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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우리에겐 무슨 일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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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을 ‘올해’라고 부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매번 한 해는 365일로 똑같지만, 올해는 왜인지 더 길었던 한 해였던 것 같다. 아마 나만의 느낌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럼 한 번 정리해 보자. 이 길었던 한 해를, 우리는 어떤 다사다난한 일들을 겪으며 헤쳐나왔을까. 2016년을 총정리해보자.




1월 1일

 2016년 새해가 밝았다. 우리 중 누구도 이렇게나 다이나믹한 한 해를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전조는 있었다. 2016년은 1월 1일 0시를 기해,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구가 무효화되는 대사건을 겪으며 시작되었다.


 2014년 10월 헌법재판소에서 나온 판결 때문이었다. 헌법재판소는 현재의 선거구별 인구 격차가 지나치게 크니, 새롭게 선거구를 개편해 가장 큰 선거구와 가장 작은 선거구의 인구 비율을 최대 2:1로 조정하라고 판결했다. 헌법재판소는 2015년 12월 31일을 선거구 합의의 마감 기한으로 설정했다.


 이에 따라 선거구 합의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국회는 마감 기한까지 선거구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인구가 많은 도시 지역 지역구를 나누거나 인구가 적은 농어촌 지역구를 통합해야 하는데, 지역구를 나누면 의원정수가 늘어나고 지역구를 합치면 현직 의원이 자기 지역구를 잃어버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1월 1일 0시를 기해 국회의원 선거구는 무효화됐다. 다가오는 20대 총선 예비후보들의 선거운동이 모두 불법화되었다. 이 합의는 결국 2월 23일에 가서야 이루어진다. 지역구 의석은 253석으로 늘어난 대신 비례대표 의석은 47석으로 줄어 의원정수 300석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합의가 됐다.


 이 기간 동안 선거관리위원회의 조치로 예비후보의 선거운동 자체는 가능해졌으나, 지역구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선거운동을 해야 하는 정치인들, 특히 이름을 많이 알려야 하는 신인 정치인들의 고충이 있었다.


 


2월 2일

 국민의당이 창당했다. 뭔가 아주 오래도록 우리 곁에 있었던 정당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2015년 12월 13일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안철수 의원이 주축이 되어 올 2월 2일에 만들어진 정당이다.


 안철수 의원을 비롯해 김한길 의원 등의 새정치민주연합 탈당파와, 천정배 의원을 중심으로 한 ‘국민회의’ 계열에 정동영, 박주선, 주승용, 박지원 등의 호남 거물 정치인들까지 합세하며 나름 원내교섭단체까지 꾸린 정당을 만들었다.


 안철수-천정배 공동지도체제로 출범한 이 정당은 이 포지션대로 4.13 총선을 치뤘다. 이후 홍보위원장 리베이트 사건에 책임을 지고 두 대표가 물러났고, 6월 29일부로 박지원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출범했다.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린지 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전당대회를 통한 공식 당대표를 선출하지 못했다.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2월 5일부터 김동철 의원이 맡고 있다.





2월 10일

 개성공단 가동이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중단되었다.


 사건은 올 2월 2일, 북한이 광명성 4호 로켓을 발사하면서 시작되었다. 한국 정부는 이것을 북한의 도발로 규정했고, 며칠 뒤인 2월 10일 협의 없이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개성공단을 통해 유입된 자금이 북한의 핵무장에 이용되었다는 것을 그 이유로 들었다.


 다른 문제를 떠나, 이는 중대한 재산권 침해 행위에 해당한다. 실제로 대한민국 정부의 이 조치로 인해 개성공단 입주 업체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지난 5월 20일 개성공단 가동중단 100일을 맞아 개성공단기업협회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남측 기업은 100일동안 최소 8152억 원의 손해를 입었다. 입주기업에 속한 노동자 중 80%가 직장을 잃고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개성공단을 비롯한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중단하기 위해선 통일부 장관이 반드시 청문을 실시하여야 한다. 이마저도 즉시 중지시키는 것이 아니라, 6개월 이내의 기간을 정해 서서히 중단시켜야 한다. 하지만 개성공단 중단은 이 법률에 따른 절차를 위배했다. 명백한 불법행위였다.


 개성공단에 투자된 돈이 북한의 핵개발 자금으로 흘러들어갔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신빙성이 부족하다. 당시 현안보고에서 정세균 의원의 증거 제시 요구에, 홍용표 장관은 “그에 대한 우려가 있다는 것”이라며 “자금이 들어간 증거 자료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와전된 것”이라고 밝혔다. 아무런 근거가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판단에 따라 개성공단 가동은 중지되었으며, 북한은 개성공단 자금을 모두 동결한 상황이다. 이미 자산을 청산하겠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의 증언에 따르면, 이 조치 역시 최순실 씨의 불법적 국정개입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알려졌다. 어쩌면, 우리는 아주 기나긴 복선을 보고 있었던 셈이다.




2월 23일

 정의화 국회의장이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안을 직권상정했다. 현행 국회법상 직권상정은 여야 교섭단체 사이에 합의가 있거나,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만 가능하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이병호 국정원장을 통해 당시 상황이 국가비상사태라고 판단,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했다. 해당 내용이 무엇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결국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108명이 테러방지법의 표결 저지를 위한 필리버스터, 무제한토론을 신청했다. 1964년 신민당 김대중 의원이 김준연 의원의 구속 동의안 표결을 저지하기 위해 진행했던 필리버스터 이후,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52년만에 벌어진 필리버스터였다.


 당시 김대중 의원이 세웠던 5시간 19분의 기록은 첫 타자였던 김광진 의원이 5시간 33분이라는 기록으로 깨고 출발했다. 다음으로는 국민의당 문병호 의원이 올라왔고, 그 다음으로 은수미 의원이 올라와 10시간 18분을 발언하면서 역대 최장 기록을 세웠다.


 다음으로는 필리버스터가 새누리당의 공약사항이었음을 지적해 새누리당의 홈페이지를 마비시킨 신경민 의원, 공천에 탈락했는데도 불구하고 올라와 5시간 4분의 연설을 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 강기정 의원, 5시간 17분의 연설을 마치고 내려와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서기호 의원, SNS 여론을 많이 전달한 김용익 의원, 박정희 시대의 노동정책에 항의하다 분신한 전태일 열사의 동생인 전순옥 의원, 11시간 39분을 발언하면서 다시 최장 기록을 세운 정청래 의원 등이 기억에 남는다.


 이후 필리버스터는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의 ‘전략적 판단’에 의해 종료되었다. 필리버스터 종료를 두고 당내에서는 심한 잡음이 일었고, 그 과정에서 박영선 의원 등의 발언은 큰 논란을 낳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이종걸 원내대표의 12시간 31분 최장 기록을 남기고 3월 2일 오후 7시 30분, 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한 필리버스터는 종료되었다.


 대한민국 국회는 192시간 27분이라는 세계 최장 필리버스터 기록을 세웠다. 2위 기록인 58시간과는 몇 배 이상 차이가 나는 숫자다. 3월 2일 통과된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은 현재까지 시행 중에 있다. 국정원은 안보를 이유로, 자의적인 기준에 따라 설정한 ‘테러 위험 인물’을 합법적으로 감시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 지금도, 그러고 있을 것이다.





3월 9일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국이 있었다. 이날을 시작으로 총 5번기의 대국이 있었고, 이 가운데 제 4국을 제외하고 4번의 대국에서 모두 알파고가 승리했다. 인간이 컴퓨터에 대항에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보드게임이었던 바둑마저 이제 챔피언의 자리에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앉게 되었다.


 알파고의 승리를 예측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기술의 발전이 더욱 필요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인공지능 기술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인공지능의 인간에 대한 우위는 보다 확실해졌다.


 기술은 생각보다 빠르게 성장한다. 하지만 인간은 어떤가. 인간은 그 기술만큼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다. 우리 인류 공동체는, 그 빠르게 성장한 기술을 제대로 다룰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해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저 기술은 우리에게 약이 될 것인가 독이 될 것인가. 명확하게 확신할 수 없다. 왜인지 공포감이 엄습하는 대목이다.


 물론 그렇다고 기술의 발달을 막아세울 순 없다. 막는다고 막아지는 것도 아니고, 막는 것이 옳은 방향도 아니다. 그럴수록 기술을 다루는 방향에 대한 수준 높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이 기술은 인류의 복리를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적용될 수 있을까. 생각보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많지 않다.


 알파고가 4국에서 패배한 뒤, 알파고 프로그램의 모니터에는 이런 문구가 떴다.


 “Alphago resign:The result “W+Resign” was added to the game information.”

 (“알파고 패배 기록이 게임 정보에 추가되었습니다.”)




3월 20일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쿠바를 방문했다.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88년 만의 방문이었다.


 미국의 턱밑에서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켰던 쿠바. 그래서 언제나 미국의 최전방 충돌구역이 되었던 쿠바였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사태 때는 핵전쟁의 가능성까지 공공연하게 떠돌았었다. 하지만 교황의 중재로 2015년 교황의 중재를 통해 국교를 정상화한데 이어, 올해 3월 20일에는 미국 대통령의 공식 방문까지 받게 되었다.


 어지러운 세상에도, 화해와 희망의 징표는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4월 11일

 4월 11일, ‘어버이연합 게이트’로 불리는 사건이 <시사저널>의 보도로 처음 공개되었다. 어버이연합이 세월호 특별법 반대집회 과정에서 2500만 원을 시위대에게 나누어줬다는 것이 그 골자였다.


 이후 이어진 <시사저널>과 <JTBC>의 보도를 통해, 어버이연합이 유령회사를 세워서 시위대에게 일당을 제공했다는 것이 보다 구체적인 정황으로 드러났다. 무엇보다 이 유령회사에 자금을 대 준 것이 전국경제인연합회, 전경련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크게 논란이 일었다.


 또한 이 전체의 배후에 청와대 허현준 행정관이 있었다는 점 역시 드러났다. 결국 그간의 어버이연합 관련 집회들이 청와대의 기획 하에 재벌이 자금을 지원해, 어버이연합이 실행하는 로드맵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후 어버이연합 관련 간부들이 정상적인 의혹 해명 과정 없이 잠적하면서 파장이 커졌다.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해 검찰은 현재까지도 결론을 내지 않고 시간을 끌고 있어, 늑장 수사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모든 집회는 일당”이라며, “보수 2만원, 진보 5만원, 교회 2만원”이라던 김미화 탈북어버이대표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과연 연말 200만 집회의 자금책은 누구였을까. 다른 건 몰라도 일단 1천억 정도는 현금으로 인출할 수 있는 자금력이 있어야 한다.




4월 13일

 대한민국 제 20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모든 당이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선거를 치뤘다. 새누리당은 ‘진박 감별사’ 논란과 비박계 공천 배제, 이를 계기로 한 김무성 대표의 ‘옥새 탈주’로 혼란스러웠다. 더불어민주당은 공천 컷오프 과정에서 심한 잡음이 일었다. 국민의당은 야권연대 문제로 분열이 있었다. 기독당과 민주당이 컷오프 의원의 입당으로 원내정당이 되어 선거를 치르는 이변도 발생했다.


 물론 그 결과보다 심한 이변은 아니었을 것이다. 새누리당이 국회선진화법 무력화선인 180석, 심지어 개헌선인 200석까지 노리던 새누리당은 122석을 얻어 2당으로 주저앉았다. 많은 중진들이 낙선했다. 더불어민주당은 호남에서 참패했지만 수도권에서 압승하고 영남권 의석을 얻어가며 123석을 얻어 1당이 되었다. 국민의당은 호남 의석과 비례대표 의석을 가져가 38석의 굳건한 3당이 되었고, 정의당은 6석을 가져가 나름의 승리를 이뤄냈다. 무소속은 모두 11석, 이중 여당 성향이 7명, 야당 성향이 4명이었다.


 여소야대 체제가 열렸다. 야당 성향 의석을 모두 합하면 무려 171석이라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20대 국회를 이끌어갈 전반기 의장단으로는 더불어민주당 출신 정세균 의장, 새누리당 심재철 부의장, 국민의당 박주선 부의장이 선출되었다.





5월 10일

 필리핀 대통령 선거에서 로드리고 두테르테 후보가 당선되었다.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초법적인 마약범 사살 작전을 예고하던 그였다. 흔히 ‘필리핀의 도널드 트럼프’라고 불렸지만, 막상 취임한 그는 예상보다 더 심각한 인권 유린을 자행하고 있다.


 완전사형폐지국가인 필리핀에서, 절차 없이 마약범에 대한 즉각 사살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12월 12일 필리핀 경찰의 발표에 따르면, 두테르테 취임 이후 절차 없이 사살된 사람만 5927명에 달한다. 이중 2086명은 경찰에 의해 사살되었으며, 나머지 3841명은 민간인 자경단에 의해 살해되었다.


 얼마 전에는 이런 불법적 살인을 반대하는 인권운동가 역시 사살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는 일도 있었다. 두테르테 대통령 자신도, 시장 재직 시절 마약범을 살해한 적 있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필리핀 안에서 두테르테의 인기는 식지 않고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놓지 않기가 그만큼 힘들어지는 세상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다시 민주주의로 돌아가, 그 민주주의의 본질적 가치를 찾아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한다.




5월 11일

 이탈리아가 동성 커플의 시민결합을 허용했다. 이 조치를 통해, 유럽연합 28개국은 단 한 국가도 빠짐없이 동성 커플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게 되었다. 2015년 6월 26일 대법원 판결을 통해 미국 전역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상황에서, 유럽연합의 모든 국가가 동성 커플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는 희망적인 소식이 다시 한 번 들려온 것이다.


 물론 여전히 유럽에서도 많은 국가들이 동성 커플의 ‘시민 결합’을 허용하며 법적 지위만을 보장하고, 이를 ‘결혼’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입양 역시 불가능한 국가가 많다. 하지만 세상은 아주 조금씩,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당장 지난 12월 26일에는, 대만 입법원 사법법제위원회가 동성 간의 결혼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본회의를 통해 최종 통과 여부가 결정된다. 내년 4월 경에는 모든 절차를 마무리하고, 대만이 아시아에서 최초로 동성 결혼을 허용할 수 있는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는 사이 한국의 법원은 지난 5월 25일, 김조광수-김승환 씨의 동성결혼 합법화에 관련된 소송에 대해 각하 결정을 내렸다. 12월 6일에는 이들이 낸 항소 역시 기각했다. 하지만 당시 서울서부지법은 “성적 소수자라고 하여 그 개인의 권리실현에 장애가 있거나 미흡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는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의 입법적 결단을 통하여 결정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모두, 올 한 해 이 땅 위에서 벌어진 일들이었다.





5월 14일

 옥시의 신현우 전 대표가 구속되었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 때문이었다.


 사건이 처음 알려진 것은 5년 전인 2011년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정부는 이 사건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5년이 지난 2016년에 와서야 제대로 된 수사를 시작했다. 수사 결과 연구결과의 조작 등이 밝혀졌고, 옥시레킷벤키저 본사 측에서 직접 사과하는 일까지 있었다.


 정부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 접수에 신고된 사망자는 464명. 전체 피해자는 2399명에 달한다. 가습기살균제가 처음 판매된 것이 2001년이고, 문제가 알려진 2011년까지 10여년간 판매되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더 많은 사망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안방의 세월호 참사’라고 불리는 이 거대한 화학 참사에서, 정부와 기업의 일관된 책임 회피와 변명은 어쩌면 사건 그 자체보다 더 큰 충격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5월 17일

 강남역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강남역 일대에 포스트잇을 이용한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현장에서 수 차례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고, 이 사건을 기점으로 페미니즘과 한국 여성들이 겪어야 하는 사회적 현실에 대한 논쟁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자세히 말하자면 어려운 문제들이 끝도 없이 산적해 있는 사건이다. 물론 이 사건을 두고 충돌했던 두 진영 모두, 완벽했다고 말할 순 없다. 페미니즘을 외치는 사람들조차 몇몇 가지의 실수를 저질렀다.


 하지만 그들은 어째서 그 작은 실수에만 분노하는가. 한 여성을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한 사람에게는 왜 분노하지 않는가. 여성을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지에 몰아넣은 이 사회에 대해서는 분노하지 않는가. 왜 그 거대한 폭력 앞에선 하나같이 입을 다무는가.


 답은 단순하다. 모두가 그 가해자이기 때문이다.




5월 28일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노동자 김모 씨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시 한 번 포스트잇을 이용한 추모가 이어졌다.


 저비용이라는 환상이 만들어낸 사회 전체의 살인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열아홉의 노동자를, 기차가 달려오는 스크린도어 뒤로 몰아넣은 사회. 그 대가로 쥐어준 140만원 남짓의 월급봉투. 세월호 참사에서 사망한 학생들과 같은 나이인 그 노동자는, 아주 우연찮은 죽음을 맞아야만 했다.


 여기 국가는 없다. 자본의 폭주 뒤에 죽어가는 노동자를 구해내지 못하는 그 스크린도어 뒤에, 국가는 없다. 전태일이 분신하고 40년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기 국가는 없다.


 컵라면 하나 비우지 못한 생일 하루 전날, 그 젊은 노동자는 어쩌면 46년 전 전태일과 같은 말을 속으로 되뇌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시대는 돌아와 다시 한 명의 노동자를 죽였다.





6월 21일

 영남권 신공항 논의가 백지화되었다. 정부는 영남권 신공항의 후보지였던 가덕도와 밀양 모두가 신공항 입지로서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김해공항을 확장하기로 결정했다.


 영남권 신공항을 두고 선거 때마다 논란이 일었던 것이 벌써 한참이다. 영남권 신공항 논의 자체는 1990년대부터 나왔다. 백지화에 백지화를 거듭했던 영남권 신공항은 다시 한 번 백지화를 맞았고, 김해공항의 확장이라는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김해공항 확장 자체가 얼마나 많은 수요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비용 측면에선 확실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 이어졌던 소모적인 정치논쟁이 다시 한 번 반복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6월 24일

 영국이 국민투표를 통해 EU에서 탈퇴하기로 결정했다. EU의 전신인 ECC에 영국이 가입한 이후 43년만에 영국은 유럽연합을 탈퇴하게 되었다.


 잔류파였던 노동당 조 콕스 하원의원이 탈퇴파 극단주의자의 총격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할 정도로 격렬하게 이루어졌던 선거였다. 그러나 탈퇴 결정 직후 탈퇴파 정치인들은 하나둘 말을 바꿨다. EU 분담금으로 내는 5500억원 정도를 모두 의료복지에 사용할 수 있다던 정치인은 발언을 철회했고, 이민자를 완전히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 정치인 역시 “엄격히 관리하자는 것일 뿐”이라며 말을 바꿨다.


 파운드화와 유로화가 폭락했고, 대신 엔화가 폭등하는 국제시장 급변도 발생했다. 약속에 따라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사퇴하고 테레사 메이가 신임 총리로 선출되었다. EU 탈퇴 협상은 아직 개시조차 하지 못했으며, 2018년 10월까지는 협상 완료를 목표로 삼고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7월 6일

 세계 각지에 순차적으로 ‘포켓몬 고’가 출시되기 시작했다. 출시 직후부터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쓰러져가던 닌텐도 사를 한 번에 일으켜 세웠다. 닌텐도 사의 주식은 하루 만에 두 배 가까이 폭등했다.


 한국에서는 지도 데이터 문제로 속초에서만 플레이가 가능해, ‘속초 원정’과 같은 웃지 못할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한국의 구시대적 인터넷 규제가 다시 한 번 문제가 되었으나, 현재까지 포켓몬 고는 한국에서 플레이할 수 없다.




7월 7일

 이날 저녁, 교육부 나향욱 정책기획관이 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민중은 개, 돼지와 같다”며 “우리나라도 신분제를 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등장했던 이 대사는, 어쩌면 한국의 상류층들이 국민들을 대하는 방식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나 입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이 대사가, 언제나 문학작품을 뛰어넘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선 고위 공직자의 입밖으로 나오는 사건이 벌어졌다.


 결국 나향욱 정책기획관은 사과했으며, 교육부는 나 기획관을 파면조치했다. 나 기획관은 이에 항소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것이 나 기획관의 발언이었는지, 아니면 교육부의 파면조치였는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기로 하자.




7월 13일

 대한민국 국방부가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경상북도 성주군 성산포대에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사드 배치의 필요성을 두고 각종 논란이 이어졌고, 배치의 비민주성에 대해 비판이 이어졌다.


 특히 사드 배치 대상 지역으로 선정된 성주군에서는 큰 반발 여론이 일어났다. 지역과의 협의 없이 시설을 들여오겠다는 졸속 발표가 분노를 더 크게 만들었다. 이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은 몽골 순방을 떠났고, 황교안 총리는 성주로 내려갔다 계란 세례를 맞는 일까지 벌어졌다.


 결국 사드 배치 위치는 수정되어 성주군 초전면 롯데스카이힐 골프장 부지에 사드를 배치하기로 결정되었다. 제대로 된 타당성 평가도 없이 이루어진 배치와 졸속 이전 역시 논란이 되었다. 또한 바뀐 사드 부지가 칠곡군과 인접해 있어 칠곡군 주민들의 항의까지 받게 되었다.


 중국은 한국의 사드 배치 이후 한국에 대한 경제 제재를 강화하고 있다. 상용복수비자 발급이 중지되었으며, 한국 연예인들의 활동이 제재되고 있다. 내년 1월과 2월에는 한국행 전세기 출항을 금지한다고 알려졌다. 지난 12월 16일에는 중국 항공모함이 서해에서 최초로 실탄 사격훈련을 하며 무력 시위를 벌이기까지 했다.


 졸속으로 벌어진 정부의 조치 하나가, 경제 전체를 사지로 밀어넣고 있다.





7월 30일

 이화여대에 경찰이 투입되었다. 대학 측의 일방적인 미래라이프대학 설립을 저지하기 위해 학생들이 본관을 점거하고 회의실의 교수와 직원을 약 46시간 동안 감금하자, 최경희 총장이 직접 경찰 진입을 요청한 것이다. 대학에 경찰이 진입하는 비문명적인 일이 학교 측의 요청에 의해 벌어진 것이다.


 현장에서는 ‘운동권’에 대한 배제가 이슈가 되었다. 구시대적 사회운동 방식을 버리지 못한 이들에 대한 배제였지만, 본질적으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사회운동에 대해 “어떤 정치세력과도 무관하다”는 주장은 부적절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다만 이런 방식으로 투쟁한 이화여대 학생들은, 근래 학생사회에서 보기 드물던 승리를 거두었다. 최경희 총장은 미래라이프대학 설립을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학생들은 최경희 총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본부 점거를 이어갔고, 최경희 총장이 정유라 씨의 입시비리에 관련되어 10월 19일 사임하면서 본부 점거를 해제할 수 있었다. 놀라운 성과였다.


 대학가에서는 이외에도 여러 충돌이 있었다. 고려대학교는 이화여대와 비슷한 미래대학 설립 건으로 본부 점거가 이루어졌으나 대학 측의 철회로 점거가 해제되었다. 서울대학교는 학생과의 약속을 파기한 시흥캠퍼스 설립 계획과 비민주적 의사소통 구조 문제로 지난 10월 10일부터 현재까지 본부 점거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8월 31일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부동의 국내 1위 해운사였던 한진해운이 해운경기 불황과 경영상의 실책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해운사업이 휘청였다.


 한진해운의 경영난이 알려지면서 항구에서는 한진해운의 배가 들어오는 즉시 선박과 물류를 가압류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한진해운 측은 급한대로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바다 위에서 떠돌며 항구에 입항하지 않는 방법을 취했고, 이에 따라 물류의 유통이 정지되며 물류 대란까지 벌어지고 한진해운 선원들이 표류하는 일이 벌어졌다.


 결국 한진해운은 청산 절차에 들어갔고, 부동의 해운 1위 기업은 허망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제대로 경영하지 못하는 경영자,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정부는 다시 한 번 국민에게 피해를 입히게 되었다.





9월 12일

 경상북도 경주시 남남서쪽 8km 지점에서 규모 5.8의 강진이 발생했다. 대한민국 영토 내에서 기록된 지진 중 가장 규모가 큰 지진이었다. 다행히도 사망자는 없었고, 23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정부의 재난 늑장 대응이 크게 문제가 되었다. 국민안전처 홈페이지는 마비되었고, 재난경보 역시 울리지 않았다. 주변의 원자력 발전소가 다시 한 번 논란이 되었다. 지진해일로 인해 최악의 원자력 발전소 참사가 바로 옆 나라에서 벌어진 것이 겨우 5년 전이지만, 원자력발전소 주변의 지진에 대한 한국의 대응 체계는 일본에 비할 바조차 못 되고 있었다.




9월 25일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현장에서 경찰의 위법적인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농민 백남기 씨가 결국 서울대병원에서 사망했다. 백남기 씨 사망의 주범이었던 경찰은 백 씨의 위중 소식이 들리자마자 서울대병원 안에 병력을 투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백남기 씨는 사망했고, 경찰은 백남기 씨를 부검하겠다며 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은 이를 한 차례 기각했다가 검경의 재청구에 ‘유족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며 조건부로 영장을 발부했다. 경찰은 강제 부검을 시도했지만, 시민의 저항에 밀려 최종적으로 집행을 포기했다. 민중총궐기 당시 경찰청장이었던 강신명 씨는 끝까지 사과하지 않았다.


 서울대병원 백선하 교수의 사망진단서 역시 논란이 되었다. 사망 원인을 ‘심폐정지’로 기록하고 이를 ‘병사’라고 주장한 백 교수는 결국 보직해임 처분을 받았다.


 병원에 오랜 기간 입원해 있었기에 기록이 충분하고, 이미 법원이 “경찰의 위법적 물대포에 의해 쓰려졌다”고 판단을 받은 백남기 씨를 부검하겠다며 나선 경찰. 1987년 이한열 열사의 시신을 탈취하던 경찰과, 1991년 박창수 열사의 시신을 탈취하던 경찰에서, 그들은 하나도 진보하지 않았다. 단 한 발자국도.




11월 9일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누르고 45대 미합중국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직접투표에서는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앞섰으나, 미국의 독특한 선거제도인 주별 승자독식제가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혐오발언을 일삼던 트럼프는 이제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혐오는 이제 일상을 넘어 권력까지 얻었다. 그것도 국민의 선거에 의한 권력이었다. 그가 꾸리는 내각의 면면 역시 화려하다. KKK를 옹호하는 법무부 장관,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하는 노동부 장관, 에너지부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에너지부 장관 등등. 절망의 드림팀이 완성되고 있다.


 기득권의 정점이었던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이제 정치권력까지 한 손에 쥐게 되었다. 우리가 민중의 힘으로 지켜냈던 마지막 보루를, 하나둘 잃고 있는 기분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본질적인 성찰이 필요할 것이다. 과정으로서의 민주주의를 넘어선, 철학과 이념으로서의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이 반드시 필요한 4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의결되었다.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을 제외하고 299명의 의원들이 참석한 상황에서, 234명의 찬성으로 가결정족수인 200명을 훌쩍 넘겨 통과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12월 9일 7시 3분부터 직무가 정지되었다. 대통령으로서의 직무는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행하게 되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2016년 연말을 수놓은 거대한 비리 사건의 정점이었다. 조선일보와 청와대의 경쟁으로부터 터져나온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논란이 그 시작이었다. 주목받지 못했던 이 사건을 한겨레가 크게 터뜨렸고, JTBC의 태블릿PC 입수가 결정타였다.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을 통한 재벌들의 뇌물. 최순실 씨의 불법적 국정개입. 자금 세탁. 정유라 씨의 입시비리와 학사비리. 문화계 블랙리스트 제작. 증거인멸.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해임. 삼성의 승마협회 지원. 우병우 민정수석의 비리. 세월호 7시간과 의료 관련 비리. 대법원장 사찰 사건 등등. 수많은 비리들이 이 사건을 중심으로 점철되어 있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직무가 정지된 상태로 새해를 맞고 있다. 사건이 처음 밝혀졌을 때만 해도 탄핵은 불가능하다는 비관론이 우세했다. 하지만 10월 29일 3만 명으로 시작되어, 12월 3일 230만 명까지 불어난 거대한 촛불의 목소리가, 이 모든 것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대통령의 신년사 없이 한 해를 맞을 수 있게 되었다.


 2016헌나1 대통령(박근혜) 탄핵 사건. 헌법재판소로 넘어가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이다. 헌법재판소는 빠른 속도로 재판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국회에서는 이 사건과 관련된 국정조사가 벌어지고 있고, 사건에 깊에 관여한 전경련은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고 있다.


 거대한 사건들이 홍수처럼 쏟아졌던 2016년의 마지막 결정타였다. 이것이 시대 교체의 출발로 기록될지, 혹은 다시 한 번 놓쳐버린 기회로 기록될지는, 이제 다시 새해를 맞는 우리의 손에 달려있다.





12월 27일

 마지막까지 다이나믹했다.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 29명이 탈당하며 새누리당이 99석의 미니 여당으로 주저앉았다. 121석을 보유한 더불어민주당이 굳건한 1당의 자리를 되찾았다. 비박계 의원 29명과 이미 탈당한 김용태 의원은 ‘개혁보수신당’이라는 이름으로 교섭단체를 등록했으며, 창당 절차에 나서고 있다.


 새누리당은 다시 친박당으로 돌아왔고, 인명진 비대위 체제가 들어섰지만 어느 정도의 개혁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개혁보수신당에게는 ‘보수’라는 정책적 선명성이 새로운 과제가 될 것이다. 현재 정당 지지율과 대선주자 지지율에서는 모두 더불어민주당 측이 앞서고 있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이것이 다른 한 해와 같은 길이의 한 해였다는 것이, 나는 아직도 잘 믿겨지지 않는다.


 다가오는 2017년은 어떤 해일까. 지금을 사는 우리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올해처럼, 그 최소한의 선이 무너지지는 않는 한 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선이 무너진 대가가 어떤지는, 우리 이미 톡톡히 체험하지 않았던가.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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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하는 민주주의를 위해

그래도 여전히,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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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하기 전에, 간단한 실험을 하나 해 보자. 질문 몇 개에 대답만 해 보면 된다. 스스로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자.



 “왜 모든 사람의 의견을 듣는 민주주의가 필요한가?”

 “왜 인권을 보호해야 하는가?”

 “왜 소수자를 보호해야 하는가?”

 “왜 법을 지켜야 하는가?”

 “왜 정치적으로 올바른 단어를 사용해야 하는가?”




 이변이 벌어졌다.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미국의 제 45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내년 초 취임식을 거치고 나면, 오바마 대통령의 집권은 끝나고 이제 트럼프 대통령의 시대가 도래한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주요 여론조사는 하나같이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당선을 예측했다. 하지만 투표장 속 민심은 달랐다.


 경합주인 오하이오, 노스캐롤라이나, 플로리다 등은 모두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했다. 선거인단의 과반수인 270명을 먼저 차지한 트럼프는 선거에서 승리했다. 힐러리 클린턴은 유권자 전체 표에서는 승리했지만, 조금이라도 이긴 사람이 한 주의 모든 선거인단을 차지하는 ‘승자독식제’ 때문에 최종적으로 낙선했다.




 트럼프는 어떤 사람인가. 당장 생각나는 몇 가지 사례만 이야기해 보자. 트럼프는 멕시코 인을 ‘강간범’에 비유했으며, 멕시코와 미국 국경에 거대한 장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슬림의 미국 입국을 금지시켜야 한다고 말했고, 미군 전사자 가족을 그가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비하했다.


 장애인을 조롱했으며, 성추행을 저질렀고, 그 피해를 고백한 여성들에겐 “성추행을 하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부모가 멕시코인인 판사는 공정하지 않다고 말했으며, 낙태 여성은 처벌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유세장에서 상대 지지자에 대한 폭력을 조장했으며, 기후 변화는 중국인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 주장했다. 소득세를 납부하지 않았으며, 본인이 고용한 노동자의 임금을 주지 않고 위장 파산했다.


 상대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을 감옥에 보내겠다고 말했고, 외모를 비하했다. “더러운 여자(such a nasty woman)”라는 욕설도 대선 토론장에서 서슴지 않았다.


 그는 부끄러운 후보였다. 혐오와 증오를 가치로 내건 사람이었다. 공화당 내에서도 후보를 교체해야 한다는 여론이 상당한 힘을 얻었다. 지지자들도 트럼프가 부끄러운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여론조사에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쨌든 그들은 조용히 투표로 말했다. 트럼프는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2017년 1월 20일 무리 없이 취임할 것이다. 사람들은 불편한 가치보다는, 편리한 혐오를 선택했다.


 사람들은 저 깊은 곳에서 ‘트럼프의 세상’을 원하고 있었다. 유리 천장을 부수고 ‘남성적인’ 세계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여성이 옳은 말 하는 세상을 원하지 않았다. 돈 많고 별 생각 없는 남성이 혐오발언을 마음껏 쏟아낼 수 있는 세상을 원했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결정이었다.




 정치적 중립을 논하고 싶지 않다. 트럼프는 최악의 후보였다. 극단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미국이라는 민주주의 사회는, 그 최악의 극단을 투표로서 선출했다. 절망의 밤이었다.


 하지만 이 긴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면, 우리는 다시 새로운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무엇이 이 극단의 시대를 만들었는가. 상대방에 대한 증오를 여과 없이 드러내는 이가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시대. 논리와 이성보다는 감정과 혐오가 투표를 이끄는 시대. 무엇이 이 시대를 만들었는가. 사회의 다수가 그를 선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민주주의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때다. 도널드 트럼프는 민주주의적 절차에 따라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각 주는 주민의 총의를 모아 연방정부에 전달했으며, 이를 취합해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이 확정되었다. 민주주의가 그를 선택했다.


 하지만 단순히, 투표를 한다는 사실이 민주주의는 아니다. 민주주의는 결정의 ‘방법’이지만, 그걸 넘어서 모든 유권자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과정’이기도 하다. 공정한 투표만이 민주주의의 전부가 아니다.


 누구든지 어떤 말을 하고, 모두에게 그 말을 전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 뜻이 맞는 사람이 모여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집회의 자유. 단체를 만들어 지속적인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결사의 자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건과 그 맥락을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는 언론의 자유. 원하는 말을 글로 쓸 수 있는 출판의 자유.


 약자에의 보호. 규칙의 준수. 혐오하지 않는 발언. 인권에 대한 존중. 이 모든 것들이 민주주의를 핵심적으로 구성하는 ‘과정’들이다.


 그래서 모든 민주주의 사회는 ‘투표’라는 방법을 넘어서, ‘자유’라는 과정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미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의 민주주의 역사는, 바로 이 자유를 억압하려는 이들과 쟁취하려는 이들 사이의 갈등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다. 자유를 쟁취하고 보장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자유를 ‘왜’ 쟁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그 의문에 명쾌한 답을 내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그 답을 내리지 못했다면, 우리가 쟁취한 자유는 다시 반납되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었다. 우리에게 ‘왜’라는 질문을 던질 시간이 있었는지. 우리에게 그런 고민을 허락하는 환경이 주어졌는지. 가치에 대해 논할 수 있는 여유가 주어졌는지. 그리고 그 질문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


 우리는 오만했다. 모두가 고민 없이도 그 질문에 답을 내릴 수 있다고 믿었다. 적어도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고민 없는 가치는 몰락하기 마련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말이다.




 처음에 던졌던 질문을 상기해 보자. 우리는 이런 질문에 답을 내릴 수 있는가? 어쩌면 우리는, 논리적 근거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막연히 무언가를 옳다고 생각한 것은 아닌가? 이 본질적 질문 앞에서 당혹감을 느끼지는 않았는가?


 왜 민주주의가 필요한가. 한 사람에 의한 통치는 필연적으로 한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 체제를 낳는다. 누구보다 훌륭한 사람이 지도자가 될 수 있지만, 누구보다 무능한 사람이 지도자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의 의견을 묻는다. 오류를 최소화하고 모두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왜 인권을 보호해야 하는가. 판단능력을 가진 인간은 모두 각자의 입장과 각자의 시각에서 사안을 바라본다. 그리고 이때, 최대한 많은 수의 시각이 모여야 그 사안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모두의 자리에서 각자가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가, 더 정확한 판단능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왜 소수자를 보호해야 하는가. 민주주의 사회는 다수의 결정에 모두가 따라야 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수의 목소리가 옳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으며, 소수자에게도 그들의 논리를 펼 기회를 충분히 제공해 주어야 한다. 누군가의 힘에 억눌리지 않은, 올바른 결론을 찾아나가는 민주주의 사회의 방법론이다.


 왜 법을 지켜야 하는가. 법은 사회 전체가 만든 규칙이다. 규칙을 어기기 시작하면 사회 전체에 신뢰가 사라지고, 사라진 신뢰는 필연적으로 비용을 발생시킨다. 상대방이 규칙을 어길 가능성을 생각하며 쓰는 비용이, 규칙을 지키기 위해 쓰는 비용보다 더 크다.


 왜 정치적으로 올바른 단어를 사용해야 하는가. 어떤 단어는 특정 집단에게 불쾌감을 불러일으킨다. 그 단어를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누구도 불쾌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치적으로 올바른 단어를 사용하는 게 사회 전체를 덜 불쾌하게 만든다. 단어를 바꾸는 과정의 이질감은, 사회 전체에서 큰 불편을 느끼지 않고 사는 기득권 세력이 안고 가는 것이 공정하다.




 이것은 몇 가지 질문해 대해 내가 내린 답이다. 누군가는 이 답이 틀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옳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뜻을 같이 하는 사람도, 달리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러한 가치를 가지고 고민해본 일이 있느냐는 것이다. 가치에 대해 논쟁하고, 그 가치를 지켜야 할 이유에 대해 고민하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볼 기회가 우리에게는 있었는가. 생각의 차이를 두고, 그것을 좁히기 위해 노력할 여유가 주어졌는가.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그런 성장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민주주의에 반드시 필요한 고민의 과정이 허락되지 않았다. 우리는 사회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에 대해, 본질적인 질문을 던질 권리조차 암암리에 박탈된 채 살고 있었다.




 경제는 성장했다. 우리는 과거의 인류보다 부유하다. 기술도 성장했다. 우리는 과거의 인류보다 효율적이다. 하지만 우리의 고민은 성장했는가. 인류는 스스로 숭고한 가치를 추구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투표장 안에서 사람들이 품고 있던 본심은 달랐다. 이성의 둑은 이미 허물어졌다.


 우리는 안이했다.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그 결정의 방법을 넘어 과정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그 과정의 의미와, 그것을 수호해야 하는 이유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의문을 품을 권리를 주는 사회를 생각해야 한다. 질문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세상을 지향해야 한다.


 이것은 특정 정권, 특정 국가를 넘어선 문제다. 도널드 트럼프를 지도자로 선출한 세상에서, 이것은 적어도 혐오보다는 우애가 옳다고 생각하는 인류 모든 이들이 가진 의무다.




 민주주의는 그래서 어려운 체제다. 민주주의는 끝없는 자기 혁신을 필요로 한다. 아무리 옳은 가치라도, 국민의 절반 이상을 설득시키지 못하면 몰락하고 만다. 의심받지 않는 본성은 사회에 진보보다는 퇴보를 가져온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절망하지 말자. 민주주의는 현대까지의 역사를 거친 인류가 발명해 낸 최선의 체제다. 우리가 노력하는 한, 오류의 가능성이 가장 낮은 체제다. 그리고 그 오류를 시정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체제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는 다시 기회가 있다. 대중과 함께 서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우리가 잡을 수도 있고, 놓칠 수도 있는 기회가 있다. 언제든지, ‘왜’라는 질문을 꺼내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그리고 그 질문을 사회 구성원 전부에게 확대시킬 수 있다면, 인류 전체는 다시 한 번 큰 진보의 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




 시대가 나빠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미국의 대중은 트럼프를 선택했다. 그리고 트럼프는, 그 선택의 대가를 충분히 제공할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런 만큼, 힐러리 클린턴의 선거 구호를 생각하게 된다. “Stronger Together.” 함께하면 더 강해질 수 있다. 이제 모두와 함께 가치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원칙을 지키기 위한 질문을, 모두 함께 시작해야 한다.


 아주 어려운 싸움이 눈앞에 있다. 트럼프는 하나의 현상일 뿐이다. 우리 모두의 기저에 깔려 있는, 의심받지 않는 본성이 그를 만들었다. 질문하지 않는 사회의 몰락은 필연이다. 우리는 그 전조를 보고 있는 것뿐이다.


 스스로의 가치에 대해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논리에 대해 회의를 품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럴 수 있는 권리를, 인류 전반에 확대해야 한다. 그렇게 과정으로서의 민주주의를, 그 기반을, 쌓아두어야 한다. 그것이 시대의 역행을 다시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낙선 연설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했던 말을 전하며 글을 마치도록 하자.


 “수많은 고난과 역경의 순간이 우리의 앞에 예견되어 있다. 하지만 옳은 일을 위한 싸움이라면, 그 모든 것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


 우리의 가치를 위해, 우리는 다시 일어서야만 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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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아아앙 2016.11.17 01:41 신고

    음...우선 필스교양 잘 듣고 있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자면..먹고 살기 힘들어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이유중에는 오바마의 행정력의 한계...그러니까 더 나은 삶을 제공하지 못한것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전 지금 강한 강도의 노동에 시달리고 있지만 뾰족 한 대안이 있지도 않습니다
    더군다나 주변의 사람들의 삶이라는게 딱히 나아보이지도 않지요
    여유가 있어야 토론을 할수도 있지 않을까요
    박원순 시장식의 소통형 리더쉽이 잘 먹히지 않는 이유도 삶의 피곤함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ㅎㅎ
    기승전 기본소득으로 끝나네요 ㅎㅎ
    그럼에도 생각해볼것이 많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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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직 여기에 있습니다.

아직은, 관악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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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화여대 최경희 총장이 사임했다는 소식을 막 들었습니다. 세달 여에 걸친 투쟁 끝에 승리를 이끌어내신 이화여대 학생분들께 축하와 더 큰 응원을 보냅니다. 승리의 기운이 한강을 건너 여기까지도 밀려오는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여기는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입니다.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는 분들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대학교 총학생회는 지난 10월 10일,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전면철회를 주장하며 본부를 점했으며, 현재까지 본부를 지키고 농성 중에 있습니다.





 의문을 표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시흥캠퍼스가 생기면 학교도 넓어지고 좋은 거 아니야?” “시흥시 주민들에게 약속해 놓고 파기하면 안 되는 거 아니야?” “학생들이 시흥캠퍼스 조성에 참여할 수 있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야?” 저는 총학생회에서도, 단과대 학생회나 무슨 단체 같은 것에서도 활동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의문을 꽤나 자주 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이런 의문에 답을 드리려고 합니다. 답을 드리기 위해선, 조금 멀리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무려 9년 전인, 2007년의 일입니다.


 2007년, 서울대학교에서는 <서울대학교 장기발전계획 2007-2025>라는 계획서를 발간했습니다. 이 계획은, 2025년까지 서울대학교가 전세계 10위권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높은 목표이긴 하지만, 대학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학교가 다양한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좋은 일이죠.


 그런데, 이 계획서의 ‘국제화’ 항목에는 이런 문구가 들어가 있었습니다.


글로벌 리더십 캠퍼스를 구축하고, 신학문 분야의 교육과 연구를 위해 거주대학을 활용할 것.


 ‘거주대학’에 대해서는 조금 있다가 이야기하기로 하죠. 가장 중요한 것은 ‘글로벌 리더십 캠퍼스 구축’이었습니다.


 바로 이 ‘글로벌 리더십 캠퍼스’가, 시흥캠퍼스 논의의 시작이었기 때문입니다.




 학교 측에서 새로운 캠퍼스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우선은 계획서에서도 제시됐듯이 국제화 문제입니다. 학교는 내국인의 외국 유학이라는 기존 방식의 국제화가 아니라, 유수한 외국의 인재를 유입하는 방식의 국제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옳은 말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그런 방향으로 국제화가 진행된다면 좋겠지요.


 그런데 이 다음부터 논리구조가 이상하게 전개됩니다. 그런 국제화를 시행하기 위해, 새로운 캠퍼스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타납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관악캠퍼스에서는 왜 국제화를 하지 못하는지 의문이지만, 학교가 지금까지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않으니 저도 답해 드릴 순 없습니다. 전직 기획처장님의 “국제공항이 가까워서”라는 답변은 답변이라기엔 많이 민망하니까요.


 학교가 주장한 또 하나의 이유는 ‘관악캠퍼스의 포화’였습니다. 관악캠퍼스가 너무 꽉 차 있어서, 새로운 연구소를 짓거나 학생 자치 공간을 마련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었죠.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정말 공간이 부족한 걸까요? 이건 조금 더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앞에서 <서울대학교 장기발전계획> 이야기를 했었죠? 그런데 사실 이 계획서에는, 지금 말하고 있는 ‘글로벌 캠퍼스’ 말고, 또 다른 캠퍼스 하나를 더 지어야 한다는 계획이 있었습니다. 이 캠퍼스는 바이오 산업이나 친환경 사업 관련 연구를 하는 캠퍼스로 계획되었죠.


 이 캠퍼스는 어떻게 됐냐구요? 만들어졌습니다. 이미 완공되어 있어요. 강원도 평창시에 서울대학교 평창캠퍼스가 설립되었고, 현재 운영 중에 있습니다. 270만m² 크기의 거대한 캠퍼스를, 3,400억 정도의 돈을 들여서 만들었습니다. 물론 아직 서울대학교가 국립대학이던 시절에 세운 계획이니, 대부분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졌죠.


 그런데 이 캠퍼스, 운영이 잘 될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 거대한 캠퍼스에 상주하는 교수는 15명 남짓에 불과합니다. 학생들은 정원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죠. 물론 농생물학 등의 연구는 큰 토지가 필요한 게 사실이지만, 교수님들이 장원을 만들고 영주가 되신 게 아니라면 이건 너무 넓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들어선다는 기업 연구소는 감감 무소식이고, 학교는 현재 이 캠퍼스 유지에만 매년 250억 정도의 돈을 쓰고 있습니다. 심각한 수준이죠. 서울대학교의 계획 없는 공간 운영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관악캠퍼스라고 다를까요? 서울대학교가, 평창캠퍼스를 제외하고 가지고 있는 땅은 모두 400만m² 정도 됩니다. 거대하죠. 국내에서 가장 넓습니다. 세계적인 수준에서 봐도 좁지 않아요. 그 넓은 중국의 북경대보다 크고, 예일대는 학교 안의 골프장까지 합해도 서울대보다 좁습니다. 동경대는 크기가 서울대의 절반도 되지 않습니다.


 관악캠퍼스가 오래 전부터 난개발되어 왔고, 개발제한구역이 걸린 부지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공간 부족’이라니, 이렇게 거대한 캠퍼스를 가지고 있는 주제에 할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결국 국제화도, 공간 부족도, 시흥캠퍼스 건립의 이유가 되어주지는 못한다는 겁니다.




 아무튼 이런 알 수 없는 이유로, 서울대학교는 2007년에 국제화 캠퍼스 부지를 공모했습니다. 최종적으로 시흥시가 선택됐죠. 시흥시는 현재 ‘배곧 신도시’라 불리는 새로운 신도시 사업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거기에 서울대학교가 들어올 부지를 마련해주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2009년 6월, 서울대학교와 시흥시가 양해각서를 체결했습니다. 물론 ‘양해각서’라는 문서는 법적 효력이 없습니다.


 양해각서를 통해 시흥시와 서울대학교가 약속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시흥시는 서울대학교에 약 20만 평 정도 되는 땅을 무상으로 제공합니다. 그리고 민간 건설업체 하나를 선정해서, 서울대학교 주변에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허가해 줍니다.


 신도시 부지이기도 하고, 대학이 들어온다고 하니 땅값이 꽤나 오르겠죠? 분양 과정에서 민간 건설업체가 이익을 많이 볼 겁니다. 그런데 이 이익은 서울대학교 덕분에 번 것도 일부 있으니, 이 민간 건설업체는 3000억 원 규모의 건물을 서울대학교에 무상으로 지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분양 실적에 따라 최대 1500억을 서울대학교에 직접 지급하여야 하죠. 이렇게 합의가 됐습니다.


 결국 서울대학교는 시흥시에 들어간다는 약속을 해 주고, 그 대가로 20만 평 정도의 땅과, 4500억이라는 이익을 취할 수 있게 된 겁니다.


 2011년에 사업 마스터플랜이 완성되었고, 2012년부터 배곧신도시가 착공에 들어갔습니다. 위에서 말한 ‘민간업체’는 2013년에 ‘한라’라는 건설업체로 선정됐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서울대학교 학생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민간업체 선정 때까지 시흥캠퍼스의 진척 상황을 전혀 안내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서울대학교 학생들은 캠퍼스가 새로 생긴다는 소식과, 이미 민간업체 선정이 완료되었다는 소식을 갑작스럽게 접하게 된 거죠. 심지어 본부 측의 통보도 아니었습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이 소식을 접했습니다.


 비민주적으로 추진된 캠퍼스에 대해 학생들은 당연히 반발했습니다. 당시 총학생회는 단식 투쟁, 천막 투쟁 등을 이어갔죠. 학교는 어쩔 수 없이 학생들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대화협의회’라는 기구를 만들고, 이 기구에서 학생 측과 학교 측이 시흥캠퍼스에 대해 직접 토론할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2014년 7월에 신임 성낙인 총장이 부임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대화협의회는 최소 한 달에 한 번 회의를 열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총장은 이 약속을 어겼습니다. 2014년 9월에 한 번, 8개월 뒤에 한 번, 그리고 또 1년 뒤에야 또 한 번의 회의를 열었죠. 이 기구는 사실상 기능을 잃어버렸습니다.


 약속을 어긴 사례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성낙인 총장은 학생들에게, ‘실시협약’을 체결하기 전에 대화협의회를 통해 반드시 이야기를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실시협약’은 양해각서와 다르게 실제로 법적 효력을 가지고 있는 협약이죠. 하지만 성낙인 총장은 대화협의회를 열지 않았고, 지난 8월 22일 학생들에게 30분 전에 보낸 메일 한 통으로 실시협약 체결을 알렸습니다. 체결식조차 없었던 졸속 협약이었습니다.


 학생들은 이미 ‘총조사’라는 것을 실시해,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체결 반대라는 의견을 제시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의 의견과, 총장의 약속은 허공에 사라지고 말았죠. 학생 측은 항의하며 총장에게 직접 찾아가기도 했지만 청원경찰에 의해 쫓겨났습니다.


 실시협약 체결 이후 9월 6일, 학생들은 총장 명의로 메일을 받았습니다. “신뢰의 서울대학교를 약속합니다.”라는 제목이었죠. 이 메일에서 성 총장은 시흥시와의 신뢰를 지키게 되어 다행이라며, 불통에 대한 지적에는 “최선을 다했지만 부족했다니 유감”이라는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사과같지만 사과는 아닌, 애매한 내용이었죠.




 시흥캠퍼스는 이렇게 학생들의 뜻을 완전히 무시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협약을 만들고 체결하는 과정까지 학생들의 의견이 들어갈 틈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시흥캠퍼스에서 무엇을 그리 하고 싶길래 이런 방식으로 일처리가 되는 걸까요? 시흥캠퍼스는 어떤 방식으로 운영하려 하는 걸까요?


 처음 학교에서 제시한 운영 형태는 위에서 말한 ‘거주 대학’이라는 형태였습니다. Residential College, 줄여서 ‘RC’라고 흔히 부르는 방식입니다. 학생들 전부가 기숙사에서 거주하는 형태죠. 사실 이것도 나쁜 형태는 아닙니다. 대학생 주거난을 해소하고, 집중적인 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실제로 유럽의 많은 대학이 이런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죠.


 하지만 지금 서울대학교가 선택하고 있는, 하나의 캠퍼스와 단과대가 있는 형태도 역시 나쁜 형태는 아닙니다. 미국의 많은 대학교는 이런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어느 한 쪽이 옳은 게 아니죠. 또한 이런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대학을 RC형태로 바꾸려면 막대한 돈이 들어갑니다. 기숙사도 지어야 하고, 프로그램도 새로 만들어야 하니까요. 자율권 침해 문제도 심각합니다.


 학생들은 반발했습니다. 학생들을 의무로 기숙하게 하는 학교를 만들면서, 학생들의 의견을 듣지 않았으니까요. 강한 반발에 부딪힌 학교 측도 결국 “학생들의 동의 없는 강제 RC는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RC를 하지 않는다면, 그 넓은 시흥캠퍼스에는 누가 들어갈까요?


 총장님의 답변은 이렇습니다. “계획이 없다.”


 특정 단과대학을 들어서 시흥으로 옮기는 것은 어떨까요? 그런데 이 부분에서도 학교 측이 분명히 약속했습니다. 학생들의 동의 없이 단과대 이전은 없을 거라고요. 현재 관악캠퍼스에는 시흥 이전을 원하는 단과대학이 없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시흥캠퍼스에는 누가 들어갈까요?


 총장님의 답변은 다시 이렇습니다. “계획이 없다.”


 서울대학교 병원 분원도 시흥캠퍼스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서울대학교와 서울대학교 병원은 서로 다른 법인입니다. 서울대학교가 병원을 넣겠다고 약속해줄 수 없어요. 하지만 각종 포털사이트 지도에는 이미 ‘서울대학교 병원 예정지’가 들어서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병원의 동의는 어떻게 얻어야 할까요? 역시 계획이 없습니다.


 학생들의 이동 편의를 위한, 관악-시흥간 셔틀버스 운행 이야기도 나왔죠. 하지만 시흥시는 상주 인원이 많길 원합니다. 이 분쟁은 어떻게 해결할까요? 이쯤 되면 예상하셨겠지만, 역시 계획이 없습니다.


 시흥캠퍼스 건설 과정에서, 민간업체에게 받는 건물과 돈이 4500억 정도라고 말씀드렸죠? 그런데 사실 이 자금으로는 시흥캠퍼스 전부를 완공할 수 없습니다. 전부 완성하는 데는 1조 8천억 정도의 돈이 들어가요. 부족한 돈은 어디서 마련할까요? 이번에도 당연히, 계획이 없습니다.


 총장님은 이런 말로 이 모든 문제를 정리하셨습니다. “우리 모두의 숙제다.”




 20만 평 규모 땅에, 1조 원을 들여서 캠퍼스를 짓는데, 계획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2018년 3월부터 1차 운영을 시작한다는데, 대체 무얼 할 지는 학생도 모르고 학교도 모르고 시흥시도 모르고 건설업체도 모릅니다. 숙제는 총장님이 만들었는데 갑자기 ‘우리 모두의 숙제’가 되어버렸어요.


 그렇다면, 이쯤에서 정말 궁금해집니다. 이 캠퍼스는 대체 왜 지으려고 하는 걸까요?


 문제는 아주 단순합니다. ‘돈’입니다.


 서울대학교는 2011년, 학생들과 시민들의 반대를 뚫고 법인화를 강행했습니다. ‘국립 서울대학교’는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가 되었습니다. 과거엔 국가에 완전히 속한 국가기관이었다면, 지금은 일종의 공기업이 된 셈이죠. 국가가 법인을 세우고, 이사와 이사장을 선임해 그들이 학교를 관리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문제가 생기죠. 국가가 서울대학교에 돈을 줄 이유가 사라집니다. 물론 대학이고, 국립법인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국고 보조금이 들어가지만, 예전처럼 많은 돈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서울대학교가 돈을 버는 방식은 다섯 가지 정도가 있습니다. 국고 출연금, 등록금, 연구비, 기부금, 그리고 수익사업을 통한 이윤입니다. 국고 출연금은 말했듯이 늘릴 수가 없고, 등록금을 올리기엔 부담스럽죠. 연구비와 기부금은 학교에서 늘릴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학교가 선택한 방법이, 바로 수익사업입니다.


 단순한 수익사업이 아닙니다. 학교 로고를 박아서 기념품을 파는 정도가 아니죠. 건물을 올리는 정도로도 안 됩니다. 스케일이 크죠. 캠퍼스 하나를 통째로 새로 만들겠다는 계획이 생깁니다. 그렇게 ‘시흥캠퍼스’가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20만 평의 땅과 3000억의 건물, 그리고 1500억의 자금. 서울대학교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막대한 돈을 벌 수 있습니다.


 물론 학교를 운영하는 데 최소한의 운영 자금은 필요합니다. 학교 운영 자금이 충분해서 학생들의 등록금을 낮춰주거나, 복지 사업을 진행한다면 좋은 일이죠. 하지만, 단순히 건물을 세우고 자신의 임기 내에 치적을 만들기 위해서 수익사업을 진행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학생들의 목소리가 무시된다? 교육 기능을 잃어버린다? 학교가 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시흥캠퍼스를 두고 얼마나 많은 돈이 오가고 있는지는 이미 보셨습니다. 물론 시흥캠퍼스 완공과 운영에는 앞으로 더 많은 돈이 들어가겠지만, 그 때는 또 새로운 수익사업을 찾아나서면 되죠. 캠퍼스 안에 민자 기숙사를 만들어도 되고, 편의점이나 대기업 빵집을 유치해도 됩니다. 기업이 원하는 연구소를 유치해서, 기업이 원하는 연구만 진행해도 됩니다. 캠퍼스가 생기면 돈을 벌 방법이야 많습니다. 교육을 할 방법이 없어서 문제죠. 물론 그들에게는 큰 문제도 아니겠지만 말입니다.


 게다가 서울대학교가 돈을 버는 방식은 또 어떻습니까. ‘서울대학교’라는 이름을 팔아 무상으로 토지를 제공받았고, 주변에 투기 붐을 일으켰죠. 그 과정에서 민간 토건자본이 돈을 벌어갔고, 그 이익의 일부를 서울대학교가 가져가는 형태입니다. 학교가 투기를 부추기고, 토건자본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거죠. 학교로서 할 수 있는 바람직한 방법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시흥캠퍼스에서 어떻게 교육을 할지에 대한 아무런 계획이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서울대학교가 시흥에 가는 이유는 교육이 아니기 때문이죠. 학교가 바라는 것은 오직 돈입니다. 그 돈을 위한 계획만 철저하다면, 시흥에 캠퍼스를 짓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결국, 시흥캠퍼스는 단순히 캠퍼스를 하나 더 짓겠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런 계획이었다면, 학생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좋은 캠퍼스를 만들고자 노력해도 됩니다. 총장의 ‘유감’ 정도에 굽히고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흥캠퍼스는, 기업이 되어버린 대학교가 어떤 방식으로 돈을 쫓아 가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학생들의 목소리가 짓밟히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그렇기에 단순히 ‘좋은 캠퍼스’를 만들자며 움직일 수 없는 거죠. 투기자본을 이용해 돈을 버는, 기업이 되어버린 대학은 변하지 않으니까 말이죠.




 결국 학생들은 파기되는 약속, 비전 없는 토건사업, 기업화된 대학을 ‘시흥캠퍼스’라는 하나의 상징을 통해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서울대학교는 법인화 이후, 사실상 학생들이 학교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막아세우고 있습니다. 총장 직선제는 폐지되었고, 이사회가 총장을 선출합니다. 새로 이사를 선출해야 할 때, 신임 이사는 사실상 이사회에서 뽑습니다. 폐쇄적인 자기선출 구조죠. 제도적으로, 학생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방법은 없습니다.


 결국 학생들은 지난 10월 10일, ‘전체학생총회’라는 기구를 소집했습니다. 이것을 서울대학교 학생회의 가장 높은 의사결정 기구로, 직접민주주의 기구입니다. 서울대학교 전체 재학생의 10% 이상이 모이면 성사되고, 현장에서 투표를 통해 학생회의 움직임을 결정합니다.


 서울대학교 재학생은 16,000명이 조금 넘습니다. 10월 10일, 전체학생총회에는 2000명 가까운 학생들이 모여 총회를 성사시켰습니다. 여기서 투표를 통해 학생들은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전면철회를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한 투쟁 방식으로 본부 점거를 결의했습니다. 이 결의에 따라 학생들은 본부에 진입, 현재까지 농성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성낙인 총장은 12일 학생들과 대화를 요청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성 총장은 “나의 임기 전에 이루어진 일이다.”, “이제까지 반대하지 않다가 왜 그러느냐”, “나는 소통을 했고, 사과를 했다.”고 주장하며 실시협약 철회는 불가능하다고 밝혔습니다. 분명 법적 효력이 있는 실시협약은 성 총장 본인이 체결했고, 학생들은 학생총회 전까지 보름 가까이 본부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서는 캠프파이어라도 하고 논다고 생각하신 모양입니다. 소통과 사과 역시 미흡했죠. 결국 뚜렷한 성과는 없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총장실 점거 과정에서 밝혀진 것이 있습니다. 총장실에서 학생들이 발견한 문건 중, 시흥캠퍼스 반대 학생들을 사찰한 문건이 있었습니다. 학생들의 학번과 소속, 지도교수, 활동 내용 등을 적은 문서였죠. 성낙인 총장은 본인이 시킨 일이 맞다고 밝혔습니다.


 학생들이 시흥캠퍼스에 반대하는 동안, 학교는 학생들을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학생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는 민주주의적 구조 따윈 없었습니다. 등록금을 내는 학생이 학교 운영에 참가할 자본주의적 구조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학생들의 참여를 조직적으로 막아세우는, 독재의 구조만이 있었을 뿐입니다.









 시흥캠퍼스 반대에 대한 수많은 의문. 이것에 대한 저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메일을 보내고, 직접 찾아가고, 천막을 치다가, 이제는 본부에 들어갔습니다. 학생들은 총장실에서, 부총장실에서, 기획처장실에서, 대회의실에서, 그리고 본부의 차가운 복도에서 오늘도 밤을 지새고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시흥캠퍼스 건설’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업화되어 돈만 쫓아가고 있는 대학과, 그 과정에서 묻히는 학생들의 목소리, 교육의 본분을 지키지 못하는 학교의 운영원리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적이지도, 그렇다고 자본주의적이지도 못한, 권위와 패권만이 존재하는 대학을 반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서울대학교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화여대 학생들은 결국 총장 사퇴라는 결실을 얻었습니다. 그 승리에 다시 한 번 축하와 응원을 보냅니다. 하지만 그 뒤에는 부러움과 함께, ‘우리도 이길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도 함께 따라 올라옵니다.


 하지만, 꼭 이길 수 있다고 믿어서 싸우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싸우고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싸웁니다. 더이상 “이제까지 반대하지 않다가 왜 그러느냐”는 반문을 듣지 않기 위해 싸웁니다. 어느날 문득 부끄러워하지 않기 위해 싸웁니다. 누군가에게 더 이상 미안하지 않기 위해 싸웁니다. 단 한 걸음의 진보를 위해 싸웁니다. 그들에게 경고하기 위해 싸웁니다.




 이곳, 우리가 점거하고 있는 총장실은 그런 공간입니다.


 때로 지쳐하는 사람들을 보며, 소리치다 우는 친구를 보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휴학계를 내고 온 동기를 보며, 많은 것을 배웁니다. 그리고 또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웃는 사람들을 보며, 추운 밤에도 촛불을 들고 모이는 학생들을 보며, 묘한 결의에 차 있는 캠퍼스를 보며, 더 많은 것을 배웁니다.




 이 점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어떤 평가를 받을지, 그리고 어떻게 끝을 맺을지. 아무 것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확신할 수 있는 것이 단 한 가지 있습니다.


 하지만 관악캠퍼스에, 강의실에, 본부의 차가운 바닥에, 도서관에, 광장에, 그리고 총장실에.


 여기에, 아직 우리가 있습니다.




 이것이 의문에 대한, 저의 대답입니다. 오늘도 총장실에서 잠을 청하는 우리 모두의 대답입니다. 함께 이 결정을 만든 2000명 학생들의 대답입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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