는 날 있었지? 음주운전으로 지하도 입구 기둥을 들이받았대. 즉사했다더군.” 


 


가라앉은 서윤의 목소리가 끊겼다 다시 이어졌다 한다.


 


“지금 누구 말하는 거야?”


“이상하지. 형이 출국 결정하고 친구들 만나 만취해서 대리운전기사까지 불러 갔다는데 사고 당시에는 본인이 운전대에 있었대.”


"경연 오빠?"


 


그 날이었다. 빗속에서 휘청거리던 그날이었다. 나의 핸드폰에는 나타날 수 없었던 그가 연락을 했었던 걸까. 갑자기 명치 아래께를 아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순간 숨이 딱 멈추는 것 같았다. 나를 대신한 것만 같은 엉뚱한 사람의 죽음이 내 삶에 자리 잡아 똬리를 틀려고 한다. 삶은 내가 아닌 타인에 의해 채워지곤 하는 것일지도 몰라. 적당히 뒤틀린 정신. 스스로 고통받아야 자기 존재를 알아차리는 인간. 그가 날린 한 방은 KO 펀치였다. 나를 향해 던졌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이 우연한 죽음이, 내가 널 사랑한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해야 하는건가, 그 목소리가  나를 결박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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