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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가을. 9 본문

낯선 세계를 읽다/[소설] 벽

벽. 가을. 9

Widerstand365 2015.10.26 00:00



벽. 가을. 9.


by / 이창우


 


 


“자네는 누구를 가장 사랑하는가. 수수께끼 같은 사람아. 말해 보게. 아버지, 어머니, 누이, 형제?”


“내겐 아버지도, 어머니도, 누이도, 형제도 없어요.”


“친구들은?”


“당신은 이날까지도 나에게 그 의미조차 미지로 남아 있는 말을 쓰시는군요.”


“조국은?”


“그게 어느 위도 아래 자리 잡고 있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미인은?”


“그야 기꺼이 사랑하겠지요. 불멸의 여신이라면.”


“황금은?”


“당신이 신을 증오하듯 나는 황금을 증오합니다.”


“그래! 그럼 자네는 대관절 무엇을 사랑하는가. 이 별난 이방인아?”


“구름을 사랑하지요.... 흘러가는 구름을.... 저기.... 저.... 신기한 구름을!”


 


- 이방인 / 보들레르 『파리의 우울』 -


 


 


다다. Dada. 아무것도 아니다. 허무라 표현되기 이전의 언어로 아무 것도 아니다. 아니었다. 난 이 사회를 이해할 수가 없다. 시월의 혼란에 서울의 우울함이 보들레르가 소리친 파리의 우울처럼 나를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캠퍼스는 두 가지 모습의 형상으로 나뉘어있다. 손팻말을 들고 있는 무리와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지나치는 무리. 그리고 나.


 


역사교과서 국정화라는 이슈가 이 도시를 집어 삼킨듯해도 일상은 여전히 지난다. 학교에서도 거리에서도 지하철에서도 다른 세계 다른 사람들이 다르게 시간을 지난다. 강의실은 오늘도 변함없다. 담당 교수는 태연하게 시험지를 나누어 주고 나는 시험을 본다. 비슷한 풍경이 다시 반복되고 다시 분주하게 움직이는 종이와 샤프펜슬이 규칙적으로 이쪽에서 저쪽에서 앞뒤로 공기를 타고 퍼진다.


 


여긴 서울이지만 서울이 아니기도 한가 싶다. 여긴 한국이지만 아니기도 하다. 나는 여기 있지만 아니기도 하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몹시 집으로 가는 길이 싫다. 훌쩍 건너뛰어 내 집 앞으로 갈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고 싶은 심정이다. 사람들이 내뿜는 숨과 어디서 흘러나오는지 알 수조차 없는 역겨운 향수 냄새까지 미쳐버릴 것 같은 심정으로 지하 어디쯤을 걷고 있다.


 


시간을 보려다 서윤이의 메시지를 발견했다.


 


‘저녁에 집으로 갈게.’


‘동거인이 있어서 안 됩니다요~’


 


문자를 전송하기가 무섭게 전화가 온다.


 


“동거인? 이재인, 너 정말 동거 시작했어?”


“응, 왜?”


“그, 그럼 밖에서 잠깐 만날까?”


“그러지 뭐. 장소와 시간 정해서 보내줘. 나 지금 걷는 중이라 숨차거든.”


 


학교를 때려치우든지 공간 이동을 하든지 결정을 해야겠다. 그리 멀다고 생각하지 않은 학교 가는 길은 이제 아니다. 더욱이 버스를 탈 수 없게 만든 지상의 일은 나를 몰아세우며 정신없이 내게로 달려온다. 미친 나라. 넋이라곤 찾아보려야 볼 수도 없는 이 쓰레기 같은 정부의 정신 지체아들이 득실대는 나라에서 살아있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어 이제 스물의 나이에 화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건지. 아, 나는 너무 건강해서 탈이야.


 


“얼굴빛이 왜 그래? 완전 흙빛이네. 뭔 일 있었어?”


“후유, 살아있기 힘들다.”


“아이구, 또 시작인가 보다. 너의 진지함을 위하여~”


“뭐 해 먹을까? 먹고 싶다는 욕망마저 없다면 살아있지 않아도 될 텐데. 아, 정말 싫다. 이 쓰레기장 같은 부패의 나라.”


“이재인. 정신 놓지 마. 그런 쓰레기들에 떠밀려 표류하지 않으려면. 그거 생각나?”


 


얼빠진 나는 갑작스러운 질문과 그녀가 튕기는 기타 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녀는 몇 년 전 한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대한민국은 썩은 게 급기야 살을 파고들기 시작했다고 하며 이 노래를 불러 주었다. 바람이 분다. 그 겨울 술집에서 누군가는 밤새 욕을 해대고 있던 그때, 우리는 어느 아파트 단지의 놀이터에서 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바람이여, 영원 하라! 슬퍼지기 위하여 밤공기를 마셔야 했던 그 여고생이 지금의 나와 너이다.


 


“나의 노래를 들어 줄 단 한 사람이라도 곁에 있어 준다면 난 음악으로 살아날 수 있어.”


 


기억은 애써 찾아내려 할 때 드러나는 시간일까. 그때를 기억하는 매개물이 있기에 가능한 걸까. 이 노래를 들으면 그날 그 시간이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진다. 나는 무엇으로 살아날 수 있을까. 여기서 태어나 유년을 보내고 서울을 고향이라 말해도 되는지 어떤지를 고민하던 십 대를 지나왔다. 그리고 지금, 나는 고향을 잃었다. 어쩌면 나의 고향은 저 구름 너머 어디쯤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서울이 싫다. 이 공간의 우울한 공기는 나를 가둔다.


 


“금지야, 나 서윤이 만나고 올 게.”


“서윤? 누구?”


“아, 경연 오빠 후배야.”


“그래그래, 이재인 주변에는 다양한 종이 있어. 그치?”


“다양하다? 에, 그렇긴 한가 보다. 집에 몇 번 쳐들어 왔었어.”


“오, 별일은 없으셨죠?”


“별일의 종류도 다양하니까 쉽게 묻지그래.”


“장난이야, 어서 다녀와. 올 때 소주 어때?”


 


겨울이 가까이 오긴 했나 보다. 밤도 더욱 짙은 빛이고 바람도 더 날카로워졌다. 골목길에 노란 가로등 빛도 더욱 진하다. 이 골목길을 돌아 나가면 다시 거리는 현란해진다. 밤을 끌어안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이 적나라하게 발가벗고 드러난다. 네온사인의 깜박임과 늘 빛을 내는 빨강 십자가와 어디선가에서 새어 나오는 고기 굽는 냄새와 소리가 거리를 채운다. 그나마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것은 어디든 자신만의 구석진 곳으로 기어들어간 탓이겠지.


 


“동거인한테 미안해서 어쩌냐?”


“흠, 내 동거인은 자비로워요. 무슨 일?”


“꼭 무슨 일이 있어야 연락을 하는 것은 아니지.”


“바쁘지 않아? 시험 기간부터 요즘 광장 앞으로 아니야?”


“그렇지. 바빠야 하지.”


“동거인이 화내겠다.”


“내 동거인에 왜 그리 신경 쓰시나? 괜찮습니다요. ”


 


실내의 불빛이라 알아차리지 못한 탓인가. 서윤은 초췌해 보인다.


 


“사람에게 시달리는 거 못할 짓이야. 소주 마실 건데 넌?”


“소주라.... 소주? 소주 좋지, 뭐.”


 


우울한 시절에는 소주가 최고라던 누군가의 말이 생각난다. 서윤은 우울한 것이 아니라 암울해 보인다. 그 상태를 이미 지난 듯한 모습에 동조해 주지 않으면 더해질 것 같다고나 할까. 오늘은 그의 말을 듣고 있기에도 벅찰 것 같다는 생각이어서 술은 안 먹으려고 생각하는데 서윤은 벌써 몇 잔을 들이 켜는 중이다.


 


“안 마셔? 자, 첫 잔은 내가 따랐으니까.”


“그래, 알아서 마시자구.”


“오늘 학교에서 한 교수가 말하더라. 다른데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학점 못 맞아서 나중에 후회해 봤자 되돌릴 수 없는 거라고.”


 


그런 말은 늘 듣는 말이라 별로 이상할 것도 없는데 그는 꽤 신경이 거슬렸나 보다. 하기는 역사학도로서 화가 날만도 하겠지 싶어 가만 듣고 있었다. 그는 너무 빨리 술을 삼킨다. 언젠가 길바닥에 주저앉아 날을 샜던 시간이 떠오르면서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아, 걱정 마. 이재인 지난번처럼 신세 지지 않을 게.”


“그래? 지금 나도 그날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묘하네?”


“그때와는 좀 다르지. 술이 나를 먹어치우는 일에 이력이 붙어서.”


“그래, 뭐 아무러면 어때. 마시고 싶으면 마시고.”


“욕이 막 나오려고 하는데 니 앞에서 참 말하기가 힘드네. 아, 정말 썩었어. 이 나라는.”


“이제야 그 썩은 내를 맡으신 거는 아니실 테고 새삼스럽지 않아? 이미 정도가 넘치는 거 같은데.”


“넌 참 신기한 인간이야. 세상에 없는 듯 살아는 있으니.”


“이 말을 또 듣는군. 어쨌거나 뭐, 살아있는 건 맞지. 현 존재로 니 앞에 있잖아?”


“누가 또 그런 말을 했어? 흠, 그도 꽤 감각이 있군. 아니, 나만큼이나 잘 알고 있다는 소린가? 그러면 나만큼이나 오래 만나 왔단 말인가?”


“김서윤. 엉뚱한 소리 그만하고 하고 싶은 말이나 꺼내시지.”


“그래, 그래. 교수부터 저 모양이니 내가 학교에 가고 싶겠냐고. 주변이 모두 앞만 보고 걸어가는데 혹시라도 누군가 나를 불러 세울까 봐 겁이 나는 거 알어?”


 


그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비슷한 감정에 휘둘려 자신을 스스로 기만하는 게 아닌지 되묻고 있던 나는 그 앞에서 어떤 말도 행위도 할 수 없었다. 서윤은 그저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가 그 앞에 있으면 될 뿐이었다. 그의 신념은 형체 없이 휘청거리고 있기에 그는 지금 이 시각 확신에 찬 한마디가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허공을 향해 던지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그래,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기에 나를 불렀을지도 모르지.


 


“이재인. 너는 왜 사냐? 널 보면 세상에 걱정근심은 없고 태평해 보이는데 그 비결 좀 알려주라.”


“내가 그렇게 보여? 다행이네. 술 더 마실 거야?”


“응.”


 


아, 이 집 이름이 ‘양은냄비’였다. 70년대를 추억하는 공간이 컨셉인지 이 안은 과거 그 어느 시간에 멈춰있다. 빛 바란 나무로 엉거주춤 엮어놓아 아슬아슬 무너질 것만 같은 의자와 둥근 알루미늄으로 만든 탁자, 가운데를 뚫어 가스레인지가 숨어있도록 한 장치, 주방의 낡은 무명천 가리개, 이 풍경이 지금 이 나라를 보여준다는 생각이 든다. 코스프레. 시간의 멈춤. 서윤은 옆으로 고개를 떨어뜨린 채 어느새 잠이 들어버렸다.


 


늦으면 소주는 자기가 사다 마시고 있겠다는 금지의 메시지. 그래, 그래야 할 것 같아. 잠시 그에게 시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양은냄비의 주인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남은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미안한 마음에 안주도 하나 더 시키고 아무래도 위험천만하게 잠든 서윤의 옆으로 의자를 옮겨 앉는다. 내 팔자하고는 참 기구하구나 싶은 마음에 혼자 피식 웃고 말았다.


 


내 곁에 이렇게 있는 너를 바라보며 나는 잘살아내고 싶어진다. 너의 꼿꼿한 마음이 언젠가는 빛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날이 언제 올지는 모르겠지만 너의 곁에 나는 지금처럼 있을 것 같다. 시간이 거꾸로 가지만 않는다면 나는 이렇게라도 버티어낼 것 같다. 그리고 세 사람이 발그레한 얼굴빛에 드리운 작은 웃음으로 음악과 물소리와 한밤의 정적을 안고 내게로 온다. 보들레르의 그 우울함이 이 시대를 꿰뚫고 있어도 나는 어떻게든 살아야 할 것 같다. 아, 소주가 달짝지근하게 목구멍을 타고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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